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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BM Dec 27. 2021

그렇게 실패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12. 디제이 친구와의 수다

이름: PY

디제이

고3 시절 목표: 관광 컨설턴트

경영학과 전공

==============


내가 좀 봐도 될까?  

   

PY

미래의 장인어른한테 검사받는 느낌이네. “자네는 생활기록부 뽑아오게.”  

     

고2 때는 관광 컨설턴트였는데 고3 때 해상 법률 전문가로 갑자기 바뀌었네.  

   

PY 

수시 쓰려고. 한국 해양대 쓰려고, 썼지만 떨어졌지. 수시 광탈했지.

     

그럼 관광 컨설턴트는 원래 관심이 있던 분야야?    

 

PY 

정확하게 말하면 중학생 때 꿈이지. 그때부터 뭔지는 모르지만 그런 일들을 하고 싶었어. 그러니까 서비스업 계열에서 일을 하고 싶었어.

    

굳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뭔가 그런 일들. 

    

PY 

그때부터 막연하게 생각을 ‘일을 일처럼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요즘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하고 내가 항상 얘기하는 게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좀 뭣 같다. 그러니까 워라밸이라고 하는 거는 워크, 라이프 밸런스를 맞춘다는 거잖아. 근데 워크와 라이프가 왜 반대에 있지? 일 자체가 나의 삶이고 내 삶이 일이면 되는 거잖아. 그거에 균형 맞추려고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지 않나. 근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로 돈 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보니까. 어쨌든 옛날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던 거 같아.     


그런데 대학은 경영학과로 진학을 했잖아?     


PY 

20살 때 무슨 일이 있었냐면 기업에서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 하버드 대학생들 불러서 이것저것 하는. 그때 만났던 형이, 하버드 대학의 물리학과에 재학 중인 형이 진짜 완전 금수저였어. 그냥 금수저. 아버지는 서울대 출신이시고 어머니는 이화여대 출신이시고 본인은 하버드 물리학과 재학 중이고 뭐 어쨌든. 그 당시에 이미 수시 정시 결과가 다 나왔을 때 그 형하고 얘기를 하는데. 솔직히 모르겠다... 이미 수능 개 망쳤고 갈 수 있는 대학교가 이 대학밖에 없었고 그래서 ‘이 학교에 다녀야 하나, 아니면 진짜 음악을 한번 제대로 해볼까’ 이거 한참 고민하던 시기였어. 그때 그 형이 얘기를 해주는 거야. “너 이제 한국 나이로 스무 살, 외국 나이로 18살인데 앞으로의 인생을 지금 꼭 결정을 해야 돼?”라고 나한테 물어봤는데 맞네. “둘 다 일단 해보고 맞는 걸 찾아가면 되지 않겠냐”라고 해서 대학을 갔고. 다니다 보니 졸업을 했지.   

  

그리고 대학원까지 갔잖아. 대학원을 선택했던 이유는 뭐야?

     

PY 

그 당시는 진짜 팔랑귀였어서.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 때, 판교 스타트업들 이쪽에다 퍼포먼스 마케터 직종을 많이 뽑았었어서. 그거 원서들 쓰고 면접 보러 다니고 그거를 마지막 학기 때 하고 있었거든. 

    

근데 대학원 교수님들이 내가 대학교 다니는 동안 창업 한번 해보려고 시도했었던 그런 것들을 보고 눈여겨보신 거야. 그래서 “혹시 창업대학원 생각 없냐?”라고 물어보셨지. 창업대학원의 교수님 세 분이셨는데. 그중에 a 교수님이 나한테 창업대학원 한번 들어와서 뭔가 같이 해보지 않을래?라고 물어봤는데 내가 “당장 뭐 돈이 있어야 대학원에 다니지 그래서 안 된다. 못 간다. 전 취업해야 됩니다.”라고 해서 거절했는데. 다음 날에 b 교수님이 오셔서 창업 대학원 한번 생각해보는 거 어때? 하시는 거야.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 남자 나이 26 이후로 부모님한테 용돈 받는 삶을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근데 대학원 들어가면 가정에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거는 저 못합니다.” 그래서 “아 그래? 너 용돈 얼마나 받는데?” 그 당시 때 월 용돈 50만 원씩 받고 있었거든. 그래서 “한 그 정도 받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거는 대학원 들어오기만 하면 장학금 형태로 챙겨주겠다고 얘기하시는 거야. 그것도 의미가 없잖아. 그 돈 가지고 생활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어차피 알바를 별도로 해야 되는 거니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아닙니다. 취업해야겠습니다.” “그래? 한 번 더 생각해 봐.” 근데 그다음 날에 창업대학원 창업학과의 학과장 교수님이 또 오셔서 “괜찮을 것 같은데? 같이 해보자” 이러니까 삼고초려가 된 거야. 교수님들이 한 분씩 돌아가시면서. 또 당시에는 잘 모르겠으니까. 참 생각해 보면 어렸지. 스물다섯에서 스물여섯 넘어가는 해였으니까. 어쨌든 그래서 한번 해보지 해서 그냥 대학원 들어간 거지. 사실 별 생각은 없었어.     


오라고 했으니까 들어갔다. 

    

PY 

러브콜을 받은 거에 대해서 남녀 관계로 비유하면. 어떤 모 여성이 나한테 우리 한번 만나볼래? 했는데 내가 거절했어. 근데 갑자기 다음 날 엄마 모셔 와서 만나볼래? 이것도 거절했어. 또 다음날 할머니를 모셔서 만나볼래? 약간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 어떻게 보면 좋은 기회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들어갔는데 아직까지 졸업을 못하고 있지.     


졸업을 할 의향은 있고?    

 

PY 

지금 수업은 다 들어서 논문만 쓰면 졸업인데 그러니까 지금 수료 상태야.  

   

그럼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상태네.  

   

PY

근데 창업 대학원이다 보니까. 우리 나이 때 실제로 창업하고 있는 선배도 있고 동기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 중에 졸업한 사람이 없어. 왜냐하면 다 지금 개인 사업자들에 대표다 보니까 시간이 돈으로 환산되는 사람들이잖아. 나도 그렇고. 그러니까 기회비용이 생기다 보니까. 내가 논문을 쓰면 쓰긴 쓰겠는데 그 논문 안 쓰고 내가 일을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으니까.     


돈을 안 벌려면 안 벌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렇게 수익이 보이니까.   

  

PY 

그게 아까운 거지. 사실 논문은 논문 쓴다고 돈을 잃는 게 아닌데 잃는 것처럼 느끼는 거지. 그리고 사실 내가 입학했을 때 경영학과가 아니라 학과 이름이 벤처 경영학과였어. 저 밑에 국립대학. 등록금이 전국에 있는 모든 국립대 중에서도 거의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싸. 고등학교보다 대학을 싸게 다녔어. 일단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무슨 생각 했었냐면 ‘불효다. 내가 여기 고등학교를 다닌 게 불효다.’ 

   

비쌌어서?     


PY

솔직히 말해서 우리 고등학교가 일반 고등학교보다 한 3배 됐었잖아. 그러면 3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갔어야지. 그게 내 돈이 아니잖아. 엄마 돈이잖아. 엄마는 3배의 투자를 한 건데 돌려준 나의 정시 수능 점수들이 3 2 4였거든 등급이... 3 2 4... 언수외 3 2 4... 그래서 불효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약간 그런 것도 있었어.     


그래서 대학교는 저렴한 데를 가겠다.  

   

PY

그러니까 사립대 보내달라고 할 염치가 없었어. 다른 사립대도 합격하긴 했는데 갈 수가 없었어.   

   

비싸니까... 이제 결과적으로는 대학 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디제잉 일을 하고 있잖아.

     

PY

근데 나는 개인적으로는 경영학과 나온 거를 만족하긴 해. 결국에는 비즈니스잖아. 한국어로 경영학이라고는 하지만. 영어로 표현을 하면 ‘I’m major in business’잖아. 지금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개인 단위로 하고 있지만 비즈니스니까. 그래서 만족은 하고 있어.     


이 일을 업으로 하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언제야?    

 

PY 

아직 내가 인생을 무조건 한 방향으로 결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딱 꽂혀 있는 상태에서 여기 학교로 내려왔는데. 학교 정문 바로 앞에 클럽, 감주 이게 있었어. 사실 디제잉할 생각은 없었어. 근데 어쨌든 음악적인 것들을 하고 싶다. 고등학교 때도 비트박스 했었으니까. 음악적인 걸 하고 싶었는데 디제잉에 딱 꽂힌 거지. 그래서 그냥 하루 놀러 갔는데 디제잉이 너무 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평일에 혼자 한번 갔어. 가서 디제이 형들한테 “안녕하세요. 저 디제잉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그냥 다짜고짜 얘기를 했지. 그러니까 형들이 “그래? 내일부터 나와.”라고 한 거야. 그래서 그냥 나갔지, 나가서 맨 처음에 뭐 했냐면, 그 당시에는 클럽이든 감주든 안에서 담배 피우고 하니까 형들 재떨이 비우고. 아침에 장비들 먼지 같은 거 쌓이니까 출근해서 장비 다  키고 먼지 털어내고 재떨이 있으니까 재떨이 비우고 형들 커피 심부름하고 담배 심부름하고 그걸 했던 거야. 그거 하면서 형들이 어쩌다 한 번씩 조금 알려주면 그거 배우고. 한 3개월 정도 하다 보니까 형들이 타임 페이를 주고 나를 쓰게 된 거지. 그래서 그렇게 그냥 그렇게 시작을 했어.     


그렇게 하다 보니까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온 거네.     


PY 

하다 보니까 너무 재밌는 거야. 문제는 학교를 안 다니는 거야. 안 다니는 건 아니야. 1학년 1학기 때 학점이 3.1이었거든. 학교를 거의 안 다녔었어. 그러니까 네 번 출석을 안 하면 F인데 세 번씩 다 채웠었어. 왜냐하면 새벽 5시까지 가게 정리하고 퇴근해. 숙소 들어가면 6시야. 그때 자. 10시 수업 어떻게 들어가 못 들어가는 거지. 그래서 13년도 20살 때는 학과 내에서도 그런 애가 있었지. 가끔씩 피곤에 절어서 씻지도 않고 모자 쓰고 학교 와서 자다가 출근해서 음악 틀고. 그렇게 스무 살을 보냈었지.    

  

그때부터 DJ를 시작해서 지금 스물여덟까지 왔는데. 그럼 그동안 디제이 말고 다른 일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은 없었어?     


PY 

사실 경영학과 다니면서 창업을 하고 싶었어. 군대에 있을 때 위병소 앞에서 서 있으면서 나가서 뭐 하지? 이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했던 생각이. 창업 아이디어들을 생각을 해봐야겠다. 했을 때 생각했던 게 뭐냐면 가방을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거야. 예를 들어 핸드폰을 쓰는데 그 핸드폰에 딱 맞는 사이즈의 주머니가 딱 가방에 있어. 착착 자기가 설계해서 만들 수 있는 그런 가방을 서비스해주는 그런 것들을 하고 싶다. 그런 가방 회사를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그거 가지고 창업경진대회 같은 데 나가고 어떻게든 해보고 했었는데 결국에는 잘 안 됐지.   

  

그리고 생각해보면 창업 준비하는 사람들이 다 똑같이 생각할 텐데. 나와 비슷한데 잘하고 있는 애들이 보여. 그럼 개를 어떻게 이길 거냐. 문제는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그럼 이제 그 아이디어가 의미가 없잖아. 그래서 접게 되고. 그 당시에 그렇게 하다 보니 주변에서 다른 창업 준비하고 있는 팀들에서 같이 창업해보자 그래서 창업 팀원으로서 활동을 하기도 했었지. 하면서 그 당시 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DJ는 약간 돈이 벌리는 취미라고 해야 되나. 그 정도였던 것 같아.   

  

그냥 부수입 정도.  

   

PY

어차피 대학생이라는 신분이었으니까. 지나가시는 어르신이 나한테 길을 물어볼 때 “어이 학생!”이라고 부르는 게 너무나 당연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내 직업이 뭐냐 하면 그 당시에는 “DJ입니다”라고 하지 않았지. 저 대학생이에요.     


어쨌든 경영학 쪽으로도 해보고 싶었는데 하면서 느낀 거는 아이디어들 있잖아 창업 아이디어들. 이거 진짜 다 의미가 없다. 쓰잘데기가 없다. 아무 의미가 없는 거라는 걸 많이 느꼈어. 할 수 없는데.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데 ‘내가 이런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백날 떠들어봐야 안 되잖아. 그런데 어쨌든 디제잉은 점점 연차와 경력이 쌓이고 있고. 이거는 내가 가지고 있는 거니까 내가 비즈니스를 한다면 이쪽에 비즈니스를 하는 게 맞겠다. 그렇게 하게 됐지.     


겹치는 거네.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마음과 하고 네가 지금 디제이를     


PY 

그러니까 어떤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는 없었고 그냥 비즈니스가 하고 싶었어.     


일단 너만의 일을.  

   

PY 

그러니까 그냥 뭐라 해야 되지. 고등학교 다니면서 느꼈던 건데 내가 납득이 되지 않는데 내가 해야 된다고 하는 일들 있잖아. 그걸 내가 진짜 더럽게 못하더라고. 수능 공부 같은 거ㅋㅋㅋ     


핑계인데ㅋㅋㅋ 핑계인 거 같긴 한데 아무튼 내가 지금 이 공부를 왜 해야 되는지 내가 납득이 안 됐는데. 일단 해야 된대. 남들도 다 해라고 했을 때 그런 일들에서의 능률이 너무 떨어지는 거야. 나 스스로가 진짜 한심하고 답답할 정도로. 그래서 일단 취업은 맞지 않겠다. 그러니까 직장에 들어가면 직장 상사든 회사의 대표든 그 사람들이 어떤 걸 하라고 나한테 지시를 할 텐데. 그 지시가 내가 납득이 안 되면 내가 그걸 못 해낼 거 같더라고.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편인 거지?     


PY

너무 좋아.     


근데 그 와중에서도 뭔가 좀 불만족스럽거나 약간 현타 포인트 이런 게 있어? 억지로 찾을 필요는 없고.     


PY 

있는데 뭐냐면. 최근에 느끼게 된 거는, 우리 엄마의 평생소원이 아들 딸 공무원 시키는 거였거든. 그래서 누나는 어쨌든 공무원이 됐고. 나는 이제 나이가 너무 차서 이제부터 ‘엄마 나 공무원 준비할래요’라고 해도 지원도 안 해주시겠지만. 어쨌든 공무원 되기를 원하셨는데 도저히 못할, 진짜 내가 얘기했던 내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을 해야 되는 것의 끝판왕이 공무원인 거야. 그래서 공무원 도저히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시켜줘도 못하겠다. 되기도 어렵고. 합격하신 분들 진짜 대단하신 분들이지만. 누가 너 시험 안 쳐도 되니까 내일부터 공무원 해라고 해도 못하겠는 거야.    

  

그래서 어쨌든 최근에 오는 현타가 어디서 오냐면. 그런 엄마의 얘기가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들이 생길 때 현타가 와. 사회의 통념상 안정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보니까. 그거에 대해서 상대방이 무시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닌데 은연중에 신뢰를 덜 주는 듯 한 느낌들. 그런 것들이 있어서 현타가 좀 와. 그렇다고 물론 평범한 직장인보다는 좀 괜찮게 수익도 나지만 그렇다고 막 엄청나게 잘 벌고 이런 건 아니다 보니까. 그냥 현타는 더 잘 돼야겠다. 약간 이런 현타. 그러니까 안정적이지 않다. 사람들이 안정적이라고 보지 않고 그게 약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현타라기보다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지. 그렇지만 좀 짜증도 나는 거지.     


일반적으로 봤을 때는 어쨌든 불안정한 직업이니까. 그러면 너 스스로 너의 미래를 볼 때 불안감이 들진 않아?      


PY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보통 이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 같아. 흔히 경영학에서 글로 배우는 기업가 정신, 앙트레 프레너십 이런 것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이런 내용이 있는데. 디제잉은 나이도 많아지면 못 하는 거 아니냐? 근데 솔직히 해외 케이스이긴 하지만 50대 60대 활동 열심히 하시는 디제이들도 있고. 만약에 그게 안 된다면 디제잉 교육 사업을 한다든지. 지금도 하고 있는 레슨 사업을 한다든지. 뭐 그런 것도 있고.     


그리고 옛날부터 되게 생각했던 게 뭐냐면. 윤리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한 번 이런 얘기들을 했었어. 우리한테 무슨 얘기를 했었냐면 “대한민국에서 지금 우리 시기에 태어난,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 굶어 죽는 사람은 없다. 사회가 우리를 굶어 죽게 내버려 두질 않는다. 어떻게든 먹고 산다. 먹고 사니까 안정된 직장, 큰돈 이게 그렇게 중요하냐. 그냥 자기가 만족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거 하면 되는 거지”라는 얘기에 엄청 꽂혔었어. 딱 꽂혔었어. 그냥 그 말 자체는, 진짜 뭔가 한 대로, 망치로 맞은 느낌이었거든. 맞네. 내가 생각해도 도저히 굶어 죽을 방법을 찾는 게 어려워. 뭐라도 하게 돼. 진짜 정 안 되면 그냥 막노동이라도 하면 되지. 그게 내가 선택한 결과라면. 내가 선택을 했는데 크게 실패를 했어. 그래서 노가다를 해야 돼라고 하면 나는 내가 선택한 거니까 감당해야 되는 거고. 그때 좀 인생 재미없겠지. 근데 어쨌든.     


어떻게든 길은 나게 돼 있다.

     

PY 

굶어 죽는 게 더 어렵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건장한 남성이 굶어 죽는 게 정말 쉽지 않다. 길바닥에 누워 있으면 경찰이 주워가서 노숙자 보호센터에 넣어서 밥 먹여주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으니까. 내가 내 인생에 대해서 그렇게 실패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뭐 죽는 건 아닌데. 뭘 해도 안 죽는 데. 

     

넘어가서. 대부분의 문화예술이 그렇듯이. 그러니까 시장의 파이라는 게 서울하고 지방 하고 차이가 날 수밖에 없잖아. 메인 스트림으로 가려면 서울 쪽으로 가야 되는 게 현실상 그렇잖아. 너는 서울로 올라갈 생각은 없는 거야?     

(*현재 경남 지역에서 디제이 활동 중)


PY

예를 들어서 내가 힙합을 해. 서울 무조건 올라갔을 거야. 내가 춤을 춰. 서울 무조건 올라가야지. 근데 디제잉은 생각보다 애매해. 요즘은 스우파도 나오니까 우리나라에서 댄서라고 하면 이름은 잘 몰라도 유명한 댄스 크루. 댄스 팀들이 있고. 안무 창작가들이 떠오르잖아. 힙합 하면 박재범. 이런 사람들 있잖아. 디제이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 디제이로서 성공한 우리나라 사람이 있어?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그러니까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은 사람은 거의... 

    

PY 

그뿐만 아니라 디제잉 씬 안에서도 없어. 문화예술인은 무조건 서울에 가야 된다는 나는 아닌 것 같고. 단지 그런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사업들이 서울 위주로 다 돌아가다 보니까 서울에 꼭 올라가야 되는 특정 케이스가 있는데 디제이는 아니라고 봐.    

 

특히 코로나 이후에. 솔직히 말하면 서울에, 우리가 익히 유명하게 알고 있는 유명 펍. 유명 클럽들에 있는 디제이들 있잖아. 디제이들 중에 신용불량자 엄청 많아.    

 

내가 직접 전해 들은 얘기는 아니고 건너 건너서 들은 얘기들이라 믿진 말고. 카더라 정도. 아무튼 나름 그래도 이 시장에서 좀 파이가 있다고 하는 디제이분들. 당연히 그러니까 엔터 산업이 사치가 더 큰돈을 불러오는 시스템이야. 서울에서 막 200평 300평짜리 규모의 클럽들에서 트는 디제이들은 외제차를 타야 돼.     


예를 들어서 내가 강남에 300평짜리 규모에서 클럽 음악을 트는 사람이야. 근데 내가 출근을 모닝으로 해. 그럼 잘린다고. 그 사람들은 어쨌든 외제차를 사야 되고 좀 괜찮은 오피스텔을 사야 돼.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는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괜찮았거든. 근데 2년째 수익이 제로가 됐어. 그 사람들은 영끌 해서 리스 할부, 60개월 72개월 할부해서 일단 외제차를 샀어. 돈을 못 벌어 다 지금. 그 사람들이 진짜 우리가 알고 있는 힙합 레이블 이런 소속이면, 대중적인 성공을 이뤄낸 사람이라면 당장 공연 몇 번 안 한다고 무너지지 않는데. 우리나라 디제이 씬은 딱 거기야. 맥시멈이 거기야.     


나처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디제이 하면 클럽에서 일 하기도 하지만. 비트메이킹도 하고 이렇게 프로듀싱도 하고 이렇게 돈 벌지 않나? 보통 이미지가 그렇잖아. 그러니까 힙합 레이블에서 하는 사람들은. 그런데 대부분의 디제이들은 그렇게까지는 못 하고.     


PY 

그니까 비트메이킹하고 이런 것들은 사실은 인맥도 무시 못 하고.     


사람들 많이 알고   

  

PY 

술자리에서 술을 많이 먹는. 근데 사실 디제이라는 직업 자체가 사실 그래. 나도 많이 느끼는데 요즘 되게 웃긴 게 뭐냐면 취미로 디제잉하는 사람들이 실제 프로 디제이들보다 음악을 더 잘 틀어. 코로나 때문일 수도 있는데 지금 그렇게 되고 있거든. 근데 이런 현상은 사실 코로나 이전부터 그랬어.    

  

왜 그러냐면. 직업으로서 디제잉하고 있는 사람은 내 디제잉 스킬이 오른다고 내 수익이 커지는 게 아니란 말이야. 예를 들어서 퇴근을 했어. 퇴근을 했는데 음악을 더 준비할 필요가 있겠다고 느낀 거야. 그래서 오늘은 퇴근해서 내일 출근하기 전까지 음악을 준비해서 다시 구성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이제 퇴근하려니까 클럽 사장님 이런 분들이 회식해야지라고 했을 때. “저는 음악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 오늘은 들어가서 음악을 준비하고 오늘 회식에 참석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면 사장님 입장에서는 “그래. 들어가고 내일부터 나오지 마”가 된단 말이야 결국엔 다 정치야. 실제로 직업적으로 디제잉을 하면 내 디제잉 스킬을 올리는 것보다도     


사장님이 얼마나 잘 불러주냐.    

  

PY

어. 정치 행위가 된단 말이야. 정치력이 돈이 되는 판이야. 그러니까 그런 거에 관여하지 않고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 내가 딱 하루에 2시간 3시간 정도 음악을 꾸준히 준비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음악적 퀄리티가 더 올라가는 거지. 프로랍시고 하는 사람들보다 본인이 아마추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음악적 퀄리티는 더 높은.     

그럴 수 있겠다. 사실 이런 분야들이 좀 객관적인 퍼포먼스보다 주관적인 게 강하니까. 

    

PY

99점 97점 이게 아니잖아.   

  

개인 선호가 있는 느낌이니까.     


PY

그러니까. 힙합도 마찬가지로 유명한 아티스트가 샤라웃(shout out)이라고 표현하잖아. “걔 잘 잘하더라” 이 한마디가 엄청 공연을 많이 하고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것보다 더 효과가 커. 디제잉은 더 더욱이나 그렇고. 결국에는 힙합은 창조지만 디제잉은 창조가 아니라 인용이니까. 기존에 있는 노래들로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다 보니까. 사실 그거 순서대로 그대로 틀면 똑같아지는 거야. 모방이 쉬운 거지.     


정말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냥 음악 틀어놓는 거와 여기서 콘솔 만지고 있는 거와 차이를 모르잖아.    

 

PY 

맞아. 멜론 플레이어와 디제이의 차이가 없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 많이 나오면 그냥 좋은 거고. 내가 평소에 많이 아는 음악 틀어주면 잘하는 디제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거기 때문에. 거기 안에서도 조금 더 죽어라 노력을 하지만. 사실 디제잉 자체는 작곡이나 창작 활동과는 조금 다르게. 완전 재창조를 해내는 그런 작업들과는 다르게 차별화가 진짜 어렵지.     


그러니까 어려운 게. 못 하면 티가 확 나잖아. 자연스럽게 하는 게 잘하는 거잖아. 문제는 정말 자연스럽게 하면 오히려 티가 안 나고. 그게 참 어려운 것 같아.  

   

PY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은 다 거기서 거기. 근데 페이는 천차만별이야. 하루 일하는 데 10만 원 버는 디제이가 있고 페스티벌 같은 데 가면 한 시간 음악 듣는데 3억, 4억짜리 디제이들이 있어. 그게 디제잉 스킬이 무슨 3천 배 뛰어나서 3억이 아닌 거야. 그냥 유명하니까 3억인 거고 안 유명하니까 10만 원인 거고. 그런 것들을 쌓기 위해서 서울로 가야 된다는 게 있는데. 나는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한테 항상 하는 얘기가. 이미 서울에 꼭대기가 있는 분야, 한국 힙합씬, 춤, 아이돌, 내가 잘은 모르지만 뭐 미술이나 이런 것들도 있겠지. 그런 것들은 서울로 가야지. 근데 디제잉으로 성공을 하기 위해 서울로 가는 건 좀 이상한 것 같아. 디제이로 성공을 하려면 호주 멜버른, 암스테르담, 런던으로 가야 되는 거야. 우리나라에는 씬이 없기 때문에. 디제이 씬이라는 것 자체가 없기 때문에.     


그건 진짜 의외긴 하다. 씬이 아예 없는 건.     


PY 

그게 있긴 있지.     


거의 미미한.     


PY 

있긴 있는데 몇 명 안 되는 판에 아까 얘기한 정치 문제도 있고 그 판에서 싸움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경남에서 그런 거에는 엮이지 않을 수 있으니까. 

   

PY 

엮이지 않고 여기서 경력 쌓으면 되니까. 나 요즘 부산에서도 디제잉하고 그러거든. 

    

조금씩 경남, 부경을 중심으로 넓혀 가면 되니까.    

 

PY 

그렇게 하다 보면 여기서 인지도가 쌓이면 서울도 왔다 갔다 하게 되고. 굳이 서울에서 해서 하면 딱 장점은 하나. 그 인맥.     


또 인맥으로 성공하면 나락 가는 것도 한순간이니까.     


PY

나락 가는 것도 한순간이고. 그렇게 쌓아온 인지도가 의미가 없지. 사람들이 날 디제잉 때문에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누구랑 친해. 누구하고 술 먹은 거 인스타 사진에 올려. 진짜 그렇게 하면 페이가 오른다니까. 내가 인스타 스토리에다가 진짜 유명한 사람들하고 같이 술자리 한 거 사진 찍어서 올리잖아. 디제잉 페이가 오른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그렇게 올라도 솔직히 말하면 현타만 더. 오히려 역으로 현타가 많이 왔어. 그렇게 얘기하니까. 마치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게 디제이들 다 병신임. 이건 절대 아니야. 우리나라 디제잉 그래도 열심히 잘하고 있는 아티스트들도 굉장히 많고. 다 리스펙은 하지만 그 사람들을 내가 리스펙 하는 이유는 비정상인 경우도 많으니까. 정상적이기만 해도 진짜 리스펙.     


디제잉이란 본질을 추구만 해도 리스펙 할 만한 거니까. 다시 주제를 돌려서. 어쨌든 20대가 거의 다 끝나가잖아. 20대를 돌아봤을 때 좀 만족스러운 편인 것 같아?    

 

PY 

그러니까 만족한다라는 게 후회하지 않는다는 아닌 느낌. 

    

잘 보낸 것 같은데 후회 남는 것도 있고 약간 이런?  

   

PY 

그러니까 이게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 것 같아. 근데 그렇다고 만족하지 않는 건 아닌 느낌. 말이 좀 이상한데.     

 

어쨌든 만족은 하지만 다른 선택을 했을 거다? 돌아간다면?    

 

PY 

돌아간다면.    

 

예를 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아?    

 

PY 

재수를 했을 거 같은데. 그 당시 때 10월 모의고사 등급이 1 1 2였어. 수능이 3 2 4가 나왔어. 그럼 정상적으로 생각을 하면. 물론 10월 모의는 사설 모의고사이긴 했는데. 1 1 2 나오는 게 의미가 없지만. 어쨌든 재수하는 게 정상 수순이잖아. 3 2 4가 나왔는데. 아니 외국어 4등급이... 외국어 4등급 받은 기억이 없는데... 외국어 4등급... 그래서 어쨌든 재수를 하는 게 정상인데 그때는 솔직히 재수가 무서웠어. 1년 더 해야 된다는 게 솔직히 쉬운 선택은 아니잖아. 그리고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게 뭐였냐면. 아까도 얘기했던 것처럼 내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은 잘 못해. 이 재수도 내가 온전히 납득이 안 된 상태에서 하면 잘하겠다는 보장을 못하니까. 재수한답시고 돈은 돈대로 들어. 집안 지원 다 받고 공부는 제대로 안 하고. 솔직히 나 고삼 때 최선을 다했냐 하면 최선을 다하진 않았거든.     


1년 또 반복될 거고 3 3 3이 나올지 어떻게 알아. 모르는 거잖아. 일 년에 딱 한 번 밖에 주지 않는 기회니까.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깡이 모자랐는데. 과거로 돌아간다면 재수를 했을 것 같아.   

  

어떻게 보면 대학 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지금 하고 있지만 대학에 대한 아쉬움이 그래도 있는 거네.  

   

PY 

나머지는 모르겠어. 그 포인트 딱 하나만 바뀌면 너무나도 많은 게 달라지니까. 딱 그걸로 바뀌어. 내가 재수를 했다면, 예를 들어 서울권이 있는 학교를 갔다면 완전 다른 인생을 살았을 거 같아.  

   

이 일을 안 했을 수도 있고.    

 

PY

오히려 이 일을 더 본격적으로 서울에서 했었을 수도 있고. 아예 생각 안 했을 수도 있고. 근데 사실 이게 다 의미가 없는 게 자기가 겪어보지 않은 환경을 부러워하잖아.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재수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재수를 해서 조금 더 괜찮은 대학에 가는 그런 상황들을 부러워하는 것 같고.

     

그래도 그냥 돌이켜보면 딱 2013년부터 2021년 지금까지 쭉 돌이켜보면 알찼다. 그러니까 최선은 다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한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있어서. 그거에 대한 만족은 있지. 근데 몇몇의 선택에 대해서는 그땐 그래 볼걸. 이거는 당연히 남을 수밖에 없는 거고. 어쨌든 주어진 상황 안에서는 그냥 할 만큼 한 것 같고. 그걸 인정받는 시기가 조금 오는 것 같아. 그런 느낌.     


그러면 다음 10년을 봤을 때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삶을 살고 싶다. 이런 게 있어?    

 

PY 

약간 횡설수설할 수 있는데. 대학생 때 창업 관련해서 지원 사업 발표 이런 거 하잖아. 그렇게 하면서 느꼈던 게 뭐였냐면 빨리 30대가 되고 싶었어. 왜냐하면 그냥 20대 초중반이기 때문에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어.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21살, 22살 애들이 창업 아이템 가지고 오면 일단 무시해. 나도 그래. 26살 때 21살, 22살 애들이 창업 아이디어 가져오면 그냥 안 들어와. “그래 열심히 해봐. 파이팅” 이러고 만단 말이야. 그래서 20대 초중반 때는 빨리 내 말에 힘을 얻기 위해서 나이가 찼으면 한다는 생각을 했어. 30대가 되고 싶었어. 그리고 지금도 솔직히 그래. 내가 아직 스물여덟이지만 지금 너무 좋은 것 같아. 한 해 한 해가 점점 더 좋아지는 느낌이 있어. 내가 스물여섯스물일곱 때부터 열심히 해왔던 것들을 인정받는 느낌이 있어서 좋고. 이게 점점 더 커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이런 것들이 좀 있어서 되게 좋아.     


그런데 앞으로 무얼 할 건가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겠어. 일 자체는 요즘 돈미새여서 돈이 되는 일을 하겠지. 가장 나를 더 높게 평가해 주는 일이 그게 뭐가 됐든 간에, 내 시간을 비싸게 사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할 것 같아. 근데 그게 뭐가 됐으면 좋겠다, 뭐가 될 것 같다 이거는 아직까지 없는 거 같아.    

 

일단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PY 

돈...ㅋㅋㅋ

     

ㅋㅋㅋ그럴 수 있지. 돈이 얼마나 중요한데.   

  

PY

그게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차도 사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진짜 인정 욕구야. 철저하게 인정 욕구. 내가 이 정도의 일을 하는데 그거에 대한 대가가 이 정도다라고 하는 그런 인정 욕구. 물론 좋은 것도 먹고 좋은 것도 마시고 이렇게 하고 싶은 것도 당연히 있겠지만 그건 진짜 극히 일부분인 것 같고. 그냥 인정받고 싶어.     

얘기를 쭉 하다 보니까 내가 약간... 그 뭐라 그래야 되지. 약간 결핍된 사람? 어렸을 때 인정 많이 못 받아서 애정결핍처럼 인정 결핍인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 일단 그런 욕구가 되게 원래 세서. 어쨌든 그거에 대한 것 때문에라도 성공한 사람의 프레임, 바운더리 안에 들고 싶은 욕구가 강한 것 같고. 그러기 위해서, 내가 음악이 너무 좋으니까 디제이 한다. 나는 음악을 계속할 거다. 이거는 확실치 않아. 어쨌든 계속 이걸 할 거기 때문에 아마 그거의 값어치가 올라갈 거고 아마 그런 일들을 계속하고 있지 않을까? 정도의 예상?  

   

이제 그걸 제외하고. 지금 연애를 안 한 지가 너무 오래됐어. 솔직히 가정을 꾸리고 싶고 원만한 생활을 하고 싶은 이런 욕구들이 당연히 있잖아. 근데 그거는 쉽지 않겠다. 그게 내가 성공하는 것보다도 더 쉽지 않겠다. 뭐 그런 건 좀 있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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