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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플랜B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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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Aug 13. 2023

입추_우리 집 단골 등검은말벌 형님

알고  보니 이웃사촌

걱정했던 태풍이 탈없이 지나갔다. 비가  , 세상은 초록 절정이다. 맨흙 드러난  없이 풀로 덮였다. 기는 , 감아 올라가는 , 솟아나는  모두  기운을 낸다.


비가 오던 날에도 꿀벌은 꽃을 향해 갔다. 맑은 날처럼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착륙판에는 바깥으로 나가는 벌도 있고 들어오는 벌도 있다. 뒷다리에 꽃가루 공을 달고 오는 벌이 보인다. 꽃은 매일 조금씩 꿀을 만든다. 한 번에 모든 꿀을 주는 것보다 매개자들이 여러 차례 오게 하는 것이 수정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꿀벌은 꽃이 있는 장소를 기억해 둔 후, 새롭게 만들어진 꿀을 가지러 아침 일찍 날개를 편다. 채집 활동은 비가 와도 힘차지만, 맑은 날은 더 활기차다.


오늘처럼 며칠 동안 날이 궂었다가 풀리면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꿀벌들이 벌통 앞을 맴도는 모습이다. 꿀벌은 시기별로 역할이 바뀐다. 어릴 땐 벌통 안 살림을 맡는데, 이들을 내역벌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 바깥으로 꿀을 찾으러 가는데, 외역벌이라 부른다. 내역벌에서 외역벌이 되는 때, 꿀벌은 태어나 첫 비행을 한다. 나는 법도 익히고 집 위치를 기억하기 위해, 집 앞을 맴돈다. 꿀벌은 발달한 후각으로 집을 찾지만, 집으로 들어갈 땐 기억해 둔 주변 사물 정보를 이용한다. 입구에서 위아래로 천천히 작은 원을 그린다. 수 백의 자매들과. 번데기 뚜껑을 열고 새로 태어나는 벌을 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막혔던 밀랍 뚜껑을 갉아 뚫고 나오는 순간. 보송한 털북숭이 꿀벌이 세상에 하나 더 생기는 순간. 어린  벌  수백  마리가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이때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불청객이 나타났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동안 오지 못했던 등검은말벌이 다시 나타났다. 말벌이라는 곤충은 나무 수액을 먹고 산다. 채식주의자인 셈이다. 고기를 필요로 하는 것은 집에 있는 애벌레들. 집에 있는 동생들을 위해 사냥을 하는 것이다. 장마라거나 태풍이 와서 굶는 애벌레들은 소리를 질러 언니들에게 밥 달라는 투정을 한다고 한다.

늑대가 사라진 숲에 사슴이 너무 많아져, 국립공원이 황폐해졌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말벌이 없다면, 소위 해충이라 불리는 초식 곤충이 폭증하겠지. 생태계에선 모두가 제 본능에 따라 행동을 하고, 각자의 역할이 균형을 만든다. 그래, 세상이 황폐해질 바엔 우리 집으로 와라. 나는 잠자리 채를 들었다.


경험이 쌓일수록 나는 검등말벌에 침착해졌다. 포획 확률이 80% 정도로 올라갔다. 검등말벌에 대한 과도한 흥분과 무지가 말벌을 번번이 놓치게 했던 것이다. 심지어 꿀벌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잠자리채에 빠져 패닉상태가 된 꿀벌이 나를 쏘았다. 억울함 때문에 더 아팠다.


생각해 보면 내가 말벌보다 떨어질 게 없었다. 지성과 이성을 이용해 순간을 노리면 될 일이었다. 어느 날은 한 번에 두 마리를 잡는 경지에 올랐는데, 내가 매우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이것이 인간이다 요놈아'하고 지그시 밟아주었다). 꿀벌을 잡아 날아가는 말벌을 잡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꿀벌이 무사히 날아가는 것을 보면 굉장한 뿌듯함을 느꼈다.


애용했던 배드민턴채는 풀 스윙이 아닌 이상 말벌을 다치게 하지 못했다. 말벌은 정말 딱딱했다. 말벌은 벌통 앞에서 배회했고, 벌통으로 들어가는 꿀벌을 낚아채기 위해 정지 비행을 했다. 고개를 돌려가며 표적을 정했다. 이때를 노려 잡아야 한다. 하지만 벌통 앞이기 때문에 풀 스윙은 위험했다. 봉순이가 다칠 수 있었다. 몽둥이로 혼내주기 전에 격리해서 끌고 오는 단계가 필요했다. 잠자리채로 잡으면 사체를 닭에게 먹이로 줄 수가 있다는 이점도 있다. 배드민턴채로 후려치면 말벌 사체를 찾지 못하거나 사체가 온전하지 않았다.


잠자리채가 세 개다. 물론 잠자리채가 세 개라고 더 잘 잡는 건 아니다. 원래 쓰던 하나는 구멍이 났다. 말벌들이 죽기 전에 그물을 물어뜯었는데, 조금씩 생긴 구멍이 꽤 커졌다. 말벌이 빠져나가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두 개를 쓰는 이유는 벌통이 일렬로 늘어져 있는 덕분에 왼편과 오른편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각각 한쪽에 두니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사실 이쪽에서 저쪽까지 겨우 세 발짝이지만, 세상에는 일촉즉발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냥하는 순간이 말벌의 약점이다. 말벌은 빠르기도 하지만, 날개 소리가 나는 곳과 실제 위치가 달라 눈으로 쫓아가는 것이 어렵다. 벌통 앞에 멈춰 서서 꿀벌을 노릴 때를 노려야 한다.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등검은말벌은 의외로 조심성이 있어 무언가가 자신을 노린다고 생각하면 도망간다. 잠자리채가 뭔지 알고 도망치는 것일까? 아니, 일생에 한번 맞닥뜨릴 텐데 그럴리는 없지. 등검은말벌은 벌통 뒤, 산속 저 멀리 날아갔다. 날아가는 말벌의 뒤통수를 보며 나는 뒷산으로 소탕을 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어젠 오줌이 너무 급해 집 뒤에서 오줌을 누었다. 사실 이곳에서 오줌 눈 게 여러 번인데 평소와 다른 무언가 눈에 띄었다. 연한 흙색 구형의 물체. 눈에 띄기 어려울 법도 한데 찔레나무에 걸려 있는 것이 또렷이 보였다. 말벌집이다. 왠지 익숙하면서도 기괴한 문양이었고, 핸드볼 정도 크기였다. 벌통에서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다.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다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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