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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식주의자 Aug 02. 2021

엄마는 자꾸만 나를 찾았다

그리고 물었다, "이게 너야?"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작가가 됐다. 자료 조사와 출연자 섭외, 온갖 허드렛일을 담당하며 막내작가의 악명을 온몸으로 실감하던 시절, 유일한 보상은 방송 끝에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엄마도 뿌듯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엄마와 방송을 보다가 크레딧이 올라갈 때 “엄마, 저기 내 이름 나와!”라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엄마가 물었다. “너는 언제 방송에 나오는데?”

 엄마는 내가 아나운서가 되었으면 했다. 방송국에서 일한다고 하니 이왕이면 얼굴이 나오는 아나운서였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니, 나는 대본 쓰는 (거 빼고 다 하는) 방송작가야~” 하고 몇 번을 말해도 엄마는 지치지 않았다. 마치 방송작가가 아나운서가 되기 전에 밟는 과정 중 하나인 것처럼, 방송작가인 사람에게 당연히 물어야 할 질문처럼 물었다. “그래서, 너는 방송 언제 나오는데?”


 방송작가를 그만둔 후에는 출판사 편집자가 됐다. 첫 책이 출간된 후 판권 페이지에 들어간 내 이름을 보여주며, “엄마, 이거 내가 만든 책이야~”라고 말하자 엄마는 또 물었다. “그래서, 너 책은 언제 나오는데?”

  “아니~ 나는 작가가 아니고, 책을 편집하는 거야”라고 몇 번을 말해도 소용없었다. 매번 엄마는 쓰지도 않은 내 책이 언제 나오는지 출간을 재촉했다. 아니, 언제는 아나운서가 되라더니!


 엄마는 늘 나와는 다른 꿈을 키웠다. 내가 하는 일이 성에 차지 않은 건지, 엄마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사실은 별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정한 꿈에는 기준이 없었으니까. 그 직종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왕이면 이름을 걸거나 얼굴을 보이는 직업이면 뭐라도 좋은 것 같았다. 이유가 뭐든 간에 <사랑의 블랙홀> 같은 도돌이표에 지친 나는 엄마에게 내 직업에 대해 이해시키는 것을 포기했다. 우리 엄마는 정말 특이하다, 다시 한 번 느끼며.



문제의 짤


 얼마  인터넷에서 ‘엄마에게 웃긴  보여줄  현실 반응이라는 이름의 짤을 봤다. 사진  여자는 약간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에 집중하고 있다. 마치  모습이, 엄마에게 웃긴 사진이나 영상을 보여주면, “이게 너야?”, “너는 어딨어?” 하며 당신의 아들 딸을 찾는 모습 같다는 것이. 댓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무슨 사진을 보여줘도 엄마가 나부터 찾는다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사람들은 ‘사람 사는   똑같다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재밌는 사진을 보여주면,   속의 여자처럼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이게 너야? 너는 어딨어?” 하고 물었다. 내가 “아니, 내가 아니고 그냥 웃긴 거야~”라고 하면 시답지 않다는  금세 흥미를 잃었다.


 그 코믹짤은 내가 아나운서가 되길 바라던, 유명한 작가가 되길 바라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어디서든 내가 주연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내가 없는 사진에서 나를 찾는 마음. 그 두 마음은 서로 닿아있겠지. 평생 엄마를 특이하다, 별나다 생각해왔는데, 엄마는 내 생각만큼 특이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투박한 표현 너머에는 여느 엄마 같은 평범하고도 다정한 마음이 있었을지도.


문득 정말로 책을 내면 엄마가 뭐라고 말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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