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모두가 퇴근한 이후,
회사에서 홀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가방을 싸서 회사 밖으로 나옵니다.
금요일 저녁 회사 식당 밥은 왜 이렇게 맛이 없을까요.
먹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적당히 만들어도 된다는 생각일까요. 하지만 한창 성장기인 저는 뭐든 맛있게 먹습니다.
이대로 셔틀을 타고 집에 가려는데,
10분은 기다려야 하네요.
마침 날이 추워 이웃 회사 로비에서 셔틀 버스를 기다립니다.
뭔가 이대로 집에 가기엔 아쉽습니다.
이웃 회사 1층에 있는 밀폐된 미팅룸에 앉았다가 노트북을 꺼내 야구 중계를 봅니다.
마침 기아 타이거즈가 상대팀에 큰 점수차로 일찍이 지고 있어서 관심이 바로 식습니다. 어제 읽다만 책을 밀리의 서재 통해 읽는데 자기계발을 조장하는 책을 읽기엔 너무 금요일 저녁이라 책을 금세 덮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들어 온 이 회사는 반도체 설계 업체로 국내에서는 꽤나 인지도가 있는 회사입니다.
우리 회사는 제어기를 만들면서 왜 이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걸까,
이웃끼리 서로 주고 받으면서 성장하면 얼마나 좋아
따위의 생각도 합니다.
나도 내가 사는 곳의 아파트 이웃과 교류가 없는데
괜히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이에 계약관계가 얽히면 서로 껄끄러울 일이 생겨서 그럴까,
그러면 서로 얼굴 보기 민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일까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 내 카톡에 갈무리해둔 글감들이 떠올라, 글감을 찾아봅니다. 몇 개 소재는 글을 쓰기에 썩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내용이지만 몇 가지 키워드들을 조합하여 글을 써 나갑니다.
두 가지 이상의 키워드가 모이면 둘을 엮어 글을 직조해 나가는 작업이, 셜록홈즈가 작은 단서들을 기반으로 범인을 추리해나가는 것만큼 나름 흥미진진합니다. 연관관계가 없던 단서들이 묶여 납득할만한 결말을 향해 달려갑니다. 저의 글은 두서 없이 시작해 열린 결말을 지향합니다. 체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할 일을 다 마친 금요일 저녁이 주는 기쁨인지,
아내는 내가 일하고 있는 줄 알겠지만 실은 딴짓 하고 있다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는 상태의 안정감인지,
뭔가 창조적인 활동이 주는 도파민 분비인지 모르겠지만
즐겁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가.
미래의 언젠가 나이가 들면,
고향으로 돌아가 이층집을 짓고 잔잔한 바다표면에 부서지는 햇빛을, 굳이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눈만 돌리면 통창으로 자연스레 보이는, 보면서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바다가 주황빛으로 번지다가 해가 바다 너머로 넘어가면, 밖으로 나가 조용한 산책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해도 좋겠다는 상상을 합니다.
비록 바다도 없고, 바다 넘어 넘실대는 태양빛도 없지만
금요일 남들 다 퇴근하고 그 어느곳보다 고요한 제2판교에서
빽빽히 들어선 맞은편 빌딩들을 숲 삼아서
빌딩에 비치는 가로등의 불빛들을
마치 달빛을 튕겨내는 밤의 바다 삼아서
이웃 회사의 밀폐된 미팅룸에서 글을 씁니다.
다음 주는 몰래 가방에 맥주를 챙겨올 지도 모릅니다. 금요일 밤에 맥주는 빠질 수 없죠.
글감은, 길고 긴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모으기도 하고
달리기를 하다가 문득 떠올라 멈춰서서 기록해 두기도 하고,
점심 시간 산책을 하다가 사진을 찍어서 기록해 두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잠시 멈춰서서 글감을 모아볼께요.
그걸로 뭐라도 써 보겠습니다.
매주 금요일,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남의 회사 1층에서
셔틀을 두 세 대 보내면서 글을 써보겠습니다.
셔틀을 더 보내다가는 집에 갈 수 있는 방법이 깜깜해질 수도 있으니
제2판교에 홀로 갇히기 전에,
제한된 시간 안에 완성해 보겠습니다.
너무 바쁜 날에는 건너 뛰기도 하겠지만
지금 다짐으로는
성실하게 써 볼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