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은 대개 증오가 많다. 내가 겪어온 사람들이 대부분 글쓰는 일과 관련되어 있어서 다른 직업군과 비교하여 더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글쓰는 사람들 중에는 증오 혹은 분노를 가진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나는 지식인이 누군가를 참으로 쉽게 증오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직종이라고도 생각한다. 그 이유는, 글을 쓰면서 그 누군가의 관심을 갈구해보았고, 그로 인해 인정이나 찬사를 얻어보았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지식인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묘한 증오에만 사로잡히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다소 이상한 일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원래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었고,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가장 증오하게 된다. 글쓰는 사람은, 많은 경우, 자기가 얻었던 관심, 존경, 인정, 찬사, 감탄 만큼 꼭 그 누군가를 미워하게 된다. 한번 얻은 그 만큼의 인정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때, 혹은 스러져가거나 사라져간다고 믿을 때, 혹은 그와 반대되는 비판이나 비난, 평가절하를 받을 때, 이들은 많은 경우 자신이 받은 사랑만큼 증오를 품는다.
통계적으로 정확한 건 아니지만, 글쓰는 일이 더 그런 애증에 깊이 엮여 있는 듯이 느껴지곤 하는 것은, 글쓰는 사람들은 보통 속살까지 내어놓듯이 세상에 옷 벗고 달려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의 진실, 나의 솔직함, 내가 믿는 내 안의 가장 깊은 생각과 마음을 내어놓고, 그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동시에 그 지점에서 그 누군가로부터 헐뜯기는 일을 겪다보면, 대개는 그리 의연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더 예민하고, 까칠하고, 더 많이 미워하고, 더 많이 증오하고, 더 많이 싸우고, 그러나 때론 더 많이 사랑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것이 꼭 나쁜 건 아니겠지만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는 다르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건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도 글 때문에 누군가를 미워한 적이 많았다. 습작 시절, 내가 보여준 글을 별로라고 하는 사람을 미워했다. 내가 쓴 글이나 책을 처음 세상에 내어놓곤 했을 때, 좋은 서평에 화색이 돌면서도, 비판적인 서평이 나오면 앙심을 품었다. 내가 얻었던 어떤 호의들이나 관심들은 내가 받는 어떤 비판들이나 비난들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고 기억도 나지 않고 가치도 없는 것이 되어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느끼곤 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손쉽게 미움이나 증오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 그때서야 주변에도 글 때문에 날뛰면서 서로 증오하고 갈라서고 죽을 듯이 미워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정신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러고 싶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내게 글쓰기가 그런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대략 나이 서른쯤 넘어가면서부터는, 내 인생의 목표 같은 게 생겼다면, 인생에서 가능한 한 가장 사람들을 덜 증오하는 것이다. 과연 내가 어디까지 덜 증오할 수 있는지, 몇 명까지 안 미워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앞으로 인생에 10명? 100명? 가능할까? 1000명 이하로 미워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가능하면 적게 미워하며 살고 싶다. 그런 바람이 어느 정도 통하긴 하는 것인지, 요즘에는 내가 쓴 책에 달리는 비난들을 봐도 별 감흥이 없다. 어느 독자의 말처럼 누군가에게는 내 책 살 돈으로 ‘고추바사삭’ 사먹는 게 더 나은 인생이라는 것도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오만이다.
내가 쓰는 글은 어디까지나 내 안에서 시작되어 내게 이로운 무언가를 위해 쓰여지는 것일텐데, 이따금, 내가 쓰는 글 때문에 하루를 견딘다, 내가 쓰는 글을 세상 모두가 읽으면 좋겠다, 내가 쓰는 글 때문에 사는 것 같다, 같은 말을 들을 때가 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어느 때는, 심장이 무너지는 것 같다. 내가 그럴 만한 일을 할 자격이 있나, 내가 그런 걸 하고 있는 건가, 내가 쓰는 것이 누군가에게 그런 의미였나, 싶은 생각에 이상한 절망감이 드는 것이다. 나는 성인도 아니고 군자도 아니고 현인도 아니고 이기적인 한 인간일 뿐인데, 내게 없는 것을 누군가가 얻어간다고 할 때 느끼는 이상한 마음의 비틀림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상한 절망이 또 때로는 계속 글을 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