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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범 Jun 02. 2020

29 뇌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여섯 번째 이야기

감정 다스리기 1

인터넷 뉴스를 보면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벌어진 끔찍한 사건을 흔하게 접한다. 층간 소음이나 사소한 다툼으로 생명을 해치는 일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0명 중 4명의 범죄자가 분노나 화를 억누르지 못하는 충동조절장애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다고 보고 있다. ‘참을 인(忍) 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라는 말은 ‘참을 인(忍) 자 세 번이면 호구가 된다’로 바뀌었고, 이는 서로가 서로에게 눈을 부릅뜨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잘 대변한다.  


감정이 요동치는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천차만별이고 어떤 경우에는 회복불능의 커다란 피해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때와 상황에 맞게 화를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인군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근방까지는 가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나 화는 무조건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삶을 활기차게 하고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해 준다. 중요한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도 약간의 스트레스는 필요하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기억을 강화시키고, 면역력을 증가시킨다. 또한 상황에 따라서는 화를 내야 한다. 화는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내 것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종의 자기 보호 전략이다.


내가 힘들게 잡은 먹잇감을 다른 누군가가 가져간다면 화를 내어 내 것을 지켜야 한다. 그러면 나의 생존 가능성은 높아지며 나의 영향력도 커질 수 있다. 독일 오스나브뤽 대학의 미구엘 카젠과 그의 동료들은 연구를 통해 화는 장기적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의 분비를 낮추고 스트레스로 인한 잠재적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막연한 두려움이나 공포심을 갖는다. 영화 ‘죠스’는 검붉은 바닷속에서 상어가 언제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르기에 손에 땀을 쥐고 비명을 지르게 한다. 이를 반대로 생각해보자. 만약 상대의 정체를 안다면 그 두려움은 생각만큼 크지 않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감정도 마찬가지다. 부정적 감정이나 느낌에 이름을 붙여 말로 표현하거나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실체를 볼 수 있다면 그 부정적 감정이나 느낌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실제로 여러 책이나 마음치료에서 이러한 방식을 언급한다. 지은이나 개발자마다 ‘명명하기’ 또는 ‘이름 붙이기’ 등으로 조금씩 다르게 부르지만,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거의 같다.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이나 공포감, 불안감, 걱정거리를 소리 내어 말하거나 구체적 이름을 붙인다. 이렇게 하면 막연하고 두려웠던 존재가 구체적이고 인식 가능한 존재로 되면서 회피하거나 부정하던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음 행동을 취할 수 있다.


매튜 리버맨과 연구팀은 화난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고 대상자의 뇌를 촬영하였다. 그러면 감정과 관련된 편도체의 활동이 증가하는데, 이때 화난 사람의 이름을 알려주면 다시 편도체 활동이 줄어드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화난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대상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현재 느끼는 감정을 단순히 말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스트레스를 상당히 줄 일 수 있다. 케이스 페트리에와 동료들은 의대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4일 동안 한 집단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충격적인 경험에 대해 적게 했고, 대조 집단은 일상적인 일에 대해 적게 했다. 그리고 5일째에 두 집단 모두 B형 간염 예방 접종을 하였다. 4개월에서 6개월 후에 혈액 검사를 한 결과, 충격적인 경험을 적은 집단의 항체 수준이 대조 집단에 비해 훨씬 높게 나타났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때는 입으로 소리 내서 말하거나 글로 쓰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내일 평소와는 다르게 회사에 출근하기가 갑자기 싫어졌다고 하자. 프로젝트를 위해 그동안 너무 열심히 근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내일 프로젝트 마무리 미팅 때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직장 상사와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나는 인정받고 싶지만, 아무개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렇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인정받으려는 조급함 대신에 ‘인정 못 받으면 어때. 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라는 대범함과 평상심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불명확한 존재는 잠재적 위협으로 보이고, 그에 따라 생존 회로가 작동하면서 과도한 감정 상태에 몰입하게 된다. 이 순간에 ‘이름 붙이기’는 불명확한 존재를 실체적이고 인식 가능한 존재로 만들어서 감정에만 충실하는 생존 회로가 아닌, 이성적 판단을 하는 전전두엽이 주도권을 쥐도록 한다. 그러면 상황을 좀 더 전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공포, 분노, 짜증, 두려움, 죄책감 같은 부정적 감정에 압도된 비이성적 흥분 상태를 한결 수월하게 달랠 수 있다. 흥분한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이 되는 단어를 말하는 것도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현재 느끼고 있는 나의 심정을 “분노”, “화남”, “억울”, “무시”, “두려움” 같은 단어로 말하는 방법은 단순하고 간단해 보인다. 그러나 생각만큼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그러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단어를 찾기 위해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의 초라한 모습과 직면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자기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에 충실한, 자기 인식이 정확한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거나 경미한 우울증을 겪거나 모두에 해당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용기와 각오가 필요하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무시’라는 단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럽게 느끼고 애써 외면하려 한다. 공포에 떠는 사람은 그 원인이 되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조차 버거울 수 있다. 아픈 과거가 있는 사람은 그 힘든 때를 떠올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모습과 마주한다면, 그 효과는 상당하기에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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