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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란도란프로젝트 Nov 03. 2024

"척추"

도란도란 프로젝트 - 오백 예순 다섯 번째 주제


기어이 사달이 나는구나.

한달음에 달려간 날을

잊지 못한다.


낙엽이 산산이 부서지던 

가을의 마지막 문턱 즈음이었다.


당신은 내내 허리가 아프다고 말했고

나이를 먹으면 더러 그런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탓일까,


별 것 아니라는 의사의 말을

귀담아듣지 말걸.


잘 지내면 돌아오겠노라 말하던

그 말을 믿지 말고 의심할 걸.


마지막인 것처럼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울어줄 걸.


후회는 늘 이미 늦은 때에야 온다.


굽은 허리로

밥반찬을 내어주던 시간을 곱씹으면

자꾸 눈물이 난다.


그리고 나서야

길에 온통 굽은 허리로 걷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당신을 본다.


척추라는 고상한 표현도 웃기다던

허리짝을 붙잡고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내닫던

당신의 걸음폭을 흉내내본다.


그렇게 나는 당신을

멋없게 추억한다.


무엇하나 고상하게 추억하지 못하고

애닲게 그리워하게 되었다.

나는.



-Ram


회사에 척추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내 면접을 봤었던 면접관이었다. 그 면접에서 나는 불안과 긴장보단 위안을 얻었고, 여러 조건들이 잘 맞아 입사를 했다. 입사 초반에 여러 업무를 배우기 위해 그분과 가까운 자리에 앉았었는데 인상 깊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일 처리는 당연히 완벽했고, 상황에 따라 팀원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해야 할 때에도 감정 하나 섞이지 않고 원인과 결과,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들을 깔끔하게 설명하다 보니 모든 팀원들이 다 그 분을 따르고 좋아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나는 다른 부서로 옮겨갔기 때문에 그 분과 업무적으로 거의 겹치지 않았지만 회사에서 리더의 모습은 딱 저런 느낌이라는 생각을 하며 가까이서, 멀리서 지켜봤다. 낯선 지역, 낯선 환경, 어쩌면 낯선 업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즈음, 내가 참석하지 않았던 어떤 회의에선 그분이 나를 칭찬했다는 소리를 건너 건너 듣고 업무에 대한 자신감이 상승했고, 아주 가끔 함께 마주칠 때가 있으면 나보고 '연희씨는 늘 멋있어요'라며 뜻밖의 이야기를 건네 내 얼굴에 웃음꽃을 피게 했다. 나 역시 '과장님도 늘 멋있어요! 정말이에요!'라며 마음을 전했다. (뒤에 붙인 '정말이에요'는 예의상 그런 대답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런저런 인터렉션 덕분에 내면의 자존감도 더 공고해졌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조금씩 업무 스킬이 향상되고 있을 무렵, 그분의 퇴사 소식이 들렸다. 그분에게 의지하고 다니던 사람들이 꽤 많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고, 그 분의 마지막 날 회식 땐 대표도 눈물을 보였다. 창업 초기 멤버여서 더욱 애틋했겠지. 회식 자리가 끝나고 주차장에서 모두들 아쉬워서 쉽사리 집에 안 가고 서성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과장이 내게 와서 손을 잡으며 '잘 지내요'라고 하자 나 역시 '과장님도 잘 지내세요'라고 하며 눈물이 터졌다. 의아했다. 내가 왜 눈물을 흘리지. 딱히 저 분과는 많은 역사가 없었는데. 그렇다고 내가 이 회사를 오래 다닌 것도 아닌데. 집에 돌아와 뭔가 요상하고 싱숭생숭한 마음에 계속 눈물의 원인에 대해 스스로 캐물었다. 입사 초, 나는 원인을 알듯 말 듯한  자존감과 자신감 하락의 상황에서 마음이 힘들어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그 과장과 함께한 몇 안 되는 상황 속에서 내가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정말 큰 힘을 얻었기에 그 사람이 내게 크게 와닿았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인생에서 그렇게 짧은 시간 내 힘이 되어 준 사람이 있을까 싶다. 내 삶 속에서 임팩트가 컸던 사람이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무쪼록 그분이 앞으로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Hee


이번 주는 휴재입니다.



-Ho


척추뼈는 중간에 큰 구멍이 있고 그 구멍으로 척추신경이 지나간다.

그래서 척추뼈를 다치면 신경이 손상될 수 있다.

우리 몸에 대해 배우다보면 우리몸이 컴퓨터 못지 않게 체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알게 모르게 우리몸은 우리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게 열심히 살자.



-인이


2024년 11월 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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