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에 학원 두 곳 다녀보고 내린 결론
PEET 점수가 나오고 나니 윤곽이 잡혔다. 내 점수로는 어쨌든 약대에 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약대는 학교별로 점수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 학교 이름보다는 약사 자격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편 직장이 있는 인천에 살고 있었지만 약대에 합격할 수 있다면 어디라도 간다는 생각으로 시험을 준비했었다. 대부분의 PEET 준비생이 그런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어느 약대라도 합격할 수 있는 점수를 받은 것을 확인하고는 안심할 수 있었다.
이제는 원서 낼 학교를 결정하는 것과 면접과 자기소개서 준비가 남았다. PEET 제도 하에서 수험생들은 가군, 나군 두 학교에 지원할 수가 있다. 내 점수로 지원 가능한 학교를 알기 위해 학원에 찾아갔다. 점수를 들으신 학원 직원분이 축하한다고 해주셨고 고득점 수기를 부탁하셨다. 내가 다녔던 학원은 유명한 학원에 비해서는 매우 작은 학원이었다. 그래서인지 합격권 점수를 받은 학생 수도 매우 적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내게 수기를 부탁하셨으리라.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다. 몇 개월을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부하면서 얼굴도 익히고 눈인사 정도는 하면서 지내 온 관계들이 있었다.
특히 엉덩이가 진짜 무거웠던 커플이 있었다. 어린 커플이었는데도 얼마나 대단했는지 모른다. 커플이 함께 학원을 다니면 수업이나 자습을 빼먹고 데이트하러 다닐 만도 한데, 이 둘은 항상 독서실에 함께 앉아서 그 누구보다 진득하게 공부했었다. 그래서 이 커플이 어떻게 됐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학원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줬지만 다른 학생들에 대해서는 학원도 별다른 정보가 없는 듯했다. 학생들이 학원에 직접 알려주지 않으면 알 방법이 없다. 나처럼 점수가 합격권이면 학원에 연락해서 학교 지원 지도도 받고 면접 준비에 대해 문의할 테지만, 점수가 좋지 않다면 자발적으로 학원에 알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루는 면접 수업을 듣기 위해 학원에 갔다가 예쁜 커플의 남학생을 만났다. 여학생은 왜 함께 오지 않을 걸까? 공부할 때는 한 번도 얘기를 나눠본 적도 없는데 그 날은 인사를 나눴고 여자 친구의 소식을 물었다.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학원에서 알게 된 한 동생은 대박이 나서 수도권 의대 합격이 가능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다른 동생은 PEET 시험을 보고 난 직후에는 느낌이 좋았다고 했는데 막상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너무 안타까웠다. 몇 번의 PEET 시험을 본 것으로 알고 있었고, 심지어 지난해에는 예비 1번에서 탈락했다고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이번엔 정말 합격하기를 바랐던 동생이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웠다.
학원에 처음 등록했을 때 들었던 얘기가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이 많은 학생 중에 단 10%도 안 되는 사람만 합격한다고 했던 이야기 말이다.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다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이 중의 90%는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된다는 건단 말일까?
수능은 몇 번의 시험을 치르든지 간에 결국은 갈 수 있는 대학은 있다.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PEET 시험은 그렇지 못하다. 오로지 합격 아니면 불합격이다. 초시 때 함께 스터디했던 동생들도 다시 PEET 시험을 봤는데, 이번에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것 같다. 한 명은 재수였고 다른 한 명은 삼수였다. 누구나 같은 마음으로 준비하고 노력의 크기도 비슷해 보이지만 점수는 그렇지가 않았다.
면접과 자기소개서 강의는 가장 유명한 학원인 메가엠디에서 듣게 되었다. 면접과 자기소개서 준비 강의료만 60만 원에 가까웠다. 내 돈을 내고 가야 한다면 등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32살이었기 때문에 나이에 상관없이 PEET 점수, 토익점수, GPA 점수만 보는 대학에 지원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가엠디에서 강의를 무료로 들을 우연한 기회가 생겼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메가엠디에 들어선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벽면 한가득 붙은 학생들의 PEET 점수를 봤기 때문이다. 내가 다녔던 학원은 내가 고득점 수기를 적어야 할 정도로 합격 가능한 학생 수 자체가 많지가 않았다. 하지만 메가엠디는 전국권의 모든 점수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나 보던 점수들이 1등부터 쭉 나열되어 있는데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서울대 약대 박사 출신들이 와서 면접 강의를 했고 자기소개서 작성을 도와줬다. 그리고 그분들 앞에서 모의면접도 치렀다. 학원에 돈이 많으니 섭외력이 엄청나게 빵빵했다. 하루는 PEET 시험 차석 출신이 와서 어떻게 공부했고 어떻게 면접 준비를 했는지를 강의했다. 온갖 똑똑한 사람들을 여기서 다 만나보게 되었다.
PEET 시험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 돈 때문에 학원 등록을 망설이는 고민을 많이 듣는다. 학원비가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학원이 좋은 것은 알지만 너무 비싸기도 하고 인터넷 강의만 듣고도 합격한 학생들이 있다고 하니 자신도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부해야겠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나도 돈 때문에 무료 강의를 찾아보고 중고나라에서 중고책을 검색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안다. 하지만 결국 아끼려다가 망했던 뼈아픈 경험 때문에 재시 때는 학원에 갔던 것이다. 재시 때도 돈은 내게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었기 때문에 학원비가 비싼 메가엠디는 생각도 안 했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 다시 PEET 시험을 준비하라고 한다면 나는 무조건 제일 큰 학원에 갈 것이다. 그 이유는 벽에 가득 붙어있던 합격생들의 점수 때문이다. 그 학원에는 전국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몰려 있다. 주위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고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많다면 나도 덩달아 영향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공부를 하든 다이어트를 하든 재테크를 하든 역시 나의 주위 환경이 큰 몫을 하는 것을 많이 봐 왔다. 혼자서 묵묵히 공부를 잘하는 사람과 달리 나처럼 환경으로부터 자극을 받는 사람이라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게 합격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원비가 비싸서 고민이라는 질문을 받을 때 차라리 몇 개월 바짝 알바를 해서라도 돈을 모아 무조건 학원에 가라고 조언한다. 학원에 간다고 합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합격에 유리한 환경이 있다면 거기에 투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불합격하면 내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그동안의 강의료와 생활비도 불합격과 함께 모두 사라진다.
메가엠디에서의 경험은 내게 충격의 연속이었다. 서울대 약대 박사 출신들의 지도 뿐만 아니라 내가 지원할 학교가 정해지면 지원하는 학교별로 면접스터디를 짜준다. 그리고 해당 약대 학생들이 조교로 면접을 지도하면서 실제 자신들이 어떻게 면접을 준비했는지 생생하게 알려준다. 마지막에는 해당 학교 약학관에 가서 진짜 면접을 치르듯이 대비를 하기도 했었다.
60만 원이 아까워서 내 돈 내라고 하면 절대 등록하지 않았을 메가엠디에서의 짧은 경험은 내게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이 모이고, 돈이 모이는 곳에 인재와 정보들이 모인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메가엠디를 다녔다면 몰랐을 수도 있는 사실이다. 비교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PEET는 학원비도 비싸지만 시험을 본다고 끝이 아니다. 본고사는 8월이고 원서접수는 11월, 그리고 서류합격 발표 및 면접이 12월에 실시되고 1월에 발표가 난다. 만약 예비번호를 받았다면 2월 말까지도 기다려야 하는 지루한 여정이다. 그 기간에 면접 준비, 자기소개서 작성 등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에 또 계속 돈이 든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시험제도이지만 수능으로 갈 수 있을 때보다 준비기간이 연장되고 비용이 계속 발생한다. 준비과정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발생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걸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현 시스템이 그렇고 내가 약대에 가고 싶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공부에 가장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돈을 아끼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좋은 공부환경과 정보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기 위해 돈을 투자하길 권유한다. 내가 두 학원을 경험해보고서 내린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