꿀벌 군집 속 전체 꿀벌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살아간다. 학자들은 이런 형태를 초개체(Superorganism)라고 표현한다. (사회생물학자인 E.O. 윌슨, 브르트 횔도블러는 이렇게 말했다. 벌 군집은 "하나의 단일한 신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함께 일하는 세포들과 유사하다. 일벌은 세포이고, 여왕벌은 생식기관이며 정찰벌 혹은 경비벌은 피부와 같다.") 꿀벌들은 집단으로 생활하면서 스스로 생식하는 것보다 친족에게 협력하는 것이 유전자를 남기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수만 마리 중에서 한 마리의 벌만이 알을 낳는다. 바로 여왕벌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벌통에는 왕(King)벌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왕이 벌통을 지배하는 벌이라 생각했다. 1609년, 찰스 버틀러 목사가 <여성 왕국> 책을 통해 왕벌은 수컷이 아닌 암컷이라는 사실을 처음 출간했다. 여왕벌이 산란만 담당한다는 것이 밝혀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여왕벌(Queen bee)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남아있고, 그 이름 탓에 우린 절대 왕권 같은 여왕을 상상한다. 알고 보면 여왕벌에게 결정권이나 통솔권이 없다.
여왕의 유일한 권한은 본인의 페로몬을 통해 모든 딸들의 난소 발달을 막는 것이다. 여왕벌 곁에는 시녀벌이 있다. 시녀벌은 여왕에게 로열젤리를 주거나 여왕의 몸을 청결하게 해 준다. 시녀벌이 여왕에게 먹이를 건네주는 과정에 여왕의 아래턱에서 분비되는 페로몬이 묻게 된다. 이 페로몬이 시녀벌과 주변 일벌들이 꿀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여왕의 페로몬이 전체 집단으로 전파된다. 이 페로몬으로 일벌들은 알을 낳지 못한다. 만약 여왕이 없어지거나 약해지면 꿀벌 마을에는 혼란이 온다. 여왕이 나이가 들어 알을 낳지 못하면, 자연히 페로몬도 약해진다. 생식 담당자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되면 일벌들은 새로운 왕을 키운다.
찾았다. 여왕벌은 단연 눈에 띄었다. 일벌과 헷갈릴 수 없는 크기다. 단번에 알아볼 아우라가 풍겼다. 곤충의 특징인 머리, 가슴, 배로 구성된 몸 중에, 배가 다른 일벌에 비해 두 배 정도 컸다. 여왕의 걸음은 거침없고 당차다. 도도도-. 평생 로열젤리만 먹은 기백이 이것이다. 일벌들은 여왕의 앞길을 막을세라 모세의 바다가 열리듯 길을 터.. 주기 전에 일벌이 여왕을 밟고 달려갔다.
혹여 여왕벌이 잘못될까 빠르게 관찰 했다. 바로 내 손으로 내가 망치는 경우인데, 여왕을 보다 벌통 밖에 떨어트리거나 다치게 하는 경우 말이다. 여왕벌은 다리도, 날개도 튼튼하다. 일벌처럼 몸을 떤다거나 내 손가락에 괜한 호기심을 보이지도 않는다. 꼿꼿이 자신의 길을 간다(가만 있진 않는다).
일등신 비율의 꿀벌들 사이에 하체(배)가 긴 여왕벌은 유독 원숙해 보인다. 어린이들과 있는 선생님 같이 보이기도 하다. 여왕벌과 일벌은 같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다. 육체적 차이를 만드는 것은 로열젤리(Royal Jelly)다. 한자어로는 왕이 먹는 젖, 왕유王乳라고 한다. 젖이라는 말 그대로 왕유의 주성분은 단백질이다. 모든 꿀벌은 태어난 후 처음 3일 동안은 로열젤리를 먹는다. 그 후 보통 벌은 꿀과 꽃가루를 먹는다. 여왕벌로 선택받은 애벌레는 평생을 로열젤리만 먹는다. 7주를 사는 일벌에 비해 평생 로열젤리를 먹는 여왕벌은 7년을 산다고 한다. 로열젤리를 먹은 초파리가 덩치가 커지고 산란능력도 증가했다는 연구도 있다. 평생 로열젤리를 먹는다지만, 많을 때는 하루 1500개 알을 낳아야 한다니 어려운 과업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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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보니 여왕벌 등에 마킹(표식)을 한다고들 했다. 여왕을 찾기 쉽도록 말이다. 여왕일 찾기가 이렇게 쉬운데 마킹까지 꼭 해야 하나? 내검을 얼마나 쉽게 하려고 그러나. 마킹을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여왕에게도 몸이 청결하고 싶은 자유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계절이 봄 꽃 필 때를 향해 가고 꿀벌이 급격히 많아졌다. 벌통을 이층(계상)으로까지 올리게 되니, 꺼내봐야 하는 벌집이 많아졌다. 고개 숙여 보느라 허리는 아프고, 날은 점점 더워졌다. 집중력이 흐릿해졌다. 여왕벌 찾기가 낙동강 오리알 찾기가 되었다. 여왕벌이 태어난 연도를 기억하기 위해서도 마킹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