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오백 예순 일곱 번째 주제
1.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감정이
슬픔의 척도라면
최소 아파트 몇 채는 무너지는
찰나였다.
그건 슬픔이라고 명명하기 어려운
그런 것이었다.
걱정과 각오와 슬픔을 뭉쳐서
꼿꼿하게 받아내야 하는
순간이었다.
2.
아파트에 살아본 적은 없다.
그래도 살아내보고 싶은
현대식 건물,
요즘의 욕심,
지척에 널려도 내것이 아닌 그런거,
뻗으면 쥐어낼 줄 알았는데
아득히 먼 줄 알고,
그런데도 다분히 가까이에 있는거.
3.
행복으로 층층이 쌓인 줄 알았던
그런게 와르르 무너진다.
정말 와르르.
단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그대로 무너지고야 만다.
-Ram
아침에 일어나서 맑은 공기 마시며 기지개 펴고,
여름이면 눈 비비고 요가 매트 들고 밖으로 나가 스트레칭도 하고,
겨울에도 담요 둘둘 걸치고 따뜻한 커피 들고 하늘 보면서 마시고,
동그란 보름달이 뜨는 밤엔 바깥에 나가 별구경, 달구경 하고,
눈이 오면 블루투스 스피커로 좋아하는 째즈나 캐롤 틀어두고 눈 구경하고,
이불 빨래는 쨍쨍한 햇볕 아래 뽀송하게 말리고.
아파트보다 내 기준 더 살기 좋은 환경을 찾고 있다.
난방비, 전기세가 얼마나 나올지는 아직 가늠이 안되지만,
벌레들이랑 얼마나 많이 마주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차근차근 해보자고.
-Hee
곧 입주할 아파트 사전 점검을 다녀온 뒤로 첫 집, 새 집에 대한 기대와 환상은 길바닥을 나뒹구는 낙엽처럼 떨어졌고, 짓밟혔고, 가루처럼 으스러져 형태도 알아볼 수 없게 변해버렸다. 하자 표시 스티커를 집안 곳곳에 수백 장 붙이면서 열이 끝도 없이 차올랐다.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끊임없이 짜증을 냈고 욕을 했다. 거지근성으로 똘똘 뭉친 조합원들, 날림으로 공사한 시공사, 배 째라는 시행사, 우리 집은 조금 더 신경 써달라고 말해 주겠다던(시공사 본사 근무한다는) 지영이친구, 어느 아파트든 하자는 다 있다고, 살면서 조금씩 고쳐나가는 거라고 남 일처럼 말하는 건설업 종사자 친형까지도.
장작을 열심히 넣은 만큼 활활 타오르는 열기에 결국 나 자신도 타버렸다. 이제 입주까지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고 대출, 이사, 청소, 줄눈, 코팅 등 신경 써야 할 일은 한가득인데 거의 방치 상태다. 차라리 그냥 없었던 일이었으면 좋겠다.
-Ho
브루노마스랑 로제가 아파트라는 노래를 내서 인기가 많다던데, 들어보지도 않았다.
점점 그런것들에 관심이 줄어든다.
날이 추워지고 수능이 끝났고 벌써 연말 분위기다.
가끔 그런생각을 한다. 지나가면서 마주치는 사람들 나와 연결된 사람들의 집을 상상해본다.
누구나 다 집이 있고 돌아갈 곳이 있겠지.
그 사람들의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물건이 있고 어떤 냄새가 날까?
친구집에 놀러가는 일도 매우 드물어진 요즘이다.
나는 아파트보다는 주택이 좋은데,
나중에 난 어떤 집에 살게될까?
-인이
2024년 11월 1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