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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범 Jul 11. 2020

35 좌뇌와 우뇌. 첫 번째 이야기

하나로 이어져 있는, 주머니가 다섯 개 있는 뭔가를 넣는 물건?

인간의 뇌는 왼쪽에 위치한 좌뇌와 오른쪽에 위치한 우뇌로 나뉘어 있다. 좌뇌는 신체 오른쪽의 움직임을 담당하고, 우뇌는 신체 왼쪽의 움직임을 담당한다. 이 둘은 외관상으로 비슷해 보이고 같은 일도 하지만, 기능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1960년대에 중증의 간질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좌뇌와 우뇌를 분리하는 수술이 시행되었다. 이후 이 수술을 받은 환자들에게서 행동방식이나 신체적, 인지적 측면에서 의도치 않은 이상 증상들이 관찰되면서 본격적으로 ‘뇌 분할’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좌뇌형’ 혹은 ‘우뇌형’이라는 용어 또한 생겨났다.

좌우뇌 분할 연구로 1981년 노벨상을 받은 로저 스페리는 수상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좌우뇌 분리 수술할 때는 좌뇌와 우뇌의 사소한 차이도 중요합니다. 같은 삶을 두고 심리적 혹은 행동적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태도를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좌뇌를 사용하느냐 우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좌뇌가 기능을 잃고 우뇌가 주도권을 잡으면 어떤 일이 생길지 질 볼트 테일러의 사례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신경해부학자로, 37세에 동정맥 기형으로 인해 좌뇌에 뇌출혈이 생겼다. 뇌졸중은 허혈성과 출혈성이 있고, 이 중 허혈성이 대부분이지만, 그녀에게는 더 심각한 출혈성 뇌졸중이 생겼다. 미국에서 좌뇌의 뇌졸중 발생 확률은 우뇌보다 4배 더 높다. 그녀는 8년의 회복 기간을 거쳤고, 이후 뇌출혈이 아니었으면 결코 몰랐을 우뇌에 지배당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좌뇌를 지배하는 신경섬유들의 기능이 멈추면서 더 이상 우뇌를 억제하지 않았고, 내 의식은 세타빌 상태와 놀랄 정도로 흡사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불교도들이라면 아마도 열반에 접어들었다고 말할 것이다. 좌뇌의 분석적 판단 능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평온과 안락, 축복과 행복, 충만의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 좌뇌는 자신을 남들과 구별되는 존재로 인식하도록 길들여졌다. 이런 제약에서 풀려나자 나의 우뇌는 영원한 우주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즐거워했다. 나는 더 이상 고립된 외톨이가 아니었다. 내 영혼은 우주만큼이나 거대했고, 드넓은 바다에서 흥겹게 장난치며 놀았다.”


명망 있는 신경해부학자였던 그녀의 주장은 세상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현재는 뇌과학자로서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한 영감 연설자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질 볼트 테일러의 경험과는 반대인 사례가 올리버 색스의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나온다. 주인공은 우뇌 병변을 가지고 있다. 그는 우뇌를 이용할 수 없었고, 그 이후로 이상한 증상들이 나타났다. 주인공에게 장갑을 보여주고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하나로 이어져 있으면서 주머니가 다섯 개 있는, 뭔가를 넣는 물건이라고 대답하는가 하면,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보고 붉은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초록색의 기다란 것이 붙어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뇌 속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좌뇌는 세세한 부분에 집착하는 반면, 우뇌는 전체적인 그림에 초점을 맞춘다. 좌뇌는 나무를 보고, 우뇌는 숲을 보는 셈이다. 그는 장갑을 전체적으로 볼 수 없었기에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특이한 점은 그뿐 만이 아니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노래를 불렀다. 옷을 입거나 식사를 하거나 목욕을 할 때도 노래를 불렀다. 마치 노래 부르기를 너무나 좋아해서 삶의 일부분이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중간에 노래가 방해를 받으면 그의 행동도 같이 멈췄다. 사실 노래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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