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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플랜B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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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Sep 04. 2023

입추_장수말벌은 문워크 선생님

"쥐 끈끈이에 장수말벌을 붙여두면 자매를 구하러 온 장수들이 줄줄이 포획된다."


책에서 이 방법을 본 후로 이날이 오길 오랫동안 기다렸다. 회심의 끈끈이였지만 이틀이 지나도 장수말벌은 더 붙지 않았다. 처음 한 마리만 그대로 외로이 죽었다. 장수말벌이 아니었던 걸까. 실망한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살생을 이렇게 기다리게 되다니. 약간 반성.


오랜만에 부모님 집엘 다녀왔다. 돌아와 순차적으로 동물을 살핀 후, 벌통을 보았다. 검지손가락 만한 녀석들이 벌통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크게 보여서 크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정말 컸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주황색. 머리도, 줄무늬도 주황색인 말벌 십여 마리가 있었다. 앉아있기도 하고, 날고 있기도 했다. 벌통엔 꿀벌들이 쏟아져 나와있었다. 어린이집 체육대회에 고등학생 깡패들이 행패 부리는 모습이었다. 이미 늦은 건 아닐까. 피가 왈칼 거꾸로 솟았다. 


장수말벌이 쳐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엊그제 끈끈이 트랩 때문에 화가 나서 복수를 하러 온 것일까. 장수말벌은 '사과는 됐고, 여기 책임자 나오라고' 하며, 꿀벌들을 마구... 두들겨 패(도륙하)고 있었다. 폭군 장수말벌의 목표는 벌통 속 애벌레였다. 지금은 겨울을 위한 수많은 공주벌을 길러야 하는 시기. 최대한 많은 공주벌이 태어나야 봄까지 생존할 확률이 높아진다. 정찰벌이 사냥터를 발견하면 자매벌 군단을 부르는 페로몬을 뿌린다. 장수말벌 한 마리에도 꿀벌은 속수무책인데, 빠르고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군단이 출동한다. 장수말벌에게 사냥을 당하는 건 같은 말벌끼리도 마찬가지다. 장수는 꿀벌이든 쌍살벌이든 같은 말벌이든 일벌들은 모두 죽인 후 애벌레를 훔쳐간다. 장수말벌은 곤충계의 정점이다. 


생각나는 대로 대응책을 꺼냈다. 우선 쥐 끈끈이다. 그런데 하필 이번 주말에 평소에 하지 않던 정리를 했더니, 끈끈이를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다.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더니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뜻이었나. 지금 이 순간에도 죽고 있을 꿀벌을 생각하니 식은땀이 흘렀다. 같은 자리를 세 바퀴 돌고,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처음 그 자리에서 발견했다. 됐다.


잠자리채를 집자마자 잠자리채 머리가 떨어졌다. 망과 막대의 이음새가 평소에도 약하더라니 기다렸다는 듯 빠져버렸다. 머리 빠진 잠자리채는 유독 가녀린 작대기에 불과했다. 평소에 단단히 고정시켜놓았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또 하나의 (가녀린) 잠자리채를 더 구비해 두었지. 이 와중에 저 멀리 등검은말벌들이 꿀벌을 잡아가려는 게 보였다. 그건 이제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엄마는 위대하다. 나는 반팔, 반바지에 양말도 신지 않은 상태로 장수말벌을 향해 달렸다. 옷 입고 자시고 할 때가 아니었다.


자, 덤벼라, 인마들아. 


어느 집단이던 어벙한 놈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장수말벌 사이에서도 그놈을 느낄 수 있었다. 슬금슬금 잠자리채를 가까이 가져갔다. 이 녀석은 이게 죽음의 시스루인 줄 모르고 잠자리채에 올라탔다. 주도권을 빼앗겨 당황스럽지만 나는 그대로 채를 뒤집어 녀석을 잡았다. 다른 녀석들 모르게 한놈만 잡아내는 게 포인트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는 상황이랄까. 다른 덩치들은 사냥 중이라 그런지 자매벌이 사라지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혹시 폭행 장면을 들키면 안 되니 뒤로 끌고 갔다. 


이제 이놈을 끈끈이에 붙일 차례다. 어벙이는 원래 사냥중이었다는 것도 잊고 시스루를 즐기고 있었다. 오르락내리락하며 잠자리망 속을 둘러보았다. 나는 급한 마음에 잠자리채 째로 끈끈이에 던졌다. 그물을 던지는 어부처럼. 끈끈이에 붙이는 걸 성공한 거 같다. 하지만 잠자리채를 들어 올리는 순간 말벌이 시스루를 잡고 끈끈이에서 빠져나왔다. 어어. 당황한 나는 말벌 위 그물을 끈끈이에 눌렀다. 그럴수록 그물망만 끈끈이에 붙었다. 발만 끈끈이에 붙어서는 말벌 혼자서도 끈끈이를 뗄 수가 있었다. 게다가 시스루만 붙잡고 있으면 된다는 걸 깨달은 장수말벌은 그물망을 꼭 붙들고 있었다. 잠자리채를 떼려면 말벌도 같이 떨어져야 했다.


결국 장수가 잠자리채에서 빠져나왔다. 어이씨, ㅇ됐다. 장수말벌이 날아올랐다. 잠자리채를 휘둘렀다. 잠자리채는 끈끈이 본드가 묻어 둔해졌다. 네다섯 채집질이 실패로 돌아갔다. 말벌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조금 뒤로 나자빠진 것 같다. 잠자리채를 더 빠르게 휘둘렀지만 말벌은 이미 잠자리채 보다 안쪽으로 날아왔다. 아, 장수에게 쏘이면 얼마나 아플까. 말벌이 내게 날아오... 지 않고 지나쳐갔다. 뒤편 원래 있던 꿀벌 통을 향해 날아갔다. 휴, 다행이지만 다행이 아니다. 나는 다시 벌통을 향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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