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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BM Dec 29. 2021

곧 서른, 아직 첫걸음

Epilogue

다큐 제작을 위해 열댓 명의 친구들을 인터뷰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한 시간 분량의 영상에 모두 담으려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이야기를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에는 맥락이 있고 전후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나 본인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한 명당 5분 전후의 분량밖에 할애할 수밖에 없다 보니 영상에는 비교적 피상적인 이야기를 담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를 하며 깊은 이야기를 담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할 수 없었다. 시간을 내줘서 인터뷰에 참여해주었고 솔직한 이야기를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의 통일성이라는 이유로, 분량의 조절이라는 이유로 인터뷰 전체를 영상에 삽입하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버리기엔 너무나도 아까웠다. 가장 개인적이지만, 20 후반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얘기들을 하드 속에만 감춰두기엔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렇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글이라는 형태로라도 남기고자 했다.


내 친구들은 지난 10년 간의 과거, 지금의 현실, 미래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해줬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방황하기도 하고 과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으며 미래를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만날 때는 항상 즐거운 친구들이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고충과 힘듦을 지니고 있었다.


나 또한 친구들과 같은 이십 대 후반의 나이다. 하나 차이가 있다면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백수라는 정도일 것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혹시나 그들의 이야기 속에 내 진로에 대한 힌트가 있지는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그들은 본인의 길을 찾고 그 길을 잘 걸어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무리한 지금도, 여전히 난 어떤 길을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답을 기대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찾던 길은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나만의 완벽한 길을 찾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에도 완벽한 길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친구 중 그 누구도 본인만의 완벽한 길을 찾은 이는 없었다. 그저 본인 앞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할지, 어떤 형태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걸어가고 있었다. 가던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선택했다. 


어쩌면 방황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해진 완벽한 길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방황하며 제자리에 서있기만 하면 아무 의미도 있지 않았다. 방황하며 어느 방향인지도 모르겠지만, 나아가면 어떻게든 길은 나게 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겐 아직도 어린 나이.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조급한 나이. 정신연령은 아직도 어린것 같은데 나이만 찬 것 같은 나이. 첫걸음이기에 더욱 어려운 나이. 아직 서른이 되지도 못한 그런 나이.


스물 후반 우리는 그렇게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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