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경우,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그 사람 자체의 성격보다도, 그 사람이 타인을 상상하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내 앞에 있는 타인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은 자칫 아쉬울 수 있는 말이나 행동도 아쉽게 느끼지 않는다. 어차피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있으므로, 내가 그렇게 믿고 상상하고 있으므로, 그 사람의 어떤 실수 같은 말이나 행동이 나를 미워해서라기 보다는, 별 의미 없는 행동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연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아쉽다. 그의 사소한 거절, 작은 무관심, 별 것 아닌 말투 하나하나가 모두 나를 사랑하지 않는 증거로 느껴진다. 그래서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모든 일들에 화가 나고, 그가 밉고, 아쉽고, 슬프고, 아프다. 그것은 그 사람이 사소한 것에 예민한 성격이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고 상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관계들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믿는다면, 대개 그가 나에게 어떤 아쉬울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하든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다. 욕을 해도 친근감의 표현으로 느껴지고, 연락을 안해도 그냥 바쁜가보다 생각하고, 설령 나를 소외시키는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해도 아쉽지 않다. 반대로,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면, 그에 대해 화가 나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세상에는 다른 모두와 잘 지내는 것 같고, 활기차고, 예민하지 않고, 흔히 말하는 '성격 좋아 보이는' 사람이 있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성격이 좋아 보이는' 것은 그가 자신에 대한 타인들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상상한다는 뜻이다. 이 사람이 왜 나를 싫어하겠어? 굳이 나를 싫어할 이유가 없는데? 혹은 이 사람도 나를 좋아하겠지, 대개 사람들은 나를 좋아해, 라고 그저 믿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관계에서 타인의 속 깊은 진심까지는 알기 어렵다. 그저 그렇게 상상하며 타인을 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더라도, 그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믿으면 그 관계는 유지되기 어렵다. 심지어 서로를 좋아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를 진심으로 좋아하느냐 아니냐보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한다고 상상하고 믿느냐일 수도 있다. 연인들은 마음 속을 파고드는 외로움, 결핍, 불안 때문에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 먼저 상대를 사랑하지 않은 건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그 관계에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해서 외롭거나 불안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스스로의 결핍 때문에,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게 될 수도 있다. 혹은 둘 다 서로를 참으로 사랑하고 있지만, 다른 마음의 이유 때문에, 그렇다고 믿지 못해서 헤어지는 연인들도 있다.
나는 그 누군가가 나를 미워한다고 믿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그런 상상 보다는 반대의 상상이 좋은 경우가 많다는 걸 느끼곤 한다.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고 상상하면, 자칫 안 좋아질 수 있는 관계도 좋아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 사람들이 내가 상상하는 것 만큼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많이 깨달았던 터였다. 그것은 모두,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던 모든 사람들 덕분이다. 나를 좋아한다고 해주었던 사람들로 인해, 나는 천천히 치유받았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