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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Dec 24. 2023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의 한 가지 특징

Everton Vila

퇴사 이후,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만나는 이들의 특징을 하나 알게 됐다. 그것은 내가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다들 자기만의 '세계'랄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자기만의 '힘이 있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을 중심으로 자기 삶에 보호막을 칠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기 마음의 힘이 없는 사람은, 그냥 타인들에게 휩쓸려 산다. 남들이 좋다는 것만을 따라가기 바쁘고, 남들과의 우열을 나누는 비교의 늪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모른다. 항상 타인들을 신경 쓰면서, 남들이 자신을 우습게 보지는 않을지, 내가 남들보다 잘나거나 못나지는 않은지 신경쓰며, 타인과 '같은 레이스'에서 서로를 비교하기 바쁘다. 그들에게 벤츠가 아닌 소나타를 타는 삶, 에르메스가 아닌 샤넬을 매는 것은 무조건 전자보다 후자가 열등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판사가 아닌 변호사의 삶, 강남이 아닌 강북의 삶, 골프 치는 삶이 아닌 동네 공원을 달리는 삶은 역시 더 열등한 것이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100만 원짜리 호텔을 잡고 오마카세를 즐기는 삶은, 집에서 가족끼리 멜론을 깎아먹고 작은 트리를 꾸미고 노는 삶보다 '이견의 여지 없이' 우월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사고관이 머릿속에 너무 깊이 박혀버린 사람들과는 한 시간 이상 마주앉아 숨쉬기가 어렵다. 그 상상력의 부재, 마음의 빈곤함, 획일화되어 거의 기계가 되어버린 비교와 피해의식의 마음이 견디기 어렵다.


내가 퇴사 이후에 찾아다니며 약속잡고 만나며 두어시간씩, 혹은 그 이상씩 마주앉아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에게는 모두 저마다의 진지한 세계와 마음이랄 게 있어서, 그 바깥의 현실이나 비교의식의 레이스로 점철된 '타자의 세계'가 침범하지 못하는 벽이 있다. 이를테면, 그들은 피곤한 모든 피해의식적인 현실 보다는 책 한 권 읽는 밤, 산 속을 거니는 일, 자기만의 세계를 창작하는 일에 몰두하는 걸 더 좋아한다.


언젠가 나는, 세상의 수많은 문제들이 결국 '책 한 권 읽는 밤'을 사랑할 줄 모르는 마음에서 오는지도 모른다고 쓴 적이 있다. 비유적인 이야기였지만, 핵심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렇게 탐욕스럽게 돈과 권력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결국 무엇을 하는지 보면, 그닥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몰래 룸쌀롱에서 술 먹고 유흥업소에서 마약하다가 걸려서 이혼당하거나, 부하직원 성추행하고, 골프 몇 번 치러 다니는 것 외에 그리 대단한 걸 한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없다. 만약 그가 그냥 책 한 권 읽는 걸 무엇보다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삶을 허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올해 나는 세상으로부터, 그 세상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너무도 많은 걸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내게 좋은 사람들, 그러니까 나와 맞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별할 줄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세계를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만을 곁에 두며 삶을 확장해가는 일이라는 것도 더 명확히 배웠다. 삶을 자기가 원하는, 좋은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 방식을 해치는 사람들을 걸러내고, 그 방식에 도움을 주는 이들의 손을 붙잡는 것이다.


올해 내게는 산타들이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의 징글벨을 들려주었고, 나는 그 속에서 조금 더 뚜렷하게 나의 마음과 삶을 알게 되었다. 새해에는 조금 더 명료해진 마음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어진다. 이 믿어짐이 묘하고 따뜻하고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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