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에 면접을 봤습니다. 회사 아니고 대학교요.

다시 대학에 들어간 엄마 대학생입니다~

by 차차약사

약학대에는 스펙을 보는 정성대와 PEET 점수, 토익점수, GPA 점수, 즉 정량적인 점수의 비중이 높은 정량대가 있다. '우리 학교는 정성대입니다. 우리 학교는 정량대입니다.'라고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학교의 입시전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자기소개서, 면접 비중이 높은 학교는 정성대이고 그렇지 않은 학교는 정량대이다. 그리고 그동안의 합격사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슬프게도 나이도 스펙의 하나가 된다. 30대가 넘어가면 어떤 화려한 스펙을 가졌을지언정 정량대에 지원해야 한다.


약대 입시는 가군, 나군 두 군데의 학교에 지원할 수 있다. 어느 곳에 원서를 낼지 끝까지 고민됐다. 우선 한 군데는 정해졌다. 서울에 소재한 A 여대로서 나이를 보지 않고 점수만으로 합격여부가 결정되는 곳이다. 작년 합격자들의 점수 커트라인을 봤을 때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곳이었다. 일명 안전빵인 곳 말이다.

다른 한 군데는 정성대이지만 작년에 30대 합격자가 있다고 했던 B학교로 결정했다. 한 곳을 안정 지원해뒀으니 다른 한 곳은 모험을 해봐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정성대이긴 하지만 우리 집에서 가깝고 장학금 혜택이 좋은 곳이라서 모험해보기로 결정했다.



약대 면접 준비


학원에서는 B학교에 지원하는 학생들을 모아 면접스터디를 짜줬다. B학교 약대생 지도를 받으며 면접 준비를 했다. 우리 조에는 아직 학교를 다니는 어린 재학생도 있었고 나보다 살짝 어린 30대 동생도 있었다. 내가 나이는 가장 많았지만 같은 목표를 향해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어울리려 노력했다.


그때쯤 나는 약대 합격을 확신하고 마음이 좀 떠있었다. 합격한다고 생각하니 당장 임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학기 중에 출산을 하면 여러 가지로 꼬이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방학에 낳을 수 있게 계획임신을 고려했다. 내년 여름방학에 낳을 수 있게 예정일을 계산해서 드디어 임신을 했다.


임신을 하니 너무 졸리고 무기력해졌다. PEET 시험을 준비하면서 많이 고친 줄 알았는데 게으름이 임신과 함께 다시 찾아왔다. 집에서는 도저히 면접 공부를 안 할 것 같아서 동네에 독서실을 끊었는데 독서실에 간 날이 손에 꼽았다. 그나마 면접 스터디가 있는 날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신촌으로 향했다. 혼자서는 정말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싶다. 면접 스터디라도 하니깐 공부도 하게 되고, 반복되는 질문 유형과 학원에서 해주는 강사님들 강의를 듣다 보니 머리에 뭔가 남기는 하더라.


학원에서는 서울대 약대 박사님 출신으로 꾸려진 모의면접을 치르게 해 줬다. 실전 분위기처럼 면접을 보고 동영상을 찍어보면서 피드백도 받았다. 조교와 함께 하는 면접스터디에서는 실제 우리가 지원한 학교 약학관 건물에서 면접을 치러보는 경험도 가졌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안 했을 것 같은데 이런 것들을 하나씩 경험해가다 보니 실력도 나아지는 것 같았고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약대 자기소개서 준비


자기소개서는 학원에서 박사님들과 피드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몇 번 준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정해진 기간까지 무조건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보내야 한다. 지금은 블로그에 자기소개서를 올려놓고 PEET 준비생들이 볼 수 있도록 공유를 해두었지만, 처음에 썼던 자기소개서를 보면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자기소개서를 써서 강사님에게 이메일로 보내면 ‘왜 약대에 가고 싶은지 보이질 않는다’ ‘왜 세나씨를 뽑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등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자기소개서 제목만 봐도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술술 나오고 ‘이걸 왜 못 써?’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무슨 내용으로 채워야 할지 앞이 깜깜했었다. 하지만 결국 피드백과 수정을 거치니 정교한 답안이 나오기는 하더라. 나중에는 ‘이 정도면 세나씨 색깔이 잘 묻어난 것 같다’라는 피드백을 받게 되었다.


조교님들과 박사님들의 도움을 받아 면접 준비, 자기소개서 준비라는 지루한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왜 지루하냐면, 8월 말에 피트를 치고 11월에 접수하고 실제 면접을 볼 때까지 무려 4개월을 그 준비를 하면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원서 접수를 하고 A, B 학교 모두 서류 합격 통보를 받았다. 면접날까지 기다리면서 우리는 실제 지원하는 B학교에 가서 모의면접을 진행했다. 그때 내가 대답도 잘하고 태도도 좋았나 보다. 모의면접을 진행해 준 B학교 약대생 조교들이 ”오늘 봤던 학생들 중에서 가장 좋았어요. 합격하시겠는데요? “라는 말을 해줬다.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린 학생이지만 현 약대생이자 조교인 그들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지만 노력하니깐 가능성이 보이는구나. 마치 나는 벌써 이 학교에 합격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면접 날


B 학교 면접날이 되었다. 모의 면접하면 이미 와 본 곳이기도 하고 집에서 가까워서 익숙한 마음으로 집에서 출발했다. 남편이 태워 준 차를 타고 12월의 차가운 공기 속에 이른 아침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건물 전체가 면접을 위해 대대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수험생들이 대기할 수 있는 독서실이 있었고 면접을 위해 이동할 때마다 조교들이 대기하면서 다음 장소로의 이동을 도와줬다.


독서실에서 내 순서를 기다렸다. 그리고 내 순서 직전이 되어 면접 대기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면접 질문지를 확인하고 대답을 준비한다. 그리고 교수님들이 계시는 면접장에 들어가서 내 순서에 대답을 해야 한다. 첫 번째 면접장에는 족히 10분의 교수님은 앉아계셨던 것 같다. 정답이 아리송했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답변을 쏟아냈다. 다음엔 자기소개서 기반으로 질문을 받는 면접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3분 정도가 앉아계셨다. 나에게 약대에 오고 싶은 이유에 대해 여쭈셨고 자기소개서에 기반하여 대답을 했다.


과연 면접을 잘 본 걸까?

속시원히 합격이 확실시된다! 고 자신할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잘 되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을 걸고 있었다.


A학교의 면접은 훨씬 간단했다. 강의실에 대기하고 있다가 내 순서가 되면 면접장에 들어갔다. 3분 교수님 앞에서 교수님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생약 교수님이 계신데 그때 내게 하신 질문에 당황해서 어버버 했던 기억이 난다.


A학교, B학교 모두 합격할 수 있을까?

결과가 어떻게 될까?


긴장되면서도 나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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