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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바나의 첫 드러머

by 김성대
난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지만 커트와 크리스가 하는 일에 빠져들었다. 그들 음악을 연주하는 게 너무 좋았다.

데이브 포스터Dave Foster


88년 봄에 본 블리스(Bliss, 너바나의 전신)는 형편없었다. 느슨하고 시끄러웠다. 당시 드러머였던 데이브 포스터의 연주 실력도 그저 그랬는데, 그는 존 본햄 풍 필인을 많이 쳤다.

채드 채닝


1988년 초 데일 크로버는 멜빈스의 봉합을 위해 버즈 오스본과 다시 뭉쳐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떠나면서 그는 자기 자리에 그레이스 하버에 살던 데이브 포스터를 추천했다. 포스터는 과거 멜빈스 위성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던 인물로, 크로버의 눈엔 훌륭한 드러머이기도 했다. 커트와 크리스 입장에선 “마력을 증강한” 픽업트럭과 콧수염을 가진 포스터가 너무 주류 느낌에 마초적이라는 게 살짝 걸렸지만 일단 받아들였다. “커트와 크리스는 지난 연주법들은 싹 다 잊고 무조건 세게 치라고만 했다.” 포스터가 말한 ‘지난 연주법’이란 고등학교 때 쳤던 재즈 드럼이었다.


1988년 너바나의 첫 라인업. 왼쪽에 야구 모자를 거꾸로 쓰고 앉은 사람이 데이브 포스터다. 사진=Rich Hansen.


포스터의 원래 드럼 세트는 더블 베이스 드럼 포함 12피스12 Piece였다. 커트는 부피를 좀 줄이자고 했다. 결국 포스터의 드럼 세트는 6피스로 살을 뺀다. 그들은 터코마 동물원 근처 펄 애비뉴Pearl Avenue에 있는 크리스와 셸리의 집 앞방에서 리허설을 했다. 커트는 자신의 닷선 자동차로 포스터를 거기까지 태워 와 연습하고, 밤 또는 새벽에 드러머를 다시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몇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포스터의 데뷔 무대는 히피, 펑커punker들로 가득했던 올림피아 내 하우스 파티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스톤 워시 청바지에 콧수염을 기른 데이브의 차림새를 두고 올림피아 대학생들이 비아냥거린 것이다. “애버딘에서 온 드러머 차림새 좀 봐.” 커트는 뜨끔했다. 포스터의 모습은 2년 전 자신의 옷차림과 닮았기 때문이다. 커트는 누구에게도 '애버딘 촌놈'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유행에 뒤떨어지지 말아야 해, 데이브.” 커트는 포스터에게 조언했다.


포스터는 커트와 크리스, 관객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멱살을 잡고 벽에 던지곤 했어요. 사람들은 그를 '분노 장애 데이브'라고 불렀죠. 끝내 법적 문제가 생겼고, 포스터는 분노 관리 워크숍에 가야 했어요.

슬림 문


포스터는 분노 조절에 서툴렀다. 그는 화가 나면 싸움을 벌였고 사람들에게 자비 없는 폭력을 가했다. 그의 분노는 여자 친구가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정점을 찍었다. “뽀빠이 같은 근육질”이던 포스터는 바람피운 상대 남자를 흠씬 두들겨 팼다. 불행히도 피해자는 인근 코스모폴리스 시장의 아들. 폭행죄로 1년형을 선고받은 포스터는 2주간 복역 후 치료비 2천 달러를 내고 출소했다. 자유를 얻은 포스터는 커트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 다시 연습을 시작할 수 있는지 물었다. 커트는 새로운 곡을 쓰고 있으니 다시 연락하겠다고만 했다. 포스터는 자기 드럼 세트에 애런 버카드가 앉아 있으리라곤 꿈에도 몰랐을 터다.


그랬다. 팀을 나갔던 버카드가 다시 왔다. 그러나 버카드의 복귀는 짧았다. 포스터를 가로막은 게 주먹이었다면, 버카드는 술에 발목을 잡혔다. 연습이 끝난 어느 날 밤, 커트와 버카드는 스패너웨이Spanaway에 있는 버카드 아버지의 트레일러 집에서 병을 기울였다. 술이 떨어졌고, 버카드는 맥주를 더 사 오겠다며 커트의 차를 빌렸다. 하지만 버카드는 주류점 대신 주점을 찾았다. 술을 사러 가다 술을 마신 것이다. 친구들과 두 시간을 마시고 차를 몰아 트레일러로 돌아가던 버카드는 끝내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다. 버카드를 잡은 사람은 스프링스틴Springsteen이라는 흑인 경찰관이었다. "이봐, 브루스! 무슨 일이야, 브루스!"경찰의 성이 음악가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같아서 던진 농담이다 술에 취해 지껄이던 버카드는 급기야 "X 같은 깜둥이!"라는 막말까지 퍼부으며 빌려간 커트 차를 압수당한다.


이런 사달이 났음에도 커트는 다음 날 버카드에게 전화를 걸어 연습하러 오라며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버카드는 숙취가 심해 연주를 할 수 없다 말했고 커트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버카드는 그렇게 커트의 인간관계에서 지워진다. "그들과 함께 연주하는 게 정말 좋았어요. 어리고 멍청했던 탓에 일을 망쳤죠." 그날 밤 술집에 가지만 않았어도 백만장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버카드. "로또의 여섯 번호 중 다섯 번째까지 맞은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후회하진 않아요. 피트 베스트Pete Best, 비틀스 초기 드러머처럼 회자되겠죠."

이후 아티카Attica라는 스피드 메탈 밴드에서 연주한 버카드는 아제라드의 너바나 평전이 나올 당시1993년 직장에서 해고되고 실업 수당을 받으며 전기 수리 일을 했다. 면허 취소 상태에서 운전하다 걸린 뒤 벌금을 내지 않아 3일간 감옥에 갇힌 일은 그가 술을 끊어야 한다는 세찬 신호였다.


한편, 포스터는 여전히 자신이 밴드 멤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해고 사실을 안 건 그해 7월 30일, 좋은 공연이 있나 하고 집어든 『더 로켓』을 보고서였다. 거기엔 그날 밤 너바나가 시애틀의 스퀴드 로우Squid Row라는 곳에서 스킨 야드 오프닝 무대에 선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포스터는 곧장 커트에게 연락했고, 전화를 받은 트레이시가 대충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포스터는 크리스에게도 전화를 걸었는데, 크리스는 다른 드러머가 있다고만 했다. "정말 열받았어요." 드럼이 생업이었던 포스터는 당시 심정을, 마치 다른 남자와 침대에 있는 여자 친구를 목격한 기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그를 긴장하게 만든 것 같아요. 포스터의 비트는 긴장하면 수그러들곤 했죠." 평소 포스터를 살짝 두려워했다는 커트에겐 이전 드러머를 직접 해고할 배짱이 없었다. 그는 해고 편지를 일기장에 쓰기만 하고 보내진 않았다. 흥미로운 건 채드 채닝이 언급되고 있는 점이다.


데이브, 밴드는 적어도 일주일에 다섯 번은 연습을 해야 해. 우린 공연 때마다 불확실한 상황을 겪는데 지쳤어. 두 가지 주된 이유는 크리스와 그의 일, 그리고 너와 네가 사는 지역 때문이야. 사실 밴드 해체는 거짓말이고, 다른 드러머가 있어. 이름은 채드. 터코마 출신인 채드는 (너와 달리) 매일 밤 연습하러 올 수 있대.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그와 통한다는 점이야.


데이브는 자기보다 앞서 너바나에 몸담았던 또 다른 데이브를 빼먹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소감을 밝혔다.


2014년 너바나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을 때 데이브 그롤은 자신에 앞서 너바나(또는 그 전신)에 몸담았던 드러머들을 한 명씩 호명했다. 애런 버카드, 데일 크로버, 채드 채닝, 그리고 머드허니의 댄 피터스Dan Peters. 데이브는 그날 자신과 이름이 같았던 포스터를 빼먹고 만다. 비록 커트의 팀에서 이렇다 할 업적은 남기지 못했지만 그는 엄연히 '너바나의 첫 드러머'였는데도 말이다. 88년 3월 19일 터코마의 커뮤니티 월드 극장에서 올림피아 밴드 러시Lush와 함께 무대에 올랐을 때 드럼엔 버카드도 크로버도 채드도 아닌 포스터가 앉아 있었다. 이날 밴드는 너바나라는 이름을 처음 쓴다. “밴드의 최종 이름은 너바나야.” 데일 크로버에게 보낸 편지에 커트는 썼다. 그는 불교신자가 아니었다는 말이 있지만, 올림피아에서 일본 불교 종파인 니치렌 쇼슈日蓮正宗 모임에 다닌 기록이 있다. 여기서 너바나라는 이름이 나왔으리란 추측이다. 무엇보다 너바나라는 이름은 펑크에 대한 커트의 지론과 통했다.


펑크는 음악적 자유다. 원하는 것을 말하고 행동하고, 연주한다. 사전에 따르면 너바나란 고통과 괴로움, 외부 세계로부터 자유를 뜻하는데, 내가 펑크 록에 대해 내린 정의와 꽤 비슷하다.


60년대 영국 사이키델릭 록 밴드가 같은 이름을 썼다는 건 나중에 소송을 겪으며 알게 될 일. 커트는 이후 너바나라는 이름에 대해 “너무 난해하고 진지하다”는 이유로 내켜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역시, 변덕이 심했던 커트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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