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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플랜B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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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Aug 14. 2023

등검은 형님은 원래 화난 얼굴상

더 화나게 해서 미안해요

오우 말벌집. 


쉣...이미 시작해 버린 노상방뇨를 멈출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오래 참은 날(어쩌면 이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있었을지도). 나는 한창 무방비 상태였고, 말벌 형님들은 한창 러시아워였다. 그 짧은 시간에도 많은 등검은 형님들이 사냥을 나가고 전리품을 들고 복귀하고 있었다. 나는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시작했다. 그럴 때는 꼭 발밑에 잔가지가 있다. 잔가지 부서지는 느낌이 뒷골까지 올라왔다. 이것들을 진즉에 불쏘시개로 썼어야 했는데. 불구덩이에서 살아 나왔다.


등검은말벌은 아열대지역에서 온 외래곤충이다. 지금은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됐다. 2003년 부산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겨울을 견디지 못할 거란 예측이 있었다. 지금 강원도에서도 발견이 되고 있다. 신문에는 올해 등검은말벌 출몰이 예년보다 빠르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래서 그런 줄로만 알았지. 우리 집 바로 뒤에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어쩐지 자주 온다 싶었다. 생각해 보면 곤충이 이사떡 돌리러 올리가 없었다. 봉장에 한 두 마리씩은 있는 것이, 거의 살다시피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속았다. 도망가는 형님들이 저 멀리 산속으로 날아가는 듯한 제스처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이 능청스러운 녀석들. 어떻게 보면 더 잘된 일이었다. 이곳은 나의 홈그라운드였다. 내 손아귀. 여차하면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나는 알고 있었다. 다행히 크기도 아직 작았다. 


일단 멀리 출타한 짝꿍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이게 마지막 전화라고 한다면 사랑한다는 말은 아니고, 5분 후 연락이 안 된다면 구조 전화를 부탁했다. 짝꿍은 자신이 돌아갈 때까지 며칠만 참으라고 했다. 하지만 수시로 들락거리는 깡패 놈들을 보고도 지나칠 수 없었다. 여보, 안녕.


우선 멍멍이를 피신시켜 놓고, 염소도 멀찍이 묶어두었다. 등검은 형님들은 성질이 나면 주변의 잠재적인 위험 요소까지 공격한다고 했다. 우리 집 동물들은 하필이면 다들 까맸다. 흑염소와 흑구, 심지어 닭까지 까맣다. 까만색은 벌들의 눈에 잘 띤다고 했다. 대대로 침략자였던 곰, 오소리 같은 동물들이 까만색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우주복 같은 방충복을 입고, 가죽 장갑을 꼈다. 긴 바지와 장화. 말복 더위에 벌써부터 땀이 났다. 아니 옷이 이미 젖어있는 느낌이다. 돌을 찾아들었다. 막대로 때리는 게 확실하겠지만, 말벌의 사정거리  안에 있는 것은 무섭다. 호신용으로 잠자리채를 들었다. 아니지, 이럴 땐 배드민턴 채를 들어야지. 땀이 줄줄 흘렀다. 말벌집은 키 큰 나무 위가 아닌 키 작은 찔레나무에 달려 있었다. 아래는 논물이 흐르는 골짜기였다. 내려다 보이는 위치라 쉽게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묵직한 돌을 선택했다. 


툭.


맞았다! 중국 공갈빵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벌집이 나무에서 떨어졌다. 그대로 천길 낭떠러지(였으면 좋았겠으나, 2미터 깊이의) 협곡으로 굴러갔다. 공갈빵.. 아니 벌집에서 말벌 형님들이 뛰쳐나오는 게 보였다. 말벌은 평소에도 화가 난 상이다. 더듬이가 눈썹 같이 삐뚤어진 게 특히 그런 느낌을 준다. 오늘은 더 슈퍼 앵그리 말벌이었다. 'ㅅㅂ 뭐야?'가 뒤통수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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