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유산을 경험한 부부 중에 딱풀이란 이름으로 태명을 짓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그랬다. 두번의 유산을 경험하고선, 엄마 배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 있으라고 딱풀이라고 태명을 정했다. 전원(병원을 옮기는 일)을 할 경우, 새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태명이 뭐예요?' 묻는데, '딱풀입니다.'라고 답하면 딱 알아 듣는다. 이 생명이, 이 부부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일지.
산부인과 난임센터를 다니거나, 시험관을 준비하면 알게된다. 우리나라 의료진의 수준과 우리나라 의료 혜택의 수준이 높다는 걸.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인터넷에서 읽은 풍월과 외국에 사는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모르긴 몰라도 한국의 의료 수준이 전 세계 최고 수준은 맞는 듯 하다. 서울 강서구에는 이런 의료 수준에 힘입어, 강서구 의료특구(특히, 산과쪽으로)로 지정된 곳이 있다. 의료특구로 지정된 탓인지, 병원에 가면 중동아시아인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들을 위한 숙박, 통역 서비스까지 패키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 병원에서 건네 들은 말에 따르면, 카타르 같은 중동 국가는 아이를 낳는데 국가에서 지원이 빵빵해서 한국으로 원정 출산하러 와서 출산하고 돌아가는 모든 경비를 나라로부터 지원받는다고 한다. (fact 체크 필요)
우리도 3년여가 넘는 시간동안 자연임신에 실패해, 결국은 시험관을 시도하기로 했다. 두번째 시험관 시도에서 두개의 배아를 이식했는데 운 좋게도, 두개의 배아 모두 착상에 성공해 6주차 되던 날 두 명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심장소리를 듣던 날,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저 쌍둥이 아빠 됐어요'하고 자랑스레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내 인생 최고 설레고 기쁜 날이었다.
우리는 아이의 태명을 딱풀로 미리 지어 놨는데, 쌍태아였기에 자연스레, '딱이'와 '풀이'가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내의 자궁이 두 명을 품기에 환경이 좋지 않았는지, 한 아이가 자라는 속도가 다른 아이와 같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마음의 준비를 하라면서, 다음번에 올 때는 한 아이의 심장 소리는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영어로는 'Vanishing twin'이라 하고, 우리나라에선 '쌍생아 소실' 이라고 한다. 한 명의 생명이 희미해져서, 의사 선생님 말마따나, 결국 다음 진료 때 한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지 못했다. 티는 안내고 아내 몰래 울기는 했지만, 그래도 임신 초기에 일어난 일이라 비교적 담담했다. 다른 아이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슬픔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여전히 아내의 자궁 환경은 남아 있는 아이에게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딱이와 풀이였다가, 다시 태명은 딱풀이가 되었다.
아내의 경부 길이가 짧아, 경부길이가 1cm가 채 되지 않자 20주차가 되던 때에 아내는 미뤄뒀던 맥도널드 수술을 하였고, 그 이후 회사를 휴직하고, 쭈욱 집에서 와식 생활을 했다.
전치 태반이고 심지어 역태아였다. 딱풀이가 태어나기까지 남은 20주동안 건너야 할 산들이 많았다.
아이는 다행히 잘 버텨줘서 35주차에 예정일보다 한 달 빨리 태어났다. 딱풀이가 태어나던 날, 나는 판교에 있던 회사가 삼성동에 있는 회사로 사옥 이전을 하여 처음으로 삼성동으로 출근한 날이었다. 새 사옥에서 짐을 풀다가, 아내가 전화로 '양수가 터졌어 나 지금 병원 가는 길이니까 병원으로 와줘' 하는 말에 옆 동료들에게 애가 태어날 껀 가봐, 먼저 가 볼께, 하고 웃으면서 급히 퇴근했던 기억이 난다. 속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나 아빠 되었어, 라고 카톡도 보내고.
딱풀이가 아빠 보고 싶어서, 한 달 일찍 나왔대요. 하면서.
원래는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했던 D의 딸이 우리 딸보다 더 일찍 태어날 예정이었는데, 딱풀이의 급한 성미로 딱풀이가 예기치 않게 언니가 되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딱풀이는 인큐베이터에서 4주를 지내게 된다. 아내는 제왕절개 수술할 때 피를 많이 흘려, 피 두팩을 수혈 받았다. 아이는 태어났지만 산모와 아이 모두 접견이 불가한 상태였다. 내 인생 가장 무섭고 혼란스러운 순간이었다.
아내는 병원에서 퇴원 후, 산후조리원에 아이 없이 홀로 들어가서 3일동안 울다가 2주를 채우지 못하고 중간 퇴소를 했다. 나는 아내가 수유해 놓은 우유를 회사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충무로역에 있는 병원으로 옮기는 일을 매일 했다. 그때가 내 부성애가 제일 폭발하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매일 같이 짧은 시간 동안 니큐에 가서 아이와 대화를 하고, 간호사 선생님께 아이 우유를 전달하고, 병원을 나와서는 병원 뒤에 있는 남산 벚꽃길을 산책하며 기도하고, 기도하며 산책했다. 집에 와서는 딱풀이가 얼마나 건강하게 잘 있는지 아내 걱정할까봐 부러, 과장스러운 표정과 연기톤으로 딱풀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설명하곤 했다.
신생아의 장기 중에 제일 늦게 자라는 장기가 폐라고 한다. 그래서 일찍 태어난 아이는 폐가 미처 다 자라지 못해, 폐포를 키우는 주사를 맞아야 한다. 딱풀이는 그 주사를 두 대 맞았다. 나중에 병원비를 보니, 그 주사 하나에 비용이 100만원이 넘었는데, 대한민국의 의료 혜택 덕에(조산아 혜택 플러스) 실제 청구된 비용은 채 10만원이 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니큐에 있는 아이는 랩핑해 둔 비닐 같은 걸 발로 어찌나 차댔는지, 매일 같은 곳에 구멍이 나 있었다. 새로 바꿔도 발로 그렇게 같은 곳만 차 댄단다. 좁은 공간이 답답했나 보다. 그리고 등을 보이고 웅크리고 누워 있으면, 등에 덮인 털이 마치 늑대 소녀 같이 보였다. (일찍 태어나서 미처 털갈이를 다 못하고 나온 때문이란다. 아내의 의견이고 이 역시 fact 체크가 필요하다.) 환기를 위해 니큐안으로 들어오는 흡기/배기 공기의 흐름에, 등에 있는 솜털이 좌로 우로 휩쓸리는게 눈에 다 보였다. 꼼지락 대던 몸에 비해, 기다랗던 손가락과 발가락들, 내쉬는 숨에 움직이는 흉부, 쌕쌕하는 배의 움직임, 호흡하는 소리들 아이의 모든게 경이로웠다.
니큐 밖에선 심장 박동수가 모니터링 되고 있었는데 아이가 크게 움직일 때면 심박수가 급히 올라가서 행여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조심스럽고 무서웠다. 그래서 옆에 있는 간호사분께 괜찮은지 자주 묻곤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마치 5년 전이 그림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아이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로 화낸 게 생각나네. 좀더 참아야지.
지금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동생의 태명은, 딱풀이라는 태명으로 같은 곳에서 활동하였던 첫 째 딸래미가 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