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철학 개념
칼 마르크스는 부유한 유대계 독일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유물론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그는 당시 좌파 헤겔주의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자유주의적인 <라인신문>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는데, 1843년 이 신문에 대한 프로이센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자 프랑스 파리로 갔고, 그곳에서 프랑스 사회주의자들과 접촉했습니다. 프랑스에서 그는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를 만났는데, 이 만남은 서로 긴밀히 협력하는 평생에 걸친 우정으로 발전했습니다. 엥겔스를 통해 맑스는 영국의 경제 이론과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대해 잘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마르크스는 정치 활동 때문에 프랑스에서 추방되어 브뤼셀로 이주했습니다. 공산주의자동맹의 설립과 관련하여 맑스와 엥겔스는 함께 행동 강령을 만드는 작업을 했고 그 결과가 1848년 발간된 <공산당 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입니다. 1848년 혁명이 일어나자 마르크스는 다시 독일 라인란트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혁명이 진압되자 마르크스는 런던으로 도피했고,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거의 저서 중 유명한 것들로는 <경제학-철학 수고>, <독일이데올로기>, <정치경제학비판을 위하여>, <자본론> 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 철학은 위험한 사상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우리는 사회주의가 가지고 있는 폭력적인 면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소비에트연방공화국(소련)의 몰락과 함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실험은 무너졌지만, 자본주의의 모순이 남아 있는 한 마르크스의 사상은 지속적으로 회자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많은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유입되면서 임금 노동자들로 급속히 변해 갔다. 도시의 인구는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도시 노동자들의 생활은 비참 그 자체였다. 그러나 더 비참한 것은 직업조차 구하지 못한 대다수의 쫓겨난 농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악명 높은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농토를 잃고 거리를 헤메는 빈민이 되었습니다. 엔클로저 운동이란 양모 가격이 치솟자 지주들이 경작지를 양을 기르는 목초지로 만든 운동이었습니다.
중세의 빈민 구제는 교회와 수도원 등 종교단체나 장원·길드 등에서 주로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16세기 엔클로저 법과 물가 폭등의 영향으로 농민들이 떼거지로 부랑자가 되어 늘어나자 교회도 이들을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또 성공회의 출현으로 그간 부랑자들을 돌보던 수도원이 해산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갈 곳이 없어지자 모이면 떼강도로 변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마을은 초토화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산업혁명 당시에는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장치가 없었습니다. 산업혁명 직후 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공장은 조명이나 환기 장치가 충분치 않았습니다. 위생이나 안전이 무시되었습니다. 작업 중에 일어나는 사고는 노동자 본인의 부주의로 간주되어 당장 쫓겨나기 일쑤였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다친 노동자가 해고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효용이 없는 상품에 가격을 지불할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부상을 입어도 이를 숨기고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공장에서 쫓겨나면 밖에는 굶주림이 있다는 공포가 노동자를 한낱 상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장시간 노동, 생계유지가 어려울 정도의 저임금에 시달렸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보통 남자 근로자들은 하루 16-18시간, 여자들(임신부도 포함)은 14-15시간, 아동들조 차 12시간 정도 일을 했습니다.
도시에 슬럼가가 생겼습니다.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강요당하는 노동자의 생활은 비참하여 술에 빠져 지내는 등 사회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가장 비참한 것은 어린이 노동자였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생활전선에 내몰려 자본가의 착취 대상이 되었습니다. 고된 탄광 작업에 싼 임금의 어린이들이 대거 투입되었습니다. 광산촌에서 많은 어린이들이 중노동과 폐결핵으로 일찍 죽었습니다. 도시에서도 가난한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싼 임금을 받으며 매일 장시간 일을 했는데 시끄럽고 냄새나며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단순작업을 반복했습니다.
이러한 오랜 노동시간으로 인해 대부분의 성장기의 아동들은 척추나 무릎 등이 휘어졌습니다. 심지어 10살 미만의 아이들도 일했으며 밤새도록 일하기도 했습니다. 거기다 더해 겨우 걸을 수 있는 4 살배기 어린 것들이 머리가 멍해지고 눈이 충혈 되고 약한 애들은 허리가 굽어 기형아가 될 정도로 그 작은 손가락으로 소모기(梳毛機)에 철사를 끼워 넣는 단순 작업을 여러 시간 계속했습니다. 양털의 긴 섬유만 골라 가지런하게 다듬는 기계인 소모기는 말 그대로 아동착취에 소모(消耗)되는 기계였습니다. 게다가 걸핏하면 폭행에 시달리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UKt4mUBGTI
1800년대 들어 영국에서 도시 인구의 비율은 급속도로 증가했습니다. 1801년 26%에서 1850년 45%로 증가했고, 1891년에는 68%에 이르렀습니다. 영국 도시 인구는 19세기 동안에 15배나 늘었습니다. 결국 도시 슬럼화로 골치를 앓았고, 많은 배설물이 강을 오염시키고, 공장 폐수가 흘러 들어 급격하게 환경이 오염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콜레라가 유행했습니다. 1832년에 런던에서 5,300명이 죽었고 파리에서는 1만 8천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840년께 공장지대 노동자 자녀의 60%가 전염병 때문에 5세 이전에 사망했습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당시 공장지대 근로자의 평균수명 이 스무 살이 안 되었습니다. 특히 노동자 어린이 평균수명은 17세였습니다. 한마디로 그 무렵 노동 환경은 지옥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공장 근처에 자리 잡은 당시의 도시는 위생적으로 최악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 울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사회 원리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은 비참한 노동자들을 구제하고 싶어 했습니다. 인간을 상품으로 보는 자유경쟁에 규제를 가해 인간이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시설을 공유하여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첩경이라 믿었습니다. 이렇듯 공산주의 초기 운동의 사상적 특징은 휴머니즘 정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에 대한 사고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아담 스미스와 리카도 등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주류경제학에 가장 큰 반기를 든 것은 같은 유대인이었던 카를 마르크스였습니다. 그는 배움을 숭상하는 유대인답게 영국의 대영 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한 공부벌레였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경제학자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역사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이자 행동하는 혁명가였습니다.
그의 〈공산당선언〉은 가슴 속에서 북받쳐 나오는 울분에 다름 아니며 〈자본론〉은 당시 지옥 같은 노동환경 속에서 태어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서로 ‘사회주의의 바이블’로 평가되었습니다. 동시에 지난 반세기 동안 인류를 냉전의 세계에 몰아놓은 책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가 단순히 자본주의가 인간들 사이에 경제적 불평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자본주의를 비판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자본주의 비판의 핵심은 자본주의가 인간을 철저하게 소외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소외란 원래 인간의 산물인 것이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은 생산의 주체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자신의 생산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생산물에 의해서 지배를 당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이를 '노동의 소외'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 노동자가 어떻게 생산물로 지배당하고 소외당하고 있을까요?
마르크스는 본래 노동이란, 즐겁고 창조적인 활동이라 말합니다. 세계를 마주하고, 그것에 관심을 갖는 인간은 자신의 의지대로 자연을 조작하여 무언가로 변형시킵니다. 청소년 시절 가장 즐거운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는 시간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동영상을 촬영하여 편집하는 일이 동영상을 보는 것 보다 훨씬 더 즐겁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대부분 여러가지 이유로 단순한 재미와는 다른 일을 하게 됩니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노동은 본래적으로 즐거운 것이지만, 자본주의는 노동을 철저히 '분업'화 하여 노동자들이 생산을 주체적으로 주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고, 반복되는 일만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노동은 흥미 있는 창조활동이 아니라 연명을 위한 고역이 됩니다. 노동자들은 노동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후의 휴식과 본능적인 욕구의 충족만을 기대하게 됩니다.
"노동의 소외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노동이 노동자에게 외적인 것이라는 것, 노동이 노동자의 본질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서 자신을 실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부정하게 되며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자유롭게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진다. 따라서 노동자는 오직 여가 시간에만 마음을 편하고 일할 때는 불안해한다. 그의 노동은 자발적인 노동이 아니라 경제적인 노동이다. 이런 노동이 그에게 얼마나 소원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육체적 혹은 다른 강제가 없기만 하면 마치 역병을 피하듯 노동을 기피한다는 사실이다. 인간(노동자)은 단지 자신의 동물적 기능에 있어서만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인간적인 기능에서는 자신을 동물로서밖에 느끼지 못하게 된다. 동물적인 것이 인간적인 것이 되고, 인간적인 것이 동물적인 것이 된다." (경제학-철학 수고)
마르크스의 주장에 대해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노동 소외는 단순히 자본주의 분업을 통해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업이 있기 전부터 노예가 존재했고, 노예들은 노동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또한 노동의 본질이 창조적인 활동일까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깁니다. 인류가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생산력의 급격한 증대가 이루어진 산업혁명 이후 입니다. 즉, 그전에도 노동이라는 것이 여전히 생존의 수단이었지 단순한 창조적 활동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노동소외 개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업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진정한 노동을 실현하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에는 주케, 부케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케는 특정한 공간에서 주어지는 노동을 해야 하는 수동적 존재 이지만, 부케는 자신이 원하는 창조적인 노동을 하는 주체를 말합니다.
현대사회의 모습을 보면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었다는 마르크스의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원초적인 노동에 있어서 노동자는 노동 후 자신의 생산물을 소유한다고 했습니다. 마치 미술작업이나 목공작업을 한 후 결과물이 자신의 소유임에 분명한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분업이 일어난 이후, 노동자는 더 이상 생산물을 소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생산물을 소유하는 대신 임금을 받게 되었는데, 그 임금은 자신이 제공한 노동력의 가치보다 떨어지는 가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제공한 노동력으로 생산물을 만들어 냈지만, 그에 합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여 노동을 하여도 생산물을 구매할 수 없는 상황이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현상입니다.
노동 생산물로부터 소외된 노동자는 지속적인 빈곤에 빠지게 됩니다. 적은 임금을 받은 노동자는 적절한 생산수단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반면 자본을 축적한 자본가는 더 나은 생산수단을 확보하게 됩니다.
교육비가 부족하여 자녀를 교육시킬 수도 없고, 이러한 상황이 노동자를 더 취약한 구조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여러가지 장치를 통해서 개선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개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여 향후 데이터, 인공지능, 로봇이 거대한 생산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수단을 소유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수 많은 사람들은 그 데이터로부터 소외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노동소외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는 지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경쟁 사회입니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자본가들은 다른 자본가와 경쟁합니다. 물론 경쟁이라는 것이 늘 나쁜 것이 아닙니다. 경쟁은 더 나은 아이디어를 창출해내고, 더 나은 방법을 찾게 해줍니다. 방만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일하게 하며, 주어진 자원을 최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협하는 경쟁은 '파괴적'입니다.
경쟁에서 패배했을 때 결과를 승복하는 것을 넘어 삶을 내어주어야 한다면 이 경쟁은 목숨을 건 경쟁이 되는 것이고, 사회의 불신과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며 창족적인 활동을 억제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MINEdS3CTU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경쟁이 인간과 인간을 상호 소외시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따뜻한 자본주의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성장해 온 자본주의지만 그 경쟁이 인간성을 파멸할 수준까지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아버지인 아담스미스는 그의 책 <도덕 감정론>에서 자본주의의 차가운 면을 지적하며 '공감'이라는 감정이 배제된 자본주의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제도 이제는 경쟁뿐만 아니라 경쟁에서 낙오된 자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지원해야만 할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Q9_anIIUl8
서울대 박찬국 교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또한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자유와 주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의 진정한 주체는 자본가나 노동자가 아니라 시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책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돈의 매개를 통하여 내게 존재하는 것, 내가 지불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나다. 나의 힘은 내가 가진 돈만큼 크다. 돈의 자질은 돈을 가진 나의 자질이자 능력이다. 따라서 내가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결코 나 개인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나는 못났더라도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나를 위해 살 수 있다. 따라서 못난 것의 효과, 다른 사람이 나를 꺼리게 하는 힘은 돈에 의해서 사라지게 되므로 나는 못난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나는 절름발이지만, 돈은 내게 스물네 개의 다리를 준다. 따라서 나는 절름발이가 아니다. ....내가 돈의 힘을 통해서 인간이 바라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나는 인간의 모든 능력을 가진 게 아니겠는가? 따라서 나의 돈은 나의 모든 무능력을 정반대로 바꿀 수 있지 않는가?"
나도 개인적으로 돈을 좋아합니다. 돈이 있으면 원하는 최신 휴대폰을 살 수 있고, 좋고 편안한 자동차를 살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켜줄 수 있으며,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든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성경의 말씀은 돈은 '일만악의 뿌리'라고도 했습니다.
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그것을 위해 치열히 경쟁합니다. 그 와중에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현상이 벌어집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어떠한 사상도, 행위도 그것이 종국적으로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지만, 그것이 모두 나의 소유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나 자신으로부터, 타인으로부터 소외됩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차원의 자본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치열한 경쟁과 소외를 일으키는 자본주의에서 더 따뜻하고, 연대하는 자본주의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