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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김나영 Apr 27. 2021

31 < 혼(魂)이 담긴 예술 >

미술관에 가서 그림이나 조각품 그리고 공예품들을 감상할 때면, 묘한 설렘으로 가슴이 떨리고 흥분과 기대감에 젖어, 나의 말초 신경들이 머무는 손끝에서부터 심장에 이르기까지 온통 전율하는 것을 가까스로 억눌러야 할 때가 많습니다.


오래전에 어느 전시회에서 보았던 그림들이 지금까지도 나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작품들도 많이 있습니다. 유난히도 인상 깊었던 작품들이, 가만히 눈을 감고 떠올리면 마치 편집해 놓은 슬라이드처럼 차례대로 흘러갑니다.


모두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기에 어떤 것이 더 좋은지 아닌지를 따져볼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나는 작품들을 대하면서 나의 느낌을 지닐 수 있을 뿐이지 그것에 대한 어떤 평가도 감히 할 수 있는 처지는 못 됩니다. 나는 평론가가 아니라 그저 감 상가일뿐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떤 작품을 대할 때, 미술적 기법이나 작품성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그것이 주는 첫 느낌을 먼저 헤아려보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때엔 평론가들이 호평한 작품이 아닌데도 어떤 느낌(feeling)이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에 마음이 더 끌리곤 합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알 수 없는 느낌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아주 어린 시절 보았던 코미디 프로가 생각이 납니다. 어떤 전시회장에서의 장면이었습니다. 화폭 위에 오직 흰색으로 칠해져 있는 그림이 있었는데, 그림 옆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이 얼마나 멋진 그림이냐고 사람들에게 피력하자, 어떤 사람은 이게 무슨 그림이냐고 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제법 미술적 용어를 섞어가며 여백의 미를 표현한 것이라고, 자신의 유식함을 자랑하며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자신의 그림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며 그 그림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만 보일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를 따라온 어떤 아이가 그 그림을 보고,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있네.라고 말하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그러자 그림을 그린 사람은 아이를 얼싸안고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그는 정말로 하얀 눈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우며 혼신을 다해 정말로 눈 덮인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을 담아내려고 노력한 끝에 완성된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코미디였기 때문에 모든 상황은 희극적으로 묘사되면서 웃음을 자아내게 했지만 나는 그것을 보며 막연하게나마 단순한 코미디 이상의 것을 마음으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마음이 깨끗한 어린아이가 본 것은 그 어떤 관념에도 사로잡히지 않은 예술가의 혼이었습니다. 그림이 꼭 어떤 색이나 형체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술가도, 아이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하얀 눈을 표현하고, 느끼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혼이 담긴 그림은 그것이 백지일 뿐이거나 그저 점하나 만 찍혀있는 그림일지라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문학과 음악작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한 줄의 시 구절이라도 시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온 영혼의 소리라면 그 소리 없는 외침을 지면을 통해 듣고는 모두가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 음악 작곡가로 잘 알려진 존 케이지(Jhon cage)는 실제로 자신의 실험적 음악 작품의 하나로써 <4분 33초>라는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 작품은 작곡자이자 연주자인 자신이 직접 무대에 올라 4분 33초 동안 피아노 앞에 앉아서 아무런 동작도 하지 않고 있다가, 조용히 일어나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멋진 음악을 기대하며 왔던 사람들은 모두가 기존의 음악적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그 침묵의 음악을 듣고 어리둥절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를 비난하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그가 무대에서 사라진 뒤에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알 수 없는 동요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4분 33초라는, 짧고도 긴 침묵의 시간이기에 그 시간 동안, 어떤 사람은 연주자가 뭔가 대단한 것을 연주하려고 뜸을 들이는가 보다, 하며 기다리기도 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침묵의 시간이 지루하게만 여겨지거나 혹은 반대로 조급한 마음이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연주자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감을 잡고 그와 함께 동화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잠시 동안이었지만 자신의 감정을 느끼며 자신을 진정으로 돌아볼 기회를 가진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작곡자는 바로 그러한 모든 것을 청중이 느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청중에게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자 했으며, 그 시간을 통해 예술적 감각과 느낌을 공유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뒤늦게 무엇인가를 깨달은 사람들은 그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무엇인가가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예술이란 그렇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대단히 거창하고 화려한 것이 예술인 것이 아니라, 영감을 통해 얻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다른 사람에게 혼(魂)의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그 어떤 것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예술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것에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빠져있다면 아무리 혼신을 기울인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아름다운 수(繡)를 놓을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한다 해도, 아름답지 않은 것을 표현하는 것은 진정한 예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선한 것만이 누구의 마음속에든지 항상 존재하는(잠시 숨어있을지라도) 선(善)의 마음에 제대로 울려 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공감할 수 없는 것은 이미 예술이 아닙니다. 예술가는 그것을 보고 느끼는 상대가 있어야만 비로소 그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이라면 어떤 장르이든지 그것이 지닌 예술세계를 인정해주고 수용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림이나 시나 음악은 함축적인 표현 방식으로, 혹은 미려한 장식과 꾸밈을 통해 내면을 표출하고자 하는 표현의 욕구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간접적으로나마 다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술가나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에게나 예술이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예술이라는 작업은 깊은 우물에서 맑은 물을 잇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인내심 있게, 그리고 정성스럽게 퍼 올려야 하는 지난(至難) 한 작업이며, 혼의 노래를 발견하고 표현하기 위해 피가 마르고 뼈가 깎이는 고통을 동반한 고된 작업입니다. 위대한 고뇌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창작은 혼을 담아내는 작업이기에 영감을 받아서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술적 영감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영혼의 이끌림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감각을 키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누구나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노력한다면 예술적 영감이 더욱 잘 발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감을 받아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술가는 보통의 사람보다, 마음의 눈과 사물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 그리고 모든 느낌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조금 더 발달한 것일 뿐이며, 따라서 영적인 아름다움에 관심을 많이 가지면 예술적 감각이 후천적으로도 얼마든지 개발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예술적 분야가 아니더라도 삶 속에서 예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일에서도 예술가적인 관점으로 자그마한 어떤 것도 놓치지 않고 간직하며 하나라도 더 느껴보려 한다면 마치 예술가라도 된 것처럼 세상이 낭만적으로 보일 것이며, 모든 일을 할 때, 예술가적 기질을 동원해 혼신을 다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고 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동시에 자신도 예술가들이 누리는 희열을 똑같이 느낄 수가 있습니다. 모든 일에 혼신을 다하는 사람은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빛을 내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실제로 철저한 생활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적인 삶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아주 극단적으로 예술적 삶에 치닫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양쪽의 삶을 조화롭게 잘 살아내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두 배의 인생을 경험하며, 두 배의 값진 보배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소리 없이 서서히 바꾸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현실의 삶 속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고 꽃을 피워내며,

다른 이들에게 감동을 주며 살아가는,

맑고 맑은 영혼을 지닌 예술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성이 강하고 자존심이 무척 강합니다.

그러나 자기 과시적인 허세나 자만심에 기반을 둔 자존심은 위험합니다.

그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완전히 절망하게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지녀야 할 자존심이란 스스로 존립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자존심이란 바로 숭고한 예술과 미(美)에 대한 갈망을 지키려는, 그리고 그러한 마음이 위협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술가로서 존립할 수 있게 하는, 영혼의 맑음이 고갈되거나 퇴색되는 것에 대해 진정 자존심 상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것을 지키려고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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