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 돌고 돌아 약대 입시 시험에 도전하다

by 차차약사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계속되는 낙방 소식에 지쳐갈 때쯤, 하루는 대학교 동아리 사람들과 여행을 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후배와 차 안에서 한국에 와서 취업을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는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후배가 “누나, PEET 시험 쳐보는 거 어때요?”라고 이야기한다.

“PEET가 뭐야?”


“의대 가려고 MEET 시험 치는 것처럼 약대도 이제 PEET 시험을 치고 가요. 과학 4과목 보는 시험이에요. 물리랑 생물, 화학, 유기화학이요.”


“약대라고?”


내 인생에서 약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약사라고? 어릴 때라면 그냥 넘기고 말았을 텐데 이번에는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약사가 되면 뭐가 좋지?...’


취업을 준비하면서도 고민이 많던 차였다. 설령 취업이 된다 하더라도 이제 곧 결혼할 남자 친구의 직장과 나의 직장이 멀어지면 집은 어디에 구해야 하나... 만약 중간지점이 강남 같은 곳이라면... 그 비싼 집값을 어떻게 감당할까. 최근에 결혼하려고 하던 친구가 부부 직장의 중간이 강남인데 너무 비싸다며 한숨 쉬던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모아놓은 돈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고민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결혼하면 아기도 낳을 텐데... 힘들게 취업해서 육아로 인해 관두게 될 상황이 그려지기도 했다. 외동딸로 자란 나는 아이들을 많이 낳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낳으며 퇴사하는 친구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둘만 낳아도 직장생활과 육아의 병행이 어려울 것 같았다.


또한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과 조직생활은 다르다는 것을 이전 직장에서 깨우친 바였다. 내가 열정을 느끼지 못하는 조직생활은 나의 하루하루를 잠식할 것이고 이내 부정적인 예전의 나로 돌아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예전 회사는 밤 9시에 퇴근하면 일찍 마치는 것일 정도로 야근이 많았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다시 내 삶이 없어질까 봐 두려웠다.


집값, 육아, 부정적인 나로 돌아갈 것 같은 두려움... 들 때문에 이렇게 취업 한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근원적인 회의감이 있던 차였다.






그런데 나의 고민을 약사에 대입해볼수록 약사라는 직업이 아주 좋아 보였다. 약사는 직장 위치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지역에서 취업할 수 있다. 그래서 남편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 살 수 있다.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약사는 경력단절이 없다. 육아를 할 때는 쉬다가 언제든지 원할 때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 조정이 가능한 (그 당시에 내가 알기로는) 거의 유일무이한 직업 같았다. 내 영혼을 채우는 시간이 주는 행복감을 몇 년 간 이미 맛봐온 나는 그 행복을 절대 다시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는 교사나 약사가 되라고 하는 어른들을 보면 현실에 타협하고 편한 일을 하라는 것 같아서 싫었다. 내 꿈은 이렇게나 원대한데 편한 직업을 선택하라는 어른들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보냈고 그런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나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원까지 나와서 세상을 몇 년간 돌아다니고 서른 살이 되고 나서야 약사에 도전해볼까 생각하다니... 역시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인생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사실은 아프리카에서 2년 동안 살면서 스페셜리스트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아무리 전공 불문으로 모집한 프로그램이었지만 막상 짐바브웨에서 살면서 내가 느낀 것은 나만의 뾰족한 것이 있어야 진짜 도움이 된다는 점이었다.


예전에는 누구를 돕는 데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했었는데 막상 짐바브웨에서 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도우러 갔지만 그들의 삶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배우는데만 2년을 보내고 왔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정말 사람들이 불편한 것을 고쳐줄 수 있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는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의료봉사를 오시는 의사 선생님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직업을 가졌다면 진짜 도움이 될 텐데...


그런데 약사도 아픈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라는 생각을 했다. 약을 통해 아픈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너무나 보람될 것 같았다. 내가 상상하는 다양한 꿈이 약사라는 직업을 통해 펼쳐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집중하니 나는 당장 PEET 시험을 봐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2013년 2월 중순에 동아리 사람들과 여행을 하면서 PEET 시험을 처음 알게 됐고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다. 우선은 부모님에게 얘기했고 예비남편에게도 얘기했다. 부모님도 약사를 준비하겠다는 나의 이야기에 처음에는 의아해하셨다가 약사가 워낙 좋은 직업인 걸 아시므로 선뜻 찬성해주셨다. 그리고 예비남편은 이미 동아리 사람들과 여행을 같이 가면서 이 시험에 대해 알았고 취업준비를 하면서 계속되는 면접 실패로 의욕을 잃어가던 내가 의욕적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찬성해줬다.






PEET 시험은 2009년부터 약대가 6년제로 개편되면서 시작된 시험이었고 과학 4과목을 치르는 시험이다. 의사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가 의대를 준비하던 시기에 PEET 시험이 있었다면 자기는 MEET가 아니라 PEET를 응시했을 것이란 얘기를 하더라. 그만큼 약사가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얘기였고 한편으로는 지금 이 시기에 이 시험이 존재한다는 것이 나를 위한 새로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능이라면 엄두 내지도 않았을 텐데 이과 출신인 내가 도전해볼 만한 시험이었다.


그리고 나는 2013년 그 해 결혼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새로운 시험에 도전하기에 나는 최적의 위치에 있었다. 리스크를 안고 직장을 그만둘 필요도 없었고 결혼까지 유예기간이 있었으며 남자 친구가 직장이 있으므로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었다. 낙관주의자인 나는 어느새 PEET 시험이 꼭 나를 위해 생긴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어떻게 보면 내가 백수여서 다행이었다. 백수라서 부모님도, 남자 친구도, 예비 시부모님도 모두 흔쾌히 나의 새로운 계획에 동의해주셨던 것 같다. 가끔은 그래서 잃을 것이 없는 삶을 살아보는 것도 괜찮다. 26살에 회사를 관두고 자전거 전국일주와 아프리카에서의 봉사활동을 하고 한국에 돌아오니 나의 나이 서른 살... 나는 잃어버릴 직업과 위치가 없었다. 그래서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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