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서 제일 나이 많은 언니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여건만 된다면 상관없다

by 차차약사

나름 자신감을 갖고 준비했던 시험에서 아깝게 낙방한 것도 아니고 아주 어이없는 점수를 받고 나니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다. 준비 방법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내 실력이 너무나 부족했음을 깨닫고 말았다. 공부로 이렇게 좌절감을 느낀 것... 참 오랜만이었다. 무조건 이번 시험에 붙는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시험을 보고 와서 그냥 좌절 속에 살았다. 재수 이상이 넘쳐나는 시험인데 나는 어떻게 한 번에 붙는다는 생각을 했을까. 여하튼 자신감 하나는 굉장하다. 하지만 부족한 실력에 자신감만 있어서 무엇할까. 나를 응원해 준 부모님과 예비남편, 예비 시부모님에게 너무 면목이 없었다. 그렇지만 마냥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 당장 10월에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좌절은 했지만 그동안 전혀 하지 못했던 결혼 준비는 해야 했다. 가전도 보러 다니고 그릇도 보러 다니고 가구도 보러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참 철이 없었다. 26살에 퇴사한 후에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돌아다니고 나서 하고 싶은 공부 한다고 서른이 넘어서도 부모님의 지원을 받고, 결혼할 때도 모아둔 돈이 없으니 부모님의 지원을 받았다. 남자 친구에게는 또 어떠했는가. 아프리카에 2년이나 다녀오고, 다녀와서도 공부한다고 결혼 준비는 전부 남자 친구 몫으로 남겨놨었다. 그리고 남자 친구가 꿈도 없이 산다고 속으로 타박하면서 정작 결혼할 때는 남자 친구가 성실하게 회사 다니며 모은 월급으로 집을 구하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을 돕는다고 아프리카까지 다녀왔는데 정작 한국에 와서 보니 나는 민폐쟁이에 다름 아니었다.


결혼식은 너무 좋았다. 10월의 어느 날 야외 결혼식을 했는데 그 날의 날씨가 어찌나 찬란하던지. 전통혼례라서 평소와 다른 결혼식에 사람들은 재미를 느껴하셨다. 가야금 연주도 있었고 아프리카에 함께 다녀왔던 활동가 동생들이 한복을 입고 축가도 불러줬다. 시험의 좌절이 전부 사라질 정도로 그 날의 결혼식이 너무 좋아서 그동안 못한 효도를 한꺼번에 한 것 같았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드디어 나는 새댁이 되었다. 전업주부가 꿈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현모양처가 좋다는 말을 어릴 때 들어서 딱 한번 생각해본 적은 있었던 것 같지만 그게 내 꿈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나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던 참에 임신한 것을 알았다. 아... 하늘이 내린 운명이구나. 아이를 키우면서 살라는 운명...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신혼생활이란 낮에는 심심하기 그지없더라. 솜씨가 좋은 사람들은 집에서 알찬 시간을 보낼 테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임신해서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입덧 때문에 자꾸만 처지는데 집에만 있으니 너무 심심하고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퇴근하는 남편만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에 나는 응급실에 가야 했다. 자연유산이 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결혼생활을 시작하겠다는 다짐도 그렇게 지나가버렸다. 우리의 첫 아이를 잃고 한동안은 방황을 했다. 잠깐의 기간이었지만 우리의 아이였고 내 뱃속에서 생명을 움트던 나의 분신이었다. 초음파 상에서만 만났던 아이지만 우리 아이를 너무 사랑했었던 것 같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나름 살 방도를 모색해본다고... 다시금 돌이켜보니 내가 이렇게 집에만 있는 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싶었다. 회사 다니느라, 여행하느라, 아프리카에 있느라, 공부하느라... 이렇게 나만의 독립된 공간에서 나의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기회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즈음에 관심 있는 단체가 있었다. 종교는 없었지만 그 단체의 봉사활동이 진실되어 보였었고 나도 그곳에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다. 마침 내가 사는 지역에 모임이 있어서 몇 차례 모임을 나갔다. 하지만 재미를 붙이지는 못했다. 낮 시간에 가니깐 나와 연령대가 맞지 않았고 대화의 주제가 너무 달랐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서초에 있는 그 단체의 봉사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아프리카까지 가서 거대한 일을 해보겠다는 나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인지를 깨달았기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다시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의 공덕(?)을 쌓아가면서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곳의 활동은 내가 생각했던 보람을 느끼게 하질 못했다. 내가 했던 것은 컴퓨터로 명부를 정리하고 프로그램에 입력하는 일이었다. 분명히 작은 일부터 해보자고 다짐하고 왔건만 그 일을 하면서도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떨쳐지질 않았다. 매주 그곳에 찾아가서 명부를 정리하고 사무실 청소를 하고 집에 오기를 반복했다. 큰 보람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내가 좋은 의미로 선택한 일인데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는 그곳에서 오래 계신 봉사활동가님과 얘기를 나누는데... 젊은 사람이 여기서 이런 걸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씀해주셨다. 난 좋은 일을 하고 싶어서 돕고 싶어서 갔는데 그분은 다르게 생각하신 것 같다. 좋은 마음으로 온 것은 알지만 젊은 사람이 할 일은 아직은 세상에 따로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그 말씀을 듣고 나니, 나는 좋은 일을 하는 것도 때가 있으며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더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동안 꾸물꾸물 올라오던 미련이 있었다. 바로 PEET 시험에 대한 미련이었다. 최선을 다해보지 못한 그 시험에 미련이 남았다. 나는 원래 후회도 잘하지 않고 미련도 잘 갖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PEET 시험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었던 것처럼 나는 그 시험을 제대로 알고 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공부를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해보고 싶었다.


일사천리로 다시 한번 진행되었다. 남편에게 얘기하고 양가 부모님들과 상의하고 나서 다시 한번 시험에 도전해보기로 한 것 말이다. 비록 그 시기가 이미 2월 중순이었지만, 제대로 이 시험을 알고 준비한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정보 부족으로 시험 준비에 착오가 생기지 않도록 이번에는 혼자 공부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학원으로 직행했다.


초시 때는 학원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서른 살이 넘는 나이에 팔팔한 이십 대 사이에서 공부할 자신이 없었다. 어디 가도 막내거나 무리 속에서 잘 섞이며 살아왔는데 늙수구리 언니가 학원에서 공부하는 모습이 좋게 연상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학원비도 부담됐었고 혼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어서 나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한 끝에 낙방이라는 결과를 만나고 말았으니, 이제는 그런 체면도 돈을 아끼는 것도 낙방 앞에서는 전부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에는 학원 등록을 가장 먼저 했다. 나이가 가장 많아도 상관없었다. 나에겐 오로지 이 시험에 대한 지도를 제대로 받고 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가장 중요했다. 그렇게 나는 학원에서 가장 나이 많은 언니, 심지어 직원보다 나이 많은 사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이미 1월부터 시작한 그곳에 나이 많은 언니가 턱하니 나타나 자리 쟁탈을 해가며 맨 앞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나이 어린 동생들은 그런 언니가 유난스럽고 불편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나의 공부에만 집중했다.

keyword
이전 09화가족의 지원까지 영끌했는데 첫 시험은 폭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