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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BM Dec 26. 2021

그런 걸 떠나서 확실히 재미가 있다고 해야 하나

11. 경찰공무원 친구와의 수다

이름: KH

경찰공무원

고3 시절 목표: 딱히 없음

나노신소재공학과 중퇴

==============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 명확한 꿈이 없었다고 했잖아? 대학 지원은 점수 맞춰서 지원을 한 거고?   

  

KH 

부모님 기대? 내 기대라고 해야 하나. 인서울을 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어. 그런데 수능 성적이 인서울 하기에 살짝 모자랐어. 그래서 이것저것 뒤져보다가, 찾아보니까 나노 신소재 공학과라고 있더라고. 여기가 많이 뽑고 추가 모집도 순환이 빠르더라고. 그래서 여기도 지원해 봐야겠다 했는데 운 좋게 돼서 갔지.      

 

학과 공부는 좀 맞았어?     


KH

내가 문과를 간 이유가 수학은 그래도 자신 있었는데 과학이 싫었단 말이야. 근데 대학은 이과로 교차지원을 해서 갔는데 기초과학을 계속 배우고 있으니까.     


안 맞았구나.     


KH

못하겠더라고. 1년 버티다가 군대도 가고.     

 

웹툰 학과 전과 준비하지 않았어?     


KH 

응 준비했는데 원래 계속 미술을 하던 애들도 못 버티고 나오는 데라고 하더라고. 워낙 그 안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니까. 그래서 형식적으로 잠깐 시험을 보긴 했는데. 그 교수들은 이미 안 받을 마음을 갖고 있던 것 같더라고.     

 

아까 잠깐 네 생활기록부를 봤거든. 네 장래희망은 계속 바뀌는데 흥미는 3년 동안 계속 그림 그리기더라고?     


KH

흥미라기보다는 남들에 비해서, 평균적인 사람들에 비해서 조금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던 거가 그림이었지. 그랬었는데 요즘은 아닐 수도 있어.     


그림은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거야?     


KH

관심이 있었지. 혼자 tv 보면서 그리고 했었으니까.      

 

그림에 재미는 느꼈던 거네.      


KH 

그지 뭐. 배우고 이런 적은 없어도.     

 

그래서 전과도 웹툰 쪽을 한번 생각했었던 거야?     


KH 

이대로는 신소재 공학과 계속 다니는 게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거야. 그래서 군대 갔다 오고 한 학기 해봤는데도 성적이 만족스럽지도 않았어. 공부를 나름 한다고 했는데 학점이 3점 간당간당하니까. 이건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전과 시도를 했는데 실패를 한 거야. 짜증 나기도 하고 그렇다고 학과 공부를 계속 하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은 거야.      


이거 진짜 아니다 싶어서 공무원 준비를 해야겠다. 그런데 공무원도 워낙 많은 직렬이 있잖아. 이렇게 많은 것 중에 뭘 해야 하나 했는데. 경찰이 체력 시험도 있고. 필수 과목도 다른 직렬 하고 달리 국어가 없고 영어 한국사, 법 과목 3개인 거야. 내가 국어를 좀 어려워해서. 아무튼 그래서 경찰 해야겠다. 몸 쓰는 건 자신 있었으니까.     

 

경찰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기보다는.  

   

KH

내 현재 상황에 맞춰서 지원을 한 거지.     


가장 가능성이 높은 길을 택한 거네.     


KH

그때는 찾아보고 준비한 게 아니니까. 공무원 중에서도 생각을 한 게 경찰이었던 거지.   

  

어렸을 때부터 목표로 했던 건 아니지만 현실에 맞춰서. 

    

KH 

막연히 그런 것도 있었어. 경찰 영화 보고서 ‘경찰 멋있다, 재밌겠다.’ 딱 그냥 그 정도.     

 

지금 어쨌든 경찰이 됐잖아. 그럼 만족도는 어느 정도야?     


KH 

만족도는 되게 높아. 물론 수도권 같은 경우에 경찰도 되게 바쁜데 나처럼 지방에 있는 경찰관들은 약간 여유 있는 것 같아. 복지도 나름 괜찮고. 경찰이라고 하면 나름 부모님 친구들한테도 부족한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니까. 또 내가 친척 동생 중에 첫째거든. 뭐 친척 동생들한테 보이기에 떳떳하니까. 경찰은 지금 남들이 보기에 좋잖아.     

 

그렇지. 안정적이고.     


KH

또 지금은 열심히 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더 좋게 보는 것 같더라고. 되고 나서 아버지도 회사에서 큰 소리 내시면서 한 턱 샀다 그러시기도 하고 그런 거 보면 잘했다는 생각 들지.    

 

반대로 아쉬운 건 없어?     


KH 

경찰의 아쉬움? 그냥 그런 건 있지. 조금 더 빨리 준비해서 빨리 됐으면 어땠을까는 생각? 지금 동기 중에 어린 친구들이 많거든. 스물넷인 친구도 있고. 물론 30대인 형들도 있지만 진짜 어린 친구들도 많거든. 스물네다섯 이런 친구들.     


여경 같은 경우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준비해서 스물한 살에 경찰 된 애도 있고. 그런 애들 보면 진짜 치밀하게 준비해서 공부했구나... 나도 저렇게 해볼 걸. 뭐 이런 생각? 그게 조금 아쉽지. 좀 더 빨리 들어왔으면. 이게 진급에 대한 것도 있다 보니까.     


차라리 그러면 대학을 안 가고.     


KH 

아예 그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고. 아니면 군대에서부터 아예 치밀하게 준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고.     

 

그러면 열아홉, 스무 살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네가 지금 말한 선택을 할 거야? 바로 경찰 시험 준비하는 식으로?

     

KH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다면 그럴 것 같아. 조금 더 먼 과거로 가면은 다른 직업을 선택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고등학교 2, 3학년으로 돌아간다면 법 과목 공부하고 영어 열심히 준비하고 한국사 외우고 해서. 군대 갔다 오자마자 합격하는 루트를 탔을 것 같은데.  

    

그렇게 했어도 대학에 대한 아쉬움은 안 남았을 것 같아?     


KH 

내가 대학교 생활을 재미있게 완벽하게 적응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러다 보니 대학교에서 이랬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물론 지금도 졸업 안 했으니까 고졸이긴 하지.   

  

그거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    

 

KH

없지. 뭐 게임 퀘스트처럼 대학교 졸업장이 필요한 직업은 아니니까. 또 공무원이다 보니 월급 밀릴 일도 없고, 때 돼서 통장에 돈 찍히는 거 보면 하길 잘했다는 생각 들지. 금융 치료받는 거지.   

   

또 60살까지는 꾸준히 나오고.    

 

KH

근데 지금 우리 경찰들은 공무원 연금 혜택 못 받는다잖아. 그런 얘기도 많거든. 지금 돈 많이 벌어 놔야 된다. 경찰하고 나서 딱 하는 말이 진급을 빨리 할 건지, 재테크에 투자를 할 건지를 딱 노선이 나뉜다 하더라고. 이렇게 세 번째 길은 이도 저도 아닌, 그냥 그런 길이고. 진짜 제대로 준비하는 애들은 승진을 빨리해서 치고 올라가거나. 아니면 주식이나 이런 부동산을 공부해서 그쪽 길을 탄다든지 그렇게 둘 중에 하나로 준비를 한다더라고.     

 

돈이냐 명예냐 그거네.     


KH 

그래서 지금 보면 승진 공부하는 애도 있고 주식 공부하는 애들도 있고. 지금 열심히 다 공부하는 분위기야. 이제 나만 이도 저도 아닌 세 번째에 있긴 한데. 이게 막상 공부하려고 해도 모르겠더라고 주식... 공부한다고 되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주식을 한다고 해서 집살 돈까지 모을 수가 있을까? 이런 생각 들더라고.     


KH 

근데 지금 주식하는 인원들은 거기에 빠져서. “야 1년에 이 정도 번다. 몇 년이면 집 산다” 이런 사람도 있으니까.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면.     


KH

다 부자 됐지. 진짜 딱한 것 같아. 월급만으로는 집을 못 사니까. 다 그런데 눈을 돌리더라고. 한계도 있고. 딱 그러지 먹고살 만큼만 월급이 나온다고. 공감되거든.    

  

그러면 경찰 하면서 보람찰 때는 언제야?     


KH

제일 보람찰 때는 민원을 해결해서 “감사합니다” 소리 들으면 “수고하세요” 하고 들어올 때. 그때 하고 순찰 다닐 때, 초등학교 하교 시간 되면 애들이 우리 보면 손 흔들고 인사 하고 그러거든. 그거 받아줄 때. 그때가 제일 보람차.     


그거 말고는 조금 그런 건 있지. 진짜 막말로 상대하는 사람들이 억울하거나 범법자들을 상대하다 보니까. 그걸 잘해야 되는 것 같아. 감정 컨트롤.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거나 범법자들, 음주 운전했는데 우리한테 되려 성질내고 그런 사람들 있잖아. 그러면 확 올라오거든. 그때 잘 참아야 돼.     

 

거기서 못 참으면 민원 들어가니까.     


KH 

민원 먹고 징계받고 하면은 골치 아파지니까 꾹 참지 거기서 “선생님 진정하시고요” 이러는 거지.     


그리고 많이 우리를 마주하는 애들은 그걸 안단 말이야. 그 선을. 우리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그 선을 알아서 그 선 타면서 약 올리면 더 열 받지. 술 먹고 술주정. 술기운에 우리한테 막 하고 그러는데. 그러다가 잠깐 선 넘으면 이제 그때 바로 체포해 버리지.     


그런데 그런 걸 떠나서 확실히 재미가 있다고 해야 하나. 출퇴근 시간은 똑같지만 일어나는 일이 맨날 다르다 보니까. 또 우리가 공부를 형사 법만 하잖아. 근데 신고는 원체 다양하게 들어와. 내가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신고는 누가 하천에서 물을 떠간다는 신고가 들어왔어. 그래서 나하고 탔던 사수 형도 형사과 출신이어서 잘 안단 말이야. 둘이서 뭐 이런 걸 신고를 하냐 했는데. 딱 갔더니 공사 현장에서 쓰는 급수차들이 물을 빼고 있는 거야. 순간 뭐야 이거? 해서 우리도 핸드폰 찾아본다니까. 찾아보니까 하천법 위반이더라고. 그런 거 보면 순간 멍해진다니까. 우리가 공부한 거는 a인데. a 플러스, 마이너스, b 이런 게 신고가 들어오면.   

  

모르지.     


KH

모르면 팀장님들이나 높으신 분들한테 물어보고. 그분도 모르면 찾아보고 하면 박진감 넘쳐. 아주 재밌어.  

    

그런 얘기도 있던데. 지구대, 파출소 있으면 오늘 일이 내일로 안 넘어가서 편하다 그러더라고.  

   

KH 

아 그건 진짜. 연쇄적인 신고는 있을 수 있는데 진짜 딱 퇴근하면 끝.     

 

보통 직장 생활하는 애들 보면 ‘내일 이 일을 해야 되는데’ 하면서 퇴근하고. 퇴근하면서도 편하지가 않은 거야.      


KH 

그러니까 경찰서는 개개인의 업무 할당량이 정해져 있어. 그런데 지구대 파출소는 주요 업무가 초동 조치거든. 그래서 신고받고 나가서 조치하고 경찰서로 넘기고 뭐 이렇게 하고 또 교대하면 교대자가 하고.     


그러니까 확실히 정신적으로 일하고 삶 하고 분리가 딱 되는.    

 

KH 

그지 퇴근하면 끝이니까. 근데 가끔 전화 오기도 하는데 물어보는 거 내가 아는 선에서 대답해주면 되니까. 이건 뭐 추가 업무라고 할 수도 없지.      

 

그러면 이제 곧 30대인데, 다음 10년은 어떨 것 같아? 목표로 하는 게 있어?     


KH 

다음 10년은 승진에 목매 있겠지. 10년이면 적어도 경사는 달지 않았을까. 진짜 빠르면 경위인데. 그런데 내가 그렇게 승진에 대한 욕심이 많지가 않아.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약간 이 마인드여서.     


그냥 하루하루 만족스럽게.     


KH

또 우리가 정년이 늘어난단 말이 있잖아. 그러면 지금은 경위로 퇴직하시는 분이 되게 많아. 그런데 우리가 퇴직할 때면 정년이 늘어나면서 경감으로 퇴직을 하게 된다는 사람이 많거든. 만약 그렇게 경감 퇴직이면 나쁘지 않겠다. 흐르는 대로 살아도.     


내 외삼촌이 경찰이거든. 좀 늦게 됐긴 했는데 승진을 되게 빨리했단 말이야. 10년 사이에 경위가 되신 삼촌인데. 삼촌도 그렇게  말하시더라고. 승진하려면 윗사람들한테도 잘 보여야 되고. 그렇게 피곤하게 살 바에는 승진 너무 목매지 말고 편하게 살아라. 그런데 지금 순경들밖에 없는 세상에서 보니까 그런 게 있어. 순경들은 남들이 봤을 때 약간 하찮게 보는 게 있거든. 그래서 순경을 빨리 탈출하고 싶다 이 마인드로 승진 공부하는 애들도 있는데.     

 

이파리 3개 

(*경장, 순경은 이파리 2개)     


KH

이파리 3개는 돼야 그래도 다르다. 근데 또 3개 되면 또  

    

3개 되면 그래도 4개(경사)는 있어야지 하고 4개 있으면.     


KH 

견장에 4개 꽉 채우긴 해야지. 이렇게 될 것 같아서.     

 

네 개면 이파리는 벗어나야지.     


KH 

봉우리(경위)까지 가야지. 그렇게 승진에 목매고 싶진 않고. 지금도 만족하니까. 근데 한 10년 후면 그래도 경사는, 견장은 꽉 채우지 않았을까.      

 

그걸 목표로 하진 않지만,     


KH 

목표는 아닌데 10년 후면 그러지 않을까라는 생각? 막연하게 10년이면 결혼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결혼하고 싶어?     


KH

하고는 싶은데. 빨리 하고 싶진 않아. 10년 후면 서른여덟이잖아. 그때쯤이면 했거나 집에서 결혼 좀 하라고 달달 볶이고 있지 않을까. 그 생각하니 벌써 피곤해. 이 즐거움을 지금 누려야겠다.      


혼자의 즐거움?     


KH 

확실히 혼자 사니까. 대학교 때 서울에 가서 혼자 살았잖아. 그때는 내가 돈을 안 벌고 알바도 안 하니까. 부모님 돈을 받아쓰니까 뭘 못하겠더라고. 이거 쓰면 등골 빼먹는 거 아니야? 하면서 진짜 집에서 최소한으로 시켜 먹고. 그랬는데 지금은 내가 내 돈 주고 사니까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바로 나가서 하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바로 시켜 먹고 하니까. 확실히 혼자 사는 게 달라진 게 좋은 것 같아.     

 

소비가 위축되는 게 있어.     


KH 

진짜. 그때 받아쓰다 보니까 확실히 뭘 못하겠더라고.  

   

(세대 이야기를 하던 중)     


KH 

근데 힘든 시대인 것 같기도 해. 동생도 취업 준비를 하고 있거든. 내가 수험 기간이 한 2년이 좀 안 되는데. 수험 공부하면서 되게 자존감이 떨어졌거든. 시험 한 번 떨어지고 나면... 세상 좀 진짜... 시험 떨어져서 자살하는 애들 이해도 가고. 이래서 자살하는구나... 또 시험 끝나고 묵묵히 짐 싸서 도서관 왔다 갔다 했는데. 명절에 집 가면 그게 또 그렇게 또.     

 

눈치 보이고.     


KH 

그러니까 사촌 동생들은 아직 이거를 경험을 안 하니까. 왜 형 아직도 공부하고 있냐고 그러면은...     

 

동생들 입장에서는 아직 잘 모르니까.      


KH 

그것도 그렇고. 내가 나름 공부 열심히 했고 인서울 했고 그러니까 그 기대치가 있는 거야. 사촌 동생들의 기대치라 해야 되나. 형 공부 잘하지 않았어? 뭐라고 말도 못 하고 화도 못 내겠고. 맞는 말이니까. 또 사촌 동생 한 명이 공고를 가서 취업이 잘 됐어. 그런 애 보면, 사촌 동생이 그렇게 잘 되니까. 잘 된 일이긴 한데 마음이 혼자 급해지는 거지.     

 

나보다 어린애가 그러니까.     


KH 

한 3, 4살 어린 친구인데 어디 기업 돼서 놀러 다니고, 그런 거 보면 혼자 촉박해져. 큰일 났네. 빨리 해야겠다 하는데 또 막상 공부를 하면, 책상에 앉으면 그게 안 돼요.      

 

안 돼 이게.     


KH

진짜. 아까 돌아간다는 얘기 했었잖아. 수험 시작으로 돌아갔으면 진짜 공부 열심히 했었을 거 같아. 지금 마인드면. 그때 열심히 해야 됐는데 그때 노느라고.     

 

지금 됐으니까 된 거지.     


KH

이게 지금 와서 보면 그렇지. 그때 모습을 지금 영상으로 보고 있으면 진짜 뒤통수 때리고 싶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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