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 Jan 08. 2022

돌 키우기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

난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키우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앞에서 500원에 팔던 노란 병아리를 집에 사 오기도 하고, 아파트 뒤편에 버려진 참새 새끼를 데려오기도 했다. 우리 집 어항 속에는 늘 금붕어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고 베란다에는 엄마가 사 온 이름 모를 화초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나는 그렇게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도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보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한 번씩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학교 앞 500원에 팔던 병아리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병아리를 보기 위해 집으로 뛰어간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병아리와 산책을 하는 것도, 같이 노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린 동심을 가졌던 나는 그저 바라 보기만 해도 즐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와서, 작은 박스 안에서 살고 있던 병아리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내 눈앞에 놓인 광경은 두 다리를 쭈ㅡ욱 뻗고 싸늘하게 죽어있는 병아리였다. 나는 황급히 "아리야! 아리야!"라고 외치며 병아리를 손가락으로 눌러보았지만 이미 온기는 온데간데 사라져 버리고 차갑게 식어있었다. 그날 나는 엄마와 함께 뒷산 어느 곳에 병아리를 묻어주었다. 참새 새끼도 집에 온 지 이틀 만에 죽어버렸고 언젠가부터 어항 속을 헤엄치지 못하고 늘 둥둥 떠다니던 그 금붕어도, 그 금붕어가 죽을 때까지 그게 병에 걸려서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떠나보냈다. 그 당시의 어렸었던 나는 점차 이별이 두려워 만남을 꺼리게 되었다.




지금 우리 집엔 9살 몰티즈가 한 마리 있다. 재롱도 많이 부리고 볼 때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다. 하지만 한 번씩 아프거나, 나이가 들어서 몸에 검은 반점이 생기는 걸 보면 나에겐 이별의 아픔이 한 번씩 미리 찾아오곤 한다. 이별의 아픔은 이별하고 느껴도 충분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나는 감정에 있어서 많이 예민했던 것 같다. 내가 우리 집 강아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오늘이 영원할 것처럼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사랑을 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 집 강아지 '밀키'





그래서인지 나는 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을 원했다. 설령 변하더라도 내가 살아있을 때 까지는 절대로 변하지 않을 무언가. 그런 무언가가 있다면 나는 한시름 놓고 아무런 걱정 없이 많은 의미들을 부여하기도 하고,

늘 즐거운 마음으로 다가갈 것만 같았다. 이런 추상적인 상상을 늘 가슴속에 품고 다니던 나에게 독특한 정보가 흘러들어 왔다. 바로 애완돌, 현재 '펫 스톤(반려 석)'이라고 불리는 작은 돌멩이였다. 이 펫 스톤의 의미

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애완 돌. 애완동물, 화초 등을 키우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키우고 싶은 쓸쓸한 사람들을 위해 탄생한 것이었다. 애완 돌 분양비는 만원 언저리. 구글에 검색해보면 이곳

저곳에서 분양해주고 있다.



최근에 'GS25'에서 펫 스톤을 팔기 시작하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당연히 부정적인 반응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중들은 '돌 팔이네' , '저걸 누가 돈 주고 사냐' , '진짜 리얼 돌의 등장' 등등 긍정적인 반응은

잘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실 맞는 말 이기도 하다. 길거리에 널린 게 돌들인데, 그걸 비싼 돈 주고 판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도 있기는 하다. 나 또한 펫 스톤에 대해서 관심은 있었지만 그 돌을 굳이 돈 주고 사야 할 필요는 잘 느끼지 못했다. 그야 우리 집에는 화초가 많고, 그곳엔 크고 작은 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의미가 부여되고, 그 의미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 점 깊어지면 아무리 작은 돌이라도 의미를 부여한 사람에겐 대체 불가능한 동료가 된다. 어쩌면 나는 펫 스톤을 키우는 사람들은 반려 동물, 화초를 키우는 사람보다 "더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에, 그리고 소중한 생명을 막무가내로 데려와서 아무렇게 키워선 안된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그 생명들을 위해 결정한 차선책이 아닐까?




물론 나는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에 펫 스톤을 키우려는 목적 보단,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을 원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펫 스톤을 분양받기로 결정했다. 화초 위에 얹어진 돌들을 데려오는 방법도 있기는 했지만, 나는 그 돌들은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이루고 있을 것만 같아서 내버려 두고 '펫 스톤'이라는 의미를 가진 돌을 분양받기로 선택한 것이다. 나는 그 돌에게 꾸준히 의미를 불어넣어 주고 같이 살아가다가, 언젠가 내가 죽게 되면 꼭 나의 흔적 옆에 놓아두고 싶다. 그 돌은 영원히, 정말 영원히 나의 의미를 담고 세상에 남아있을 것 같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지루한 삶에서 쓸 수 있는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