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지원까지 영끌했는데 첫 시험은 폭망

by 차차약사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PEET시험 초시(첫 시험)는 폭망이었다. 고등학교 때 수능보듯이 생각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라고 해도, 뭔가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대학에 갈 수가 있었다. 점수에 맞는 대학이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고3을 보내고 재수도 하긴 했지만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래서 PEET시험에 대한 괜한 자신감이 있었다. 고3 때처럼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2013년 2월에 PEET시험 존재를 알게 된 후에, 하루는 졸업한 대학원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아프리카에서 왔으니 교수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앞으로 피트시험을 공부해보겠다고 하자 교수님께서는 대학원 연구실 빈 자리에서 공부하라고 하셨다. 오예~! 공부할 자리가 공짜로 생기다니~! 하지만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나는 피트시험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학원에 가서 상담도 받아보고 이왕이면 학원에서 수업을 듣거나 나에게 필요한 강의커리큘럼을 알았더라면 나는 대학원에서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원 환경이 고시공부하듯 공부하는 곳은 아니니깐 말이다. 그렇게 안일한 자세로 공부하면 절대 붙을 수 없는 시험이라는 걸 그때는 정말 몰랐다.


잘 몰라서 용감하게 이 시험을 준비할 수 있던 게 오히려 행운이라면 행운일까. 연구실에 나의 공부자리까지 생기니 바로 시험공부에 돌입할 수는 있었다. 나처럼 바로 시험에 직진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보통은 이 시험을 알게 된지는 몇 개월은 지나고 나의 여건이 되었을 때 시작할 것이다. 특히 나처럼 나이 서른이 넘어서 준비한다면 직장을 관두고 해야할지 다니면서 해야할지, 이 시험을 보는게 승산이 있을지, 기회비용은 얼마일지를 따져가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엄청 단순했다. ‘내가 하고 싶은지’가 기준이었다. 그리고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 탓에 이 시험에서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물론 아예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며칠간이었지만 약사라는 직업이 나에게 얼마나 잘 맞을지를 나의 성향에 맞춰 검토했다. 그동안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도전했다면, 심지어 약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직업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이는 걸림돌이 아니었다. 100세 시대라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은퇴시기가 빨라져서 40대에도 은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 공부 시작해서 평생 일할 수 있다면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백수라서 시작하는게 더 빨랐다. 가끔 약대 관련 커뮤니티에 가면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해야 할지 관두고 해야할지 고민하는 글들이 많다. 나도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결정이 절대 쉽지 않았으리라. 매달 받는 월급도 정말 크니깐 말이다. 불안정한 나의 위치는 뭔가를 시작할 때 오히려 도움이 됐다. 26살에 회사를 퇴사할 수 있었던 것도 계약직이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로 2년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백수였던 내가 아프리카라도 간다고 하니, 게다가 유네스코를 통해 간다고 하니 부모님이 허락해주셨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와 자꾸 취업도 안 되니깐 피트시험을 친다고 했을 때 부모님과 예비남편, 예비시부모님이 허락해주신 것이다.


공부할 세팅을 만들어가는 와중에 3월에는 상견례를 했다. 상견례에서는 보통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기 마당인데 우리는 나의 새로운 공부시작이 화두였다. 우리 부모님은 직업도 없이 결혼하는데다가 공부한다고 하는 딸을 시집보내려니 죄송한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다. 심지어 벌어놓은 돈도 없었으니 말이다. 우리 시부모님은 너무 좋으시게도... 그런 나를 마음으로 받아주셨다. 결혼날짜는 자연스럽게 PEET시험을 치르는 8월 이후인 10월로 정해졌다.


3월부터는 본격적인 수험생 생활에 돌입했다. 아침에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대학원 연구실에 출근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도시락을 싸가거나 혼자서 밥을 먹었다. 의자만 돌리면 얼굴을 마주치는 좁은 연구실에 선배가 찾아와서 후배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는 대학원 다닐 때 선후배들과 연구실에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수다도 떨고, 같이 컴퓨터 게임하면서 소리지르기도 하고, 축구나 야구경기가 있을 때는 함께 관람하며 응원하기도 했었는데... 나 때문에 그런 것들을 못하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나는 주위에 PEET시험을 공부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피트시험 처음 시작할 때는 수능이 도움이 된다고 해서 수능물리집을 중고로 싸게 사서 풀기 시작했고 화학은 인터넷에 떠도는 무료강의를 보기 시작했다. 백수였기 때문에 최대한 돈을 안 쓰려고 했다. 책을 싸게 사려고 중고나라와 약대 관련 커뮤니티를 수도 없이 들락날락했다. 그리고 나는 인터넷 강의 세대가 아니여서 인강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강사 카페에 가입하면 무료로 동영상 강의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카페에 가입했다. 그리고 생물은 인강을 결재했는데 다른 사람이랑 나눠서 보면 반값이라고 해서 같이 들을 사람을 구하려고 또 인터넷을 들락날락했다.


스터디를 하면 좋다고 해서 스터디 모임을 찾아갔다. 신촌에서 처음 만났는데 나처럼 초시생도 있지만 이미 시험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 안 그래도 시험에 대해 잘 몰라서 답답했었는데 잘 알고 있는 분들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자주 만나서 진도를 체크했고 함께 문제집을 풀기도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밥도 같이 먹었다. 그러다가 밥만 먹고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웠다. 하루는 떡볶이 집에 갔는데 맥주를 같이 팔길래 맥주를 먹었고 그렇게 먹다보니 아쉬워서 술을 사다가 학교 운동장에서 먹었고 그래도 아쉬워서 저녁에 공부마치고 회포를 풀었다. 공부 안 되는 날은 안 된다고... 공부 열심히 한 날은 열심히 했다고... 서로 카톡하고 회식하면서 공부시간을 잡아먹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미쳤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게 이 시험에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시험의 난이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벌이진 일이다. 고3때도 친구들이랑 밥 먹고 놀고, 야자 끝나고 놀고, 시험 끝나고 놀고... 이렇게 놀면서도 대학에 갔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시험공부를 해도 되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고3 때 공부와 30대가 되어서 하는 공부는 너무 다르다. 고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지도해주시고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보면서 내 실력을 체크할 기회가 많다. 수시로 전국모의고사를 보면서 내가 어느 정도 위치인지도 파악할 수가 있다. 내가 알아보지 않아도 학교와 학원에서 계속 공부자료를 제공해주고 나는 그것을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또한 엉덩이 힘은 이미 중학생 때부터 길러지지 않았던가.


30대가 되어 하는 공부는 완전히 다른데 나는 고3때와 같은 마음으로 준비한 것이 패착이었다. 30대가 되면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다. 내가 알아봐야 하고 내가 결정해야 한다. PEET시험도 전국모의고사가 있지만 수능대비 모의고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혼자 공부하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공부자료도 누가 알아서 챙겨주지 않는다. 내가 직접 올바른 자료를 선별해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엉덩이 힘은 이미 수능 이후로 무너져 있어서 가벼워진 엉덩이에 더불어 대학생 때부터 놀던 습관으로 인해 자꾸 놀고 싶어진다.


이런 걸 모르는 부모님과 예비남편은 나를 한결같이 지지해줬는데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 10월에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때 내가 결혼을 위해 준비한 것은 딱 하나밖에 없다. 바로 결혼식장을 잡은 것이다. 그것도 전통혼례를 하기로 해서 스드메라고 하는 것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가 살 신혼집을 알아보는 것도 시부모님과 남편이 했고 나는 첫 우리집이 될 그곳을 공부한다고 가보지도 않았다. 피트시험을 치르고 나서 2개월의 여유가 있어 그때 대부분 준비할 수 있기는 했지만 공부를 핑계로 많은 짐들을 짊어준 가족들에게 너무 죄송하다. 더 절실한 마음으로 후회없이 공부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나는 가족에게 폐를 끼치면서까지 시작한 PEET시험이지만 시험에 대한 노력 부족으로 30대 첫 PEET시험에서 폭망하고 말았다.


어릴 때와 다른 30대의 도전의 특징


1. 엉덩이 힘을 새롭게 길러야 한다.

2.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다.

3. 시험 난이도 파악이 어렵다.

4. 어느 정도로 공부해야 하는지 감이 없다.

5. 돈 아끼려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이런 어려움이 있어서 30대가 되어 새롭게 공부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만약 내가 이 시험이 어느 정도 공부가 필요한지 알았더라면 어쩌면 시도조차 안 했을 수도 있다. 사법고시가 엄청 어려우니깐 시도할 생각도 안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대인 내가 시험을 보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아이러니하게도 백수라서 불안정한 삶이 시작을 하게 했다. 둘째, 단순한 성격 탓에 이것저것 재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지를 기준으로 선택했다. 셋째,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성향 탓에 시험에 합격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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