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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BM Dec 29. 2021

그냥 좀 여유롭게 살고 싶은 것 같아

13. 간호사 친구와의 수다

이름: WH

응급실 간호사

고3 시절 목표: 국정원 직원

간호학과 전공

==============


(인터뷰 시점: 21년 9월)

일 1년 반 하면서 힘들진 않았어?     


WH 

엄청 힘들지.      


어떤 게 주로 힘들어?     


WH

처음에는 내가 처음 일하는 거니까 당연히 힘든 게 맞는데. 내가 지금 1년이 넘었잖아. 1년 전에 처음 일했을 때 하고 비교해서 지금 환자가 엄청 많아졌어.     


오는 사람이 진짜 많구나.     


WH

그러니까 우리가 환자를 어떻게 받냐면. 코로나 때문에 방역해야 되잖아. 내가 방역을 해야 되니까 오자마자 입구에서 환자 분류를 해. 중증도 분류를 하거든. 응급실에서는 그걸 하는데 처음에 코로나 증상이 있는지 없는지. 확진자 만난 적 있는지 없는지 스크리닝을 하는 거야. 그래서 열이 났다? 근데 웬만하면 아프면 열나잖아. 열나면 무조건 다 격리 구역으로 빠져. 선별 진료소로 가서 코로나 검사 다 하고 괜찮은 사람이면 다시 와서 진료받기 시작하는 거야.      


그런 사람을 진료 시작하면, 우리가 이 사람 보러 병실에 들어가. 들어갈 때 우리 원래 입는 유니폼 위에 수술 가운 입고, 그 위에 비닐 가운 입고 모자 쓰고 안경 쓰고 장갑 끼고 이거를 환자 들어가서 처치할 대마다 해야 된단 말이야. 그래서 그 사람들 이렇게 보다가 음성 나오면 뒤에서 보고 딴 데서 보고 막 이런 식으로 환자를 보는데. 그러면 코로나 검사하고 줄 서 있는 사람들 있잖아. 그 사람들 숫자가 평소보다 너무 많이 늘어나니까 엄청 길게 줄 서 있는 거지. 진료도 못 받고.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기다리고 있는 거야. 기본 엑스레이만 찍고 줄 서서 하루 종일 기다려야 돼.     


환자도 쉽지 않네.     


WH 

그래서 우리가 요즘에 과밀화가 심해. 코로나 검사하시고 진료 보는데, 진료까지는 일찍 보는데 피검사나 이런 거 하려면 5시간 6시간씩 기다려야 하거든. 진짜 5시간 6시간 기다려. 그러면 환자도 어이없으니까. 한 네다섯 시간 있다가 “왜 아무것도 안 해주냐.” “말씀드렸지 않았냐. 5시간 6시간 기다려야 된다.” “진짜 그럴 줄 몰랐다고.” 우린 진짜라서 그렇게 말한 건데.      


다 힘들지. 그래서 그만큼 우리도 줄 서 있는 사람들 다 빼서 받아야 되고. 환자들도 계속 기다려야 되고. 그런 게 힘들지 코로나 때문에 백신 맞으면서 이상 있으면 큰 병원 가라. 응급실 가보라고 하잖아. 그래서 백신 맞고 오는 사람들도 많고 뭐 하여튼 그래.     


일은 이제 그런 게 힘들고.     


WH

사람이 많아서. 또 코로나 때문에.     


너는 고등학교 때 목표가 국정원 직원이었잖아.  

   

WH

그렇지.     


내 기억엔 되게 진지했었던 것 같거든.     


WH

나름 진지했지. 중학생 때부터 생각했으니까.     


근데 간호학과로 바뀐 계기는 뭐야?     


WH 

글쎄. 너무 옛날이라 나도 잘은 기억은 안 나긴 해. 나름 진지했는데 그게 이유가 아마 그때 학생 때잖아. 막연히 국정원이 좀 멋있어 보였지. 그래서 하고 싶었던 것 같아. 그냥 매력적인 직업인 것 같아서.   

   

간호학과로 튼 거는... 고등학교 3학년. 그때 그런 진로 쓸 때까지 간호학과, 간호사의 길을 내가 간다는 생각을 아예 못 했거든. 가고 싶다 가기 싫다가 아니라 그냥 생각 자체가 없었어. 이제 수능 원서 쓰고 하면서 처음 고려를 하게 됐지. 근데 어? 이것도 괜찮은 직업인 것 같다. 그래서 선택을 했지.     


그 과정에 굉장히 많은 고민이 있었어?      


WH

처음에 고려했을 때는 일단 원서 쓸 때니까 한번 써보자 했는데. 재수하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는데 이것도 나름 매력적인 직업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선택하게 됐지.     


그 선택을 후회하거나 이러진 않고.     


WH 

아... 어...     


그러면 약간 질문을 바꿔서. 어떻게 보면 너 같은 경우에는 학과를 선택한 순간 진로가 정해진 거잖아. 그거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 뭔가 다른 길을 가봤으면 어땠을까는.     


WH 

그건 없었어. 뭐 내가 하고 싶어서 간호학과 간 거니까. 간호학과 공부하고 실습하면서 후회한 적은 크게 없었어. 그런데 지금 일하면서는 확실히 좀 힘드니까. 이것저것 고민을 많이 하게 되기는 하는데 이걸 내가 계속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길도 있을까 생각을 하는데. 그거 선택한 순간 하고 취업할 때까지만 해도 그것 때문에 후회한 적은 없었어.     


일하기 전까지는.     


WH

일하고 나서도 그것 때문에 후회한 적은 없었어.     


적성에는 맞는 거네?     


WH

맞아. 잘 맞고 잘 일하는데. 그 업무 환경이 아무리 잘 맞아도 힘들 수가 있잖아. 그것 때문에 힘든 것 같아. 이 직업이 막 그게 싫지는 않은데.     


일하는 거 자체는 괜찮은데. 강도가 세서.    

 

WH 

강도도 세고 다양한 사람하고 일하는 직업이잖아. 당장 쉽게 의사도 있고 병원 내 다양한 사람들하고 계속 소통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직업이니까. 그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긴 하지.      


사람 간의 소통 속에서.     


WH 

그게 잘 안될 때는 스트레스받으니까.     


그러면 지금 가고 있는 길에 대한 의구심, 이런 생각은 안 들고?     


WH

음... 그걸 어떻게 말해야 되지... 선택한 걸 후회하진 않는데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거는 고민이 되긴 하네. 확실한 건 지금 내가 응급실에 있지만 여기에 평생 있진 않을 거란 말이지.     


그러면 딴 데 가도 간호사라는 직업은 계속.     


WH 

그게 요즘 계속 고민이야. 그래서 간호사를 그만두고.     


다른 걸 할지.     


WH 

이 병원 내에서 다른 부서로 옮길지 아니면 병원을 그만두고 간호사 면허를 살려서 다른 회사 같은 데 취직을 할지. 아니면 진짜 다 때려치우고     


아예 새 출발.     


WH 

그래서 사업도 막 생각해 봤거든 요즘. 뭘 할지 아직 정한 건 아니지만.   

  

지금 어떻게 보면 그런 갈림길에 선 거네. 그 목표를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서. 지금 한창 그 고민을 하고 있는 거고.     


WH 

당장 그만둘 건 아니고 최소한 3년 반 할 거거든. 길면 5년 정도. 근데 요즘 계속... 

   

그러면 만약에 이제 수능 시절로 다시 되돌아간다면 그래도 간호학과 지원할 거야?     


WH 

이거 굉장한 고민이네. 고민은 무조건 할 것 같아.      


그러면 지금까지 온 과정은 좀 어떤 것 같아. 만족스러워 아니면 아쉬워?     


WH 

아쉽지. 왜냐하면 대학교 때 공부를 너무 안 했거든. 학과 공부 말고 다른 이것저것 많이 해봤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서 오히려 지금 더 공부 많이 하는 것 같아. 그때 학과 공부 아니어도 다른 어학 공부를 할 수도 있을 텐데. 그게 좀 아쉽더라고.     


밴드도 하고 마술 동아리도 하고 그랬잖아.      


WH 

그건 맞는데 그런 활동 사이사이에 중간중간 남는 시간이 분명히 있었거든. 그걸 날린 게 좀 아쉽다.     


그러면 지금은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것 같아? 아니면 쳇바퀴 돈다? 어떤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WH 

요즘에는 나아가려고 노력 많이 하지. 여기서 근무하고 경력 채우는 것만 해도 일단 나아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왜냐하면 어쨌든 병원 임상에서의 2년 3년이 꽤 크게 다가오니까. 그것만으로도 일단 나아가고 있는 건데 그것만으로는 항상 아쉬우니까. 어떻게든 최대한 하루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을 되게 많이 하거든. 공부라도 한 줄 하고 아니면 책이라도 한 줄 보고 쉴 거면 진짜 제대로 푹 쉬고.      


그래서 요즘에 잠을 아끼려고 해.  학생 때 기억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나 엄청 잤잖아. 매일 자고 계속 엎드려 자고. 자는 시간이 행복했었는데. 요즘에는 좀 아까워서... 지금도 자는 게 좋긴 해. 자는 게 좋으니까 푹 자서 푹 자면 그것대로 좋고. 안 자고 시간 쪼개서 내가 할 거 하고 자면 그것도 기분 좋아서 좋아. 약간 이런 느낌으로 긍정적으로 살고 있지. 어떻게든 발전하려고.     


힘들긴 하지만 현재에 대해 불만족하거나 그러진 않네.     


WH 

그렇지. 지금 당장 일을 그만둘 것도 아니고. 뭐 고민이 있긴 하지만. 내가 한 3년 차쯤 돼서 진짜 그만둘지 말지 고민하는 순간이면 조금 더 힘들 것 같은데 지금 이 순간은 어쨌든 아직 일한 지 얼마 안 됐고.  

   

나아갈 길이 아직 있으니까.     


WH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준비하는 기간이니까 크게 엄청 스트레스는 안 받지. 고민은 하지만.     


그러면 앞으로 10년 후의 모습이 그려지는 게 있어?     


WH

그게 옛날부터 참 큰 고민이었어. 나의 40대는 뭘 하고 있을까? 오히려 30대는 어디 병원에서 일하고 있을 것 같은데. 40대까지 병원에 있을까?     


지난 10년은 예상한 대로 온 편이야?      


WH 

그렇지. 어쨌든 과 특성상 정해져 있으니까. 방향이 그대로 쭉. 무난하게 졸업하고 군대 갔다 오고. 갔다 와서 취업하고. 무난하게 왔지.     


구체적인 길 같은 거 말고. 막연하게라도 미래 목표나 이런 게 있어? 뭐 집을 사고 싶다.  

   

WH 

그런 거야 있지.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이 돈독이 올라왔는지 나 부자 되고 싶다 이런 생각. 그래서 간호사 때려치우고 사업하고 싶다는 게 그거 때문인 것 같아.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WH 

돈을 많이 벌고 부자 되고 싶어서.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뭐야?  

   

WH 

취업하고 그래도 돈 관리 혼자 열심히 해보고 관련된 책도 읽어보니까 돈이 중요하더라고. 당연히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쓰고 싶은 데가 있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거야? 아니면 단순히 돈을 많이 가지고 있고 싶어서? 

    

WH

일단 하나의 목표는 우리 아빠한테 포르셰 사주기. 그러려면 내 차가 포르셰여야 한다. 그게 전제가 깔려 있지.     


먼저 내가 충족이 돼야 부모님한테도 해드리고.     


WH 

그만큼, 아빠한테 포르셰를 사줄 만큼 내가 여유가 있고 싶다 이거지. 근데 어떻게 될지 몰라. 누가 돈 많이 벌어서 뭐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얘기긴 해. 아빠한테 포르셰 사주기.   

  

쉽진 않네.     


WH 

쉽지 않지. 이건 농담 반 하는 얘기고. 그냥 좀 여유롭게 살고 싶은 것 같아. 그거에 대해 스트레스 안 받고. 어느 정도 기본 자금이 있으면 그거에 따라서 자기가 알아서 돈 벌어오는 그런 구조들 있잖아. 주식 넣으면 배당금 들어오는데 그 배당금이 내가 편하게 살 수 있을 만큼 들어오는 게 목표야. 지금 월급만큼으로 배당금이 들어오기.     


일 안 해도 돈을 벌 수 있게끔.     


WH

이게 진짜 목표.     


그런 생각하는 사람 많으니까. 그러면 우리 세대가 힘들다는 얘기도 하는데 네가 가진 직업적인 측면에서도 그런 게 있을까?     


WH 

글쎄. 내 직업이 취업 잘 되는 그런 데니까. 오히려 그런 거는 많이 없는 것 같긴 해. 솔직히 우리 세대 문제가 취업 안 되는 것도 하나가 크잖아. 코로나 때문에 타격 더 크고. 근데 당장 우리 직업은 없어서 지금 못 뽑을 정도.     


오히려.     


WH 

취업이 그렇게 어려운 데는 아니니까 그런 거에 스트레스는 없지. 없는데 약간 그런 건 좀 있어. 평균적으로 20대 사람들보다 취업 빨리 하지. 취업도 빨리 하고 돈도 조금 더 많이 벌거든. 왜냐하면 밤에 일하니까. 이건 약간 내 얘기긴 한데. 저번에 80% 국민 지원금 있잖아. 그걸 못 받았네. 왜냐하면 그 전 달에 한 달 내내 나이트를 했거든. 그러니까 그달에 수당이 많이 들어온 거야. 그래서 잘렸어. 난 이게 너무 억울해.   

  

상위 20%여서.     


WH

내가 왜 상위 20% 인지 난 아직도 이해할 수 없어. 약간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어. 내가 밤에 갈려나가면서 받은 돈인데. 그렇게 잘려버리면 좀 아쉽지.      


그냥 개인적인 생활로 봤을 때도 별로 느껴지는 건 없고?     


WH 

집 문제가 크지. 나도 지금 집 옮겨야 되는데 전세방도 없고. 사는 건 내가 뭐 돈을 조금 더 번다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게 문제지. 내가 조금 더 번다고 집값을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어쨌든 취업 잘 됐고 그렇긴 한데. 지금 스스로 봤을 때 미래가 희망적인 것 같아?    

 

WH 

그렇게 생각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살아야지.  

    

불안하진 않고?     


WH

불안하지 않아. 막말로 안 되면 그냥 간호사 하면 되니까. 어디서 굶어 죽진 않으니까.     


또 남자 간호사면 희소성 이런 게 있지 않아?     


WH 

나도 그런 말 계속 들어왔는데 안에 들어오고 나서 일하고 나서는 크게 뭐 그것 때문에 더 이득을 받거나 손해를 보고 이런 건 없었어. 취직할 때는 모르겠다. 높으신 분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뽑았을지는 모르겠는데. 일하고 나서는 뭐. 사실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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