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면 극복 노하우 (1)
브런치와 링크드인에 슬립부스터 창업 소식을 알린 후,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단한 분들께 많은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용기를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가장 특별했던 경험은 저희가 불면을 극복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사무실까지 찾아오신 분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저와 재원님이 불면을 겪은 스토리와, 이를 극복하고 스타트업에서 성장했던 과정을 공유하면서 저희의 경험이 다른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어 보람 있었습니다.
찾아오셨던 분들과 상담(?)에서 말씀드렸던, 제가 불면을 극복할 때 효과를 본 방법을 정리해 공유하면 더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제가 공부한 수면과 불면, 그 결과로 적용한 불면 극복 노하우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빛과 온도, 매트리스에 변화를 주면서 2~3주 만에 불면 증상의 상당 부분을 개선할 수 있었고,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완전히 불면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개운하게 일어나는 느낌을 느꼈을 때, 이전보다 10배는 잘 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넘치는 에너지로 시간을 밀도 있게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었던 빛, 온도, 매트리스, 심리적 문제에 대해 하나씩 자세히 소개하려고 합니다. 과거의 저처럼 불면으로 고통받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4가지 중 “빛”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 보겠습니다.
**주의**
저는 의사가 아닙니다. 이 글은 제가 제 불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공부하고 경험한 것을 정리한 글입니다. 만약 심각한 불면증을 겪고 계시다면, 전문의와의 상담을 권장드립니다.
2018년, 어느 날부터 잠에 들기 힘들어졌다.
원래 나는 잠을 잘 자는 사람이었다. 처음 서울로 와서 방을 계약하기 전까지 찜질방에서 생활했고, 군대의 보급매트에서도 잘 잤다. 이등병 때 야간 교대근무도 펑크낼만큼… (이걸로 군대 후임들한테 아직 놀림받는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돌아올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의 불면증은 단계적으로 강도가 높아졌는데, 내 식대로 단계를 정의해 보면 아래와 같았다.
Level 1 : 잠에 드는 시간이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함
Level 2 : 일어날 때 두통과, 등과 어깨에 두드려 맞은 것 같은 결림 증상이 생김
Level 3 : 두통/결림/식은땀 등 갖은 이유들로 4시쯤 잠에서 깨지만, 곧바로 다시 잠들지 못함
Level 4 : 뜬 눈으로 4~5시까지 있음. 2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면 2단계의 두통과 결림이 찾아옴.
Level 5 : 그냥 무슨 짓을 해도 잠이 안 옴.
나는 Lv 1과 2의 상태로 6개월 이상, Lv 3~5를 오가며 3개월을 보냈다.
그중에서 Level 4와 5는 정말 지옥 같았다. 나는 잠들지 못한 순간보다, 좀비처럼 보내야 하는 다음 날이 더 괴로웠다. 활력이 없어지고, 집중력이 줄고, 예민해져 감정 기복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Level 3~5를 오가던 어느 날부터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수면과 관련한 자료를 미친 듯이 찾았다. 수면의 원리, 불면증의 원인을 알고,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은 어떻게 잠에 드는 걸까?
잠이 오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선 아래 2가지를 알아야 한다.
1. 아데노신(Adenosine)과 아데노신 수용체(Adenosine Receptor)
2. 멜라토닌(Melatonin)
#2. 1. 아데노신과 아데노신 수용체
정상적인 수면 사이클을 가진 사람이라면 밤이 되었을 때 졸음이 쏟아지는데, 이를 “수면압력”이라고 부른다.
수면압력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간단하게 4줄 요약으로 살펴보자.
1) 우리는 깨어있는 동안, 생체연료인 아데노신 3인산(ATP)을 소모해 에너지를 얻는다.
2) 1번의 부산물로 아데노신이 발생한다.
3) 아데노신이 아데노신 수용체에 붙게 되면 우리 뇌에 피로 신호를 보낸다.
4) 아데노신이 아데노신 수용체에 많이 붙을수록 수면 압력이 높아진다.
그런데 아데노신 수용체에 아데노신 대신 붙어서 수면 압력을 교란하는 녀석이 있다.
바로 카페인이다.
카페인의 분자구조는 아데노신과 매우 유사해서, 아데노신 수용체에 카페인이 대신 붙을 수 있다. 하지만 카페인은 아데노신 수용체에 붙어도 피로 신호를 전달하지 않는다. 우리의 뇌가 “피곤하지 않다”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당연히 수면압력도 높아지지 않고, 잠이 오지 않는다. (참고영상)
카페인의 반감기는 대략 5~6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자정에 잠들고 싶다면, 7시 이후엔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2. 2. 멜라토닌
수면을 유도하는 다른 요인은 호르몬(Hormone)인 멜라토닌이다.
멜라토닌은 뇌의 송과체(Pineal gland ; 솔방울 모양의 내분비샘)에서 생성되는 호르몬이다. 혈중 멜라토닌 농도가 높으면 잠을 잘 수 있고 질 좋은 잠을 잘 수 있다.
멜라토닌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멜라토닌의 생성과 수면에 대한 작용을 4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빛을 보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생성되며, 빛이 줄면 세로토닌이 멜라토닌으로 전환된다.
2)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통해 멜라토닌 분비가 조절되는데, 빛이 많으면 억제되고, 빛이 줄면 활성화된다.
3) 분비된 멜라토닌은 뇌척수액을 통해 혈액으로, 혈액을 통해 온몸으로 퍼지며 수면을 유도한다.
4) 멜라토닌 분비는 일정한 주기(일주기 리듬, Circadian rhythm ; 대략 하루 단위의 규칙성)를 가진다.
즉, 낮에 빛을 봐야 멜라토닌이 잘 생성되고, 밤에 빛을 보지 않아야 멜라토닌이 분비되어 잠에 들 수 있다.
빛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멜라토닌의 특성을 이용해, 수면에 문제가 있는(수면 위상 증후군 등) 사람을 치료하기도 하는데, 이를 “광치료”라고 한다.
가령, 아침 일찍 10,000 lux 이상의 밝은 빛을 충분히 그리고 꾸준히(30분 이상, 7일 이상) 쬐면 수면 시간을 당길 수 있고, 반대로 저녁시간에 인위적인 밝은 빛을 보게 하면 수면 시간을 늦출 수 있다.
아데노신과 멜라토닌이 수면 욕구와 수면의 질에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의사분들의 칼럼과 논문, 의학 기사와 수면 기업의 연구자료 등을 조사한 뒤, 내 나름대로 수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수면의 주요 요인]
- 외부 요인 : 조도, 온도와 습도, 소음, 수면환경 등
- 내부 요인 : 신체적(체온, 영양, 근육과 관절 등), 심리적(스트레스, 불안과 우울 등)
밤에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수면의 요인 일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1) 아데노신과 아데노신 수용체의 결합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2) 멜라토닌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고 있거나
3) 그 외의 수면 요인 중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하나씩 추론해 봤다.
1) 카페인 : 잠이 오지 않는다고 느낄 무렵부터 커피를 줄이거나 거의 먹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 건 똑같았다. 카페인의 문제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2) 멜라토닌 : 나는 밤늦은 시간까지 강한 빛에 노출되어 있었다. 11시 이후에 퇴근하는 날이 많았고, 일찍 퇴근한다고 해도 집에서 남은 일을 처리하거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늦게까지 컴퓨터 게임을 했다. 빛에 의해 멜라토닌 분비가 교란되어, 일주기 리듬 자체가 깨졌을 수 있다.
3) 체온 : 체온이 낮아야 잠이 잘 온다. (다음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나는 열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며 샀던 두꺼운 겨울 이불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4) 근육과 관절 : 신체 각 부위가 느끼는 체중 압력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최대한 분산해야 하는데(역시 다음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5cm 두께의 얇은 라텍스 토퍼를 사용하여 제대로 된 체중 분산이 되지 않았다.
5) 심리적 : 회사가 망하는 것에 대한 압박감, 미래에 먹고살 걱정이 많았다. 여기에 더해 고향 친구들과의 교류가 단절되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나에게 카페인은 불면의 범인이 아니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 몇 주를 지내봤지만 불면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나는 커피를 마셔도 두근거리지도 않았고, 밤에 커피를 마셔도 잠을 잘 잤다.
그래서 멜라토닌에 집중하기로 했다. 깨진 일주기 리듬을 회복하기 위해, 빛을 조절하기로 했다. 목표는 심플했다.
1. 낮에 충분히 빛을 본다. 멜라토닌의 재료인 세로토닌이 많아지도록.
2. 밤에 최대한 빛을 적게 본다. 멜라토닌이 잘 분비되도록.
아래와 같이 빛을 조절했다.
1) 형광등 최소화
빛 중에서도 블루라이트(350~450nm)가 멜라토닌 분비를 크게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았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일단 가장 강렬한 블루라이트를 내뿜는 형광등 사용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2) 노란빛의 간접등 사용
빛이 아예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니, 최소한의 빛만 가지고 생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700~900nm 파장의 노란색 조명을 구매해 사용했다. 이 조명을 천장에 달지 않고 책상 위에 두고 벽을 향해 빛을 밝히도록 배치했다. 간접등의 형태인데, 빛의 밝기에 따른 스트레스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였다. 추가로 스마트플러그를 사용해 자동으로 오후 6시에 간접조명이 켜지고 자정이 되면 꺼지도록 세팅했다.
3) 전자기기 블루라이트 차단 모드
나는 32인치 모니터를 집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밤에 야근과 게임을 위해 몇 시간 동안 모니터를 사용했는데, 많은 블루라이트를 보게 되어 수면에 악영향을 준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내가 쓰던 삼성 모니터에는 “눈 보호모드”가 있었고, 밤에 사용할 때는 항상 해당 모드를 켜고 사용했다. (물론, 가능하면 퇴근 후에는 모니터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추가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사용도 최소화 했고, 혹시나 사용할 때를 대비해 블루라이트 저감 기능인 애플의 Night Shift 기능을 매일 켜지도록 세팅했다.
4) 아침에 햇빛 보기
세로토닌의 생성을 늘리고, 생체시계를 최대한 일출~일몰에 맞게 동기화시키기 위해, 출근할 때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걸으면서 햇빛을 보려고 했다.
당시 거주하던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15~20분 거리라 편하고 빠르게 가기 위해 버스를 자주 탔었는데, 빛과 수면의 관계에 대해 이해한 뒤로는 최대한 걸어 다녔다.
3주 정도 빛을 조절한 결과, 서서히 수면 욕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새벽 4시나 되어서야 잠을 잘 수 있었지만 3시 30분 → 3시 → 2시 30분으로 수면 시작 시간이 점점 당겨졌다. 최종적으론 12시~12시 30분에 잠드는 습관을 만들 수 있었다.
<요약 : 빛을 조절해 불면을 극복한 노하우>
1. 퇴근 후 형광등 사용을 최소화한다.
2. 대신 색온도가 높은(블루라이트가 적은) 등을, 간접등 형태로 사용한다.
3. 전자기기의 블루라이트 차단(저감) 모드를 사용한다.
4. 아침에 일어나서 햇빛을 최대한 받는다.
저는 빛뿐만 아니라 체온과 매트리스에도 변화를 주었고, 세 가지 변화가 시너지를 일으켜 2~3주 만에 극적인 호전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리적 문제를 해결한 뒤엔 불면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체온과 매트리스에 대해 제가 공부했던 내용, 적용해서 효과를 봤던 내용에 대해 공유하겠습니다.
p.s.
지면의 한계로 언급하지 못한 내용도 있습니다.(시도해 봤는데 소용없었던 것들 등) 언급되지 않은 노하우나 앞으로 적을 체온/매트리스 내용이 미리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댓글이나 메일(foremost90@gmail.com)로 연락 주시면 공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ference
- 송과체 사진 : https://en.wikipedia.org/wiki/Pineal_gland
- 멜라토닌 합성 과정 사진 : https://www.pointe.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57
- 김지현·이향운, 멜라토닌과 수면, 2015
- 김혜금·서완석, 수면과 온도, 2015
- 조용민 외, Effects of artificial light at night on human health: A literature review of observational and experimental studies applied to exposure assessment, 2015
- 구대림·김주한, 정상 수면의 생리, 2013
- 손창호, 수면장애에서 광치료의 이용,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