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봄을 맞는 어떤 자세 I 과학단상
어린 시절, 어둡고 좁은 골목이 싫었다. 골목길에서 꼭 누군가 따라오는 것만 같았다. 가로등 아래에서 겨우 용기 내 돌아보면 어둠뿐이었다. 제법 커서도 어두운 골목이 싫었다. 대학 시절, 골목으로 창문이 난 자취방에 살았다. 모퉁이를 돌면 보이는 불 꺼진 창문이 늘 낯설었다. 가끔 불을 켜놓고 나가곤 했는데,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주인집 할머니의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방마다 돌아다니며 불을 끈다(약간의 잔소리와 함께).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어둠과 익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빛을 추적한 사람들이 있었다. 갈릴레오는 빛의 속도가 궁금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실제 빛의 속도를 재려고 했다. 뉴턴은 빛의 색에 관심이 많았고 그 비밀을 풀기 위해 수없이 태양 빛을 관찰했다. 그러다 시력까지 잃을 뻔했다. 아인슈타인은 빛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해 상대성 이론을 집대성했다. 빛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가면 다른 사물과 빛이 어떻게 보일까? 아인슈타인이 던진 최초의 질문이었다. 의견도 분분했다. 누구는 빛이 입자라 했고, 또 누군가는 빛이 파동이라 했다.
나는 그들이 빛을 좋아해 그렇게 빛에 천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둠을 싫어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와 그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나는 그냥 어둠을 싫어하는 데 그쳤지만, 그들은 그 어둠을 물리치는 빛을 추적해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다. 사람의 운명은 그렇게 갈리는 법이다.
태초에 대폭발이 있었다. 물론 138억 년 전 빅뱅으로 갑자기 빛이 생긴 건 아니다. 빛은 우주가 탄생한 후 38만 년이 지나서야 생겼다. 그전까지는 빛조차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놀랍게도 과학자들은 먼 곳으로부터 온 빛을 추적해 이러한 사실을 규명한다. 그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어떤 상태였는지 알기 위해 과학자들은 여전히 빛을 추적 중이다. 그리고 우주는 어둠이 지배하고 있다. 우주의 96%는 암흑물질, 암흑에너지가 차지한다.
세상은 어둠에서 탄생했다. 빛도 그렇다. 그 사실을 아는 나는 더 이상 어둠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지난해 타계한 황현산 선생은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낮이 논리와 이성, 합리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직관과 성찰, 명상의 세계다.” 괴테의 「파우스트」에는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라는 구절이 나온다. 2019년 새해가 밝았다. 어느덧 2월과 겨울이 저물고 봄기운이 완연하다. 낮과 빛을 반기되 밤과 어둠도 두려워하지 않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밤은 선생이다.
by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