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 스케이트장의 조명 아래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매번 슬픈 마음이 든다. 아이가 좋아하는 이 공간에 아이 손을 잡고 와서, 빙글빙글 돌며 웃고 있는 아이를 지긋이 바라보는 이런 순간들이, 그냥 삶에 얼마 없을 것 같아서다. 아마 조금 더 크면, 아이는 친구들과 이런 곳에 놀러다닐 것이다. 지금처럼 자기가 타는 모습을 봐달라며, 아빠 손을 잡고 가자고 조르는 이런 시절이 얼마 없을 것 같아서다.
나는 아이가 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어 롤러 스케이트를 빌렸다. 내가 어릴 적에는, 이런 곳에는 항상 여동생과 함께 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러나 혼자 도는 아이는 나름 재밌어 했지만, 내게는 외로워만 보여서, 같이 돌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몸이 안 좋았지만, 타이레놀을 먹고 아이 손을 잡은 채로 몇 바퀴를 돌았다. 자주 생각한다. 형제가 없는 아이에게, 나는 유년기 한정판이나마 최고의 친구가 되어주어야지, 하고 말이다.
얼마 전 만난 나의 지인들에게 나는 요즘의 슬픔에 대해 두서없이 이야기했다. 얼마 전, 아이가 처음으로 데려왔던 사슴벌레가 몇 달만에 죽었는데, 이상하게 아이보다도 내가 더 슬프더란 것이었다. 여름 쯤이었나, 처음 사슴벌레 통을 품에 안고 너무나도 좋아서 설레고 들떠하는 아이의 표정이 생생하게 생각나서였다. 세월이 가는구나, 사슴 벌레 시절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아이는 내년에 학교에 간다. 요즘 몸이 안 좋아서 그런지, 연말이어서 그런지, 몸 속에 슬픔으로 가득 찬 혈액이 흐르는 것 같다.
아이랑 몇 바퀴 돌고 나서,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열었다가,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태국 여행을 다녀온 가족들이 비행기 추락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들이 온통 가득 차있었다. 나는 종종 이대로 세상이 멸망해도 별로 여한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삶에 그렇게까지 아쉬운 건 없다. 사랑도 했고, 여행도 해봤고, 꿈도 추구해보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떠난다는 건 상상하기가 어렵다. 유가족의 아픔이라는 건 도저히 가늠이 안된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삶은 너무도 아쉽다. 살아가면서 느낄 사랑들, 삶에 대한 마음들, 먼 곳을 꿈꾸고 항해하는 시간들, 그런 것들은 모든 아이들에게 마땅히 주어져야만 하는 생의 조건들이다. 삶의 우연성이 너무 가혹해서, 허무한 마음마저 든다.
올해 12월은, 일상이란, 삶이란 이렇게나 위태로운 것이었나, 하는 마음으로 요약되는 것 같다. 아이가 아프고 나도 몸이 안 좋아지면서 변한 일상도 일상이지만, 뒤흔들리는 우리 사회와 그 속에서 일어난 재난까지, 삶의 위태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 가운데 어떤 마음에 필사적으로 의지해야하는지를 생각한다. 할 수 있는 건, 이 삶에 관하여 최대한의 겸허함을 가지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기적이고, 기적적으로 감사한 일이다. 모든 건 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삶에 무언가 불평불만을 갖기엔, 이 살아 있음과 느낄 수 있음과 이어갈 수 있음이 너무나 과분하다. 그 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결국 사랑해야 한다.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들처럼 진심을 다하고, 사과하고, 위로를 전하고,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할아버지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요즘 언젠가 할아버지가 들려줬던 할머니와의 연애 때 이야기가 그렇게 생각이 났다. 아마 그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