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형준 Aug 29. 2024

제너럴리스트의 종착지, 창업

멈추지 않을 도전과 성장의 이야기


8년 동안 2번의 폐업과 5번의 퇴사를 겪은 스토리와

실패에서 배우고 성과를 냈던 경험을 정리한 글입니다.


이전 글 보기(링크)




#28. 노코드에 빠지다.


VCF서울에서 퇴사한 2023년 6월, 나는 잠시 동안 취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내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일 보다, 노코드 툴을 학습하며 클론코딩 할 때 훨씬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프론트엔드부터 백엔드, API까지 거의 무한에 가까운 자유도로 만들 수 있는 노코드 서비스인 버블(Bubble.io)을 배우고 있었다. 대부분 노코드 서비스가 디자인 자유도가 낮거나, DB를 만들 수 없거나, 연동이 제한되는 등의 제약이 있었지만, 버블은 개발에 준하는 자유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제대로 된 한국어 강의가 없었고, 나는 영어 강의를 들었다. 영문 자막을 해석하면서…


버블의 기본적인 기능에 익숙해지자 만들고 싶은 서비스들이 마구 떠올랐다.


나는 사이드 프로젝트로 나만의 프로덕트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29. 첫 노코드 프로덕트, ASSIST


마침, 퇴사 후 취업을 준비하던 지인이 있어 함께 팀을 이루기로 했다.


나는 기획과 개발(+디자인), 팀원은 기획과 오퍼레이션을 담당하기로 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것에는 3가지의 이점이 있었다.

1. 재미있을 것 같았다.
2. 프로덕트가 성공하면 창업으로 연결될 것 같았다.
3. 잘 안되더라도 취업에 도움 될 것 같았다.


나는 내가 겪었던 문제에 집중해 제품을 만들었다.


과거 대학생 때 축구 동아리를 관리하던 때가 떠올랐고, 힘들었던 점을 되짚어가며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팀의 주장은 경기 참석 여부를 체크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당시 팀 주장이었던 내가 가장 많이 신경 쓰고 힘들었던 일은, 팀원들이 경기에 참석할지 말지 답변이 제대로 오지 않을 때였다. 누가 참석할지 빨리 알아야 경기를 취소하거나, 대신 뛸 사람을 빠르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표를 열면 카카오알림톡으로 팀원에게 알림을 보내주고, 알림톡 내 버튼으로 참석 여부를 바로 투표할 수 있는 서비스인, 어시스트를 만들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출시 전후로 100여 명의 타겟 유저와 인터뷰를 했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제품을 개선하기도 했지만 결국 잘 안됐다. 1개월 동안 300여 명의 유저를 확보했는데, 정기적으로 들어와서 쓰는 리텐션(Retention) 유저는 1%가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를 잘못 정의한 것이 가장 컸다.


유저들은 원래 카카오 단톡방의 투표 기능을 활용하고 있었다. 어시스트를 쓴다고 해서 단톡방을 없애지는 않았다. 일정 이외에 팀과 관련된 소통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미 있는 투표 기능에 알림톡을 붙인 제품은, 유저가 귀찮음을 무릅쓰고 계속 사용해야 할 이유로는 약했다.


매일 개선점을 배포하면서 온보딩 과정, 가계부 관리 같은 새로운 기능 추가, 디자인 개편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제대로 문제를 정의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첫 노코드 프로덕트였던 어시스트 랜딩페이지





#30. 두 번째 프로덕트, STARTING 11


실패를 회고하다.


피봇을 결정한 뒤, 어시스트와 반대로 접근해 보기로 했다.


어시스트는 카톡에 이미 있는 기능을 “약간 개선하는 형태”로 접근했고, 실패했기 때문이다. 1을 10으로 만드는 게 아닌, 0을 1로 만들거나 1을 100으로 만들 수 있는 솔루션을 찾아보기로 했다. 축구라는 영역에서 쓸 만한 IT 프로덕트가 없거나, 끝장나게 불편한 문제를.


기존 유저와의 인터뷰, 우리의 경험 등을 근거로 다시 문제를 찾았고, 3가지 솔루션으로 추릴 수 있었다.


1. 축구 학원의 회원 관리용 SaaS
2. 선수용 최고급 축구화 대여 서비스
3. 경기 출전 명단을 쉽게 만드는 서비스



수요를 검증하다.


우리는 린(Lean)하게 수요를 검증해서 하나의 솔루션을 선택하기로 했다.


각 아이디어마다 마케팅 콘텐츠와 랜딩페이지를 제작했고, 같은 타겟에게 같은 예산과 같은 기간 동안 광고를 태웠다.


광고의 노출, 클릭, CPC를 분석하고, 랜딩페이지의 서비스 사전 예약자 숫자를 체크했고, 가장 좋은 성과를 내는 서비스를 찾았다.


후보 3번, 경기 출전 명단을 쉽게 만드는 서비스였다.



선발 명단 제작&공유에 집중한, STARTING 11



제품을 만들다.


우리는 쉽고 빠르게 출전 선수 명단을 만드는 기능에 집중했다.


“포메이션 설정” “선수 정보 입력” 정도의 기능만 빠르게 구현하기로 했고, 2주 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


(아직 운영 중 : https://starting11.kr/home)


출시 직후 100명 정도가 가입했다. 예상보다 많은 수였다. 하지만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또다시 헛발질하다.


우리는 AARRR 퍼널을 기준으로 제품을 분석했다.


그 결과 가입(Acqusition) 유저는 많지만, 활성(Activation, 제품을 제대로 경험한) 유저는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소한 축구 경기에 필요한 11명은 등록해야 했지만, 2~3명만 등록하고 이탈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개선을 위해 20명 정도 인터뷰를 했고, 디테일한 전술 소통을 하고 싶다는 니즈를 발견했다. 몇몇 유저는 구체적으로 기능 제안까지 했다.


댓글을 남길 수 있으면 잘 쓸 거 같아요.



아니 고객이 솔루션까지 제안해 주다니!


우리는 감동했고, 즉시 댓글 기능을 추가했다. 인스타그램과 거의 비슷한 UX와 UI를 가지도록 만들었다. 가입 없이도 작성할 수 있도록 해, 라인업 메이커뿐만 아니라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도 소통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활성 유저는 늘어나지 않았다.



유저의 제안을 따라 댓글 기능을 추가했지만...



드디어 제대로 된 문제를 찾다.


성과가 없자, 다시 고민에 빠졌다.

나는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기로 했다. 5 Whys 기법을 활용해 고객을 다시 인터뷰했다.


왜 디테일한 전술 소통을 하고 싶으세요?
→ 약속한 대로 플레이했으면 해서요.

왜 약속한 대로 플레이했으면 하세요?
→ 약속된 플레이가 잘 되면, 팀이 체계적으로 굴러간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요.

왜 팀이 체계적으로 굴러가는 인상을 주고 싶으세요?
→ 체계적인 팀이면, 안 깨질 확률이 높더라고요.

왜 안 깨지는 게 중요한가요?
→ 팀원이 유지되어야 제가 지금 팀에서 축구를 계속할 수 있어서요.

왜 지금 팀에서 축구를 계속하고 싶은 거예요?
→ 새로운 축구팀 찾거나 만들기 너무 어렵고 귀찮아서요..


우리는 “체계적으로 굴러가는 팀이라는 인상”을 근거로, 유저가 제품을 통해 하고 싶은 것, JTBD(Jobs to be done)를 정의했다.



체계적인 팀처럼 보이도록,
높은 퀄리티의 선발 라인업을 만들어
팀원들에게 공유하고 싶다.



사용자들이 봤을 때, 와 이거 그럴듯한데? 퀄리티 괜찮은데?라고 느낄만한 가설과 솔루션 2가지를 생각했다.



1) 제품 속 유니폼 디자인(색과 무늬)이 실제 입는 유니폼과 비슷하면?

→ 유니폼 디자인을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게 만든다.


2) 제품 속 선수의 위치가 실제 경기 위치와 비슷하면?

→ 선수 배치를 Drag&Drop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만든다.



(좌) 유니폼 디자인 / (우) 드래그&드랍


결과는 놀라웠다.


활성 유저의 비율은 20%에서 40%로 올라갔고,

재사용 유저 비율은 9%에서 28%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생긴 우리는 페이드 마케팅을 최적화해 짧은 기간 동안 적은 예산으로 가입 유저를 300명까지 늘릴 수 있었다.


배포 전/후 1개월 비교





#31. 진짜 나의 길을 찾다.


사이드 프로젝트 종료


성과는 올랐지만 동기부여가 사라지고 있었다. 크게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1. 수익화에 어려움이 있었고
2. 내가 축구를 예전만큼 사랑하지 않았다.


사실 1번보다는 2번이 큰 문제였다.


나는 대학교 4학년 때, 경기 중에 발목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6개월이 넘는 회복 기간 후에 다행히 지도자 자격증은 취득했지만, 예전처럼 매주 경기를 뛸 수는 없었다. 부상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연도 지연도 없는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소속된 팀이 없어 경기를 뛸 일은 더욱 줄었다.


나는 더 이상 스포츠 부분의 문제 해결에 가슴이 뛰지 않았다.


경기를 뛰는 경험이 줄면서, 자연스럽게 축구에 대한 열정과 애정도 식어갔다. 매주 경기를 하는 사람을 위한 프로덕트를 만들긴 했지만, 정작 나는 경기를 뛰지 않는 사람이었다.


같이 하던 팀원도 마찬가지였다. 사이드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었을 뿐, 축구 도메인에는 큰 관심이 없던 분이었다.


나는 팀의 동기부여를 리드하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프로젝트를 종료하기로 합의했다.



PM으로 취업 실패


프로덕트 제작과 개선 경험을 바탕으로 IT 스타트업의 PM 취업을 시도했다.


경력과 경험을 녹인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30개의 회사에 지원했지만, 모두 서류 탈락이었다. 서류 통과 확률을 높이기 위해, 꽤 비싼 돈을 내고 유니콘 스타트업 현직 또는 재직 경험이 있는 분들께 취업 컨설팅을 받았다.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보자는 생각이었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방향을 완전히 수정해 다시 지원을 이어갔다. 그러나…


결국 나는 취업에 실패했고, 취업을 포기했다.


나는 취업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3개월 동안 100군데 넘는 회사에 지원서를 냈다. 10곳 정도 면접을 봤고, 2곳은 최종 합격 했지만 나의 기준(미션, 동료, 제품, 문화, 분위기)과 많이 벗어난 부분이 있어 정중히 거절했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 왔다. 항상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 효과적인 솔루션을 실험했고,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왔다. 다만 하나의 직무 타이틀을 걸고 활동한 기간이 길진 않았고, 회사들이 보기에 이 점은 매력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나조차도 팀에 마케터를 채용할 때, 5년간 꾸준히 마케터로 일 한 사람에게 눈이 갔지, CS와 세일즈를 오가며 1~2년 정도 마케팅 직무를 수행한 사람이 더 일을 잘할 것이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나는 취업에 특화된, 매력적인 커리어를 가지진 않았다.


나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세상에 새로운 무언가,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


지원서를 만드는 일은 생산적인 일은 아니었다. 똑같은 사건을, 회사에 따라 다른 각도로 재해석해서 보여줘야 하는 일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같은 자리를 뛰는 기분이었고, 생산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물론 이 방법 말고 회사에 나의 역량과 경험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도 없지만…)


원하는 회사들에 입사할 수 없게 되자, 실망과 함께 8년 동안 뭘 했나 하는 자괴감까지 몰려왔다.


취업 준비가 생산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지금의 시간도 버려지는 것 같아 미칠 것 같았다. 퇴사 후 여유롭게 미래를 생각하자는 마음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잠잠했던 불면증도 이때 재발했다.


나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2주 동안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다.



내 맘 같지 않은 인생...





창업을 결심하다.



나를 위한 도전


오랜만에 유명한 공기업에 다니는 대학 동기 A를 만났다.


대학생 때, A는 나를 미친 사람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내가 남자가 3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과에서 축구 동아리 만들어서 우승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응원했지만, 속으로는 이게 되겠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비록 최종 성적은 준우승에 그쳤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던 방식(주 1회 훈련, 주 1회 경기)을 끝까지 실행하고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며, 내가 뭘 해도 될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때문에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취업이 대세였던 당시 분위기에서, 홀연히 서울로 떠나 스타트업에서 일을 시작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웠고, “5년 안에는 창업을 할 사람”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사업을 돕기만 하는 내 모습이 의외라는 말을 꺼냈다.


나는 머리를 한대 세게 맞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리스크를 줄이려는 방향으로만 결정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첫 2번의 회사에서 망한 경험 때문일까. 항상 최악을 피하려고 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이 경험을 활용해 취업하려는 것도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에 가까웠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창업보다 적은 리스크로 자본 없이 할 수 있어서 시작했다. 빅테크로의 취업은 창업할 때 함께 할 수 있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을 쉽게 만나고 친해질 수 있다는 목적이 있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게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은 리스크가 결정의 우선순위가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패하더라도, 도전을 멈추지 말기로 했다.



나는 제너럴리스트다.


나는 과거의 나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고객을 인터뷰하고 문제를 발견하는 데는 세일즈 경험이,

문제를 정의하고 유용한 기능을 기획하는 데는 5 Whys 사고법과 사업기획의 경험이,

초기 고객을 효율적으로 확보하는 데는 그로스마케팅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에서 작은 성공들 덕분에, 나는 생소한 영역도 거부감 없이 학습하는 사람이 되었다.


개발 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정규화 같은 기초적인 백엔드 이론을 빠르게 배워 노코드로 제품을 만들었다.


디자인 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4px 디자인법과 자연스러운 컬러 조합법을 학습해 논리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제품에 적용할 수 있었다.


(좌) 직접 공부해서 만든 ERD  /  (우) STARTING 11 로그인 페이지



도전과 배움 덕분에 나는 복잡한 문제를 스스로 풀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의 경험과 인사이트를 연결하고, 새로운 것을 배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너럴리스트로서 복잡한 문제를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어떻게든 풀어가는 역량을 길러왔다.


제너럴리스트는 어디에 가장 적합한 인재일까?

PM? PO? BD?


나는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환경에서 제너럴리스트가 가장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문제를 푸는데 내가 가진 경험과 역량을 사용하기로 했다.


2024년 6월 중순,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나는 창업을 결심했다.





멈추지 않는 도전


여기까지가 나의 이야기이다.

1. 축구로 우울증을 극복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스포츠 문화를 혁신하고 싶었다.

2. 돈을 벌기 위해 입사한 스타트업에서 문제 해결의 즐거움과 재능을 발견했다.

3. 팀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제너럴리스트가 되었다.

4. 덕분에 취업엔 불리하지만, 다양한 영역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갖게 되었다.

5. 나의 문제, 내가 풀고 싶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을 결심했다.



흔들리고 좌충우돌했지만, 결국 하나의 방향이었다.



도전을 통한 성장.



돌아보면 도전을 통한 성장이라는 큰 흐름에서 벗어난 적은 없었다.


팀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뭐든 배웠고, 직무와 도메인에 얽매이지 않는 제너럴리스트로 성장했다.



나의 경험을 이어 그려볼 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내가 꾸준히 몰입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사람과 함께하고 싶을까?


그런 고민을 하던 중 재원님을 만났고, 우리는 함께 창업하기로 결정했다.


(다음은 창업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 좌충우돌 스타트업 도전기 ]

#1 프로축구연맹(K리그) 입사를 거절하고 스타트업에 남다.

#2 최고 스펙의 인재들과 함께했지만, 회사가 망했다.

#3 물경력 제너럴리스트였지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 취업하다.

#4 좋은 문화와 분위기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하다.

#5 요식업 프렌차이즈 본사를 스타트업처럼 운영하다.

#6 2번 실패한 교육, 스포츠 도메인에서 0 to 1을 만들어내다.

#7 이번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