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귀한 줄 모르고, 자기만 잘난 줄 아는 사람은 결국 외로워지는 것 같다. 사실 사람이 잘나봐야 얼마나 잘나겠으며, 그 잘남이라는 것도 타인들 없이는 대개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많다. 자기만 잘난 줄 아는 사람일수록, 그 잘남을 인정해줄 누군가를 간절히 필요로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잘남을 결코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타인이 귀한 줄 아는 사람일수록, 보다 온전한 '잘남'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기반이 타인이라는 것, 인정이든, 사랑이든, 자존감이든 그 많은 것들이 결국 타인들과의 관계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기에게 주어진 타인들의 호의에 감사하게 되고, 자기기만 없이 그러한 호의 속에 머물러 있다. 그 '머물러 있음'이야말로 그를 단단하게 한다.
살아가다 보니, 그렇게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타인이 귀한 줄 모르고 자기의 잘남에만 극도로 몰입하는 사람은 마치 말라가는 물웅덩이처럼, 더 왜소해지고, 히스테리컬해지며, 방어적이 된다. 실제로 그에게 '인정해줄 만한' 무언가 있더라도, 사람들은 그에게 그런 인정, 호의, 선의를 주기를 점점 더 꺼린다. 그는 외로워질수록 한 줌 안 되는 '잘남'에 더욱 몰두하는 나르시시즘적 인간이 된다.
반면, 타인이 귀하고 소중한 줄 알며,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고, 환대하며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은 점점 더 강인해진다. 타인에게 관대하면 관대할수록 그는 방어할 게 없어진다. 대신 타인을 향해가는 더 힘찬 에너지 속에서 강한 자존감을 얻고 자신의 결점과 장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고슴도치처럼 자기 안에 파고들어 자기의 '잘남'을 찾지 않아도, 그의 주위에 머물러 있는 호의적인 울타리가 그의 잘남 자체를 증명한다.
언젠가 나도 스스로가 무엇이라도 되는냥, 잘났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 나는 인생에서 가장 불안할 때였고, 어찌 보면 가장 방어적이며 왜소할 때였다. 그러나 점점 그런 시절도 지나가면서, 나의 부족함이나 불완전함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손내밀어주는 타인들에게 감사할 줄 알게 되어간다. 내가 볼 때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 과거 나의 모습이었다는 걸 인지하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싶은 방향도 알게 되어가는 듯하다.
그 방향이란, 내가 사실 나를 둘러싼 사람들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방향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인간은 부모나 친구, 스승의 시선을 받고, 그 관심과 마음에 의존하며 생을 시작한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 또 보다 넓은 관심으로 서로에게 호의와 선의를 보내는 사람으로 삶을 견딘다. 그 모든 것은 마치 시냇물 위를 건널 수 있는 돌다리와 같아서, 그것 없이는 삶이라는 시냇물을 건널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저 그것이 적어도 내가 믿는 삶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여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