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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라 'Vulgar Display of Power'

by 김성대


가만 보면 가짜 뉴스라는 것도 간단한 검색 한 번 해보는 게 귀찮아 소문을 사실로 믿는 대중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판테라 6집 표지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진 속 남자는 판테라 팬이다, 그래서 돈도 받지 않고 찍었다, 저 사진을 찍느라 실제 엄청 맞았다......


저 '펀치' 사진은 사진작가 브래드 가이스Brad Guice가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으로,

주먹에 나가떨어지며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는 LA에서 온 장발 모델 션 크로스Sean Cross였다.

당연히 션은 저 의문의 주먹에 실제 맞지 않았다.

그저 브래드가 연출 상 션을 밀치는 과정에서 잡힌 모습이었고, 거기에 약간의 컴퓨터 효과를 가미한 결과물일 뿐이다.

당시 브래드는 '움직임이 느껴지는 사진'을 연구 중이었는데,

판테라 측은 그 안에서 느껴지는 흐릿하면서 부드러운 '드라마'를 탐낸 듯 보인다.



6집 《Vulgar Display of Power》는 판테라의 진수였다.

이 앨범을 처음 들은 많은 이가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 같은데,

나는 <Mouth for War>가 시작되는 순간 사진 속 션 크로스가 되었다.

당연히 저 무자비한 털북숭이 주먹은 판테라의 음악이었고.

5집 《Cowboys from Hell》로 메탈 신scene의 공기를 바꾼 이들은

더 옹골찬 사운드로 무장한 6집으로 마침내 세계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앨범 녹음 도중 AC/DC, 메탈리카, 블랙 크로우스와 함께 선 모스크바 '몬스터스 오브 록' 페스티벌 무대는 그 세계 정복을 이미지로 펼쳐 보였다.


앨범 제목에 관해선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한 인터뷰어가 판테라의 라이브를 표현할 단어를 물어왔을 때 기타리스트 다임백 대럴5집까지 '다이아몬드'를 쓰던 대럴은 이 앨범부터 '다임백'을 쓰기 시작했다. 한동안 '로커Rocker'를 쓴 베이시스트 렉스도 이때부터 '브라운'으로 바꾼다이 답한 게 'Vulgar천박한, 저속한, 상스러운'였다는 얘기가 하나,

또 하나는 1973년 영화 『엑소시스트』 대사 한 구절을 인용했다는 것이다.

아마 둘 다 맞는 얘기일 거다.


혹자의 말대로 이 작품은 '그루브 메탈' 혹은 '모던 메탈' 왕좌에 오를 판테라 사운드의 모든 것을 담은 동시에,

이후 메탈 신의 흐름을 일거에 바꿀 저들의 힘power과 존재감으로 가득 찬 명반이다.

<Mouth for War>부터 <Rise>까지 초반 여섯 트랙은 '제5의 멤버'로 불린 프로듀서 테리 데이트가 판테라 사운드에 선물한 펀치·밀도감의 완벽한 구현으로,

두 번째 곡 <A New Level>의 메인 기타 리프는 놀랍게도 팝스타 마돈나가 자신의 투어Sticky & Sweet Tour에서 기타로 직접 연주한 적이 있다.

아마도 당시 투어 기타리스트가 프롱Prong 출신 몬테 핏맨Monte Pitman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Sticky & Sweet Tour'에서 마돈나가 <Hung Up> 마지막에 <A New Level> 기타 리프를 접붙이고 있다.


<A New Level> 다음 곡 <Walk>는 내가 대학교 새내기 때 친구들과 합주한 곡이기도 한데,나는 드럼을 쳤다

단순하면서도 단호한 획기적 기타 리프를 앞세운 이 곡은 메탈리카의 블랙 앨범에 필적하는,

"빠르지 않은 헤비메탈의 쿨함"을 개척한 곡으로 역사에 남았다.

앞서 1~6번 트랙까지만 좋다고 말한 것 같아 노파심에 덧붙인다.

뒤에 있는 <Regular People (Conceit)>와 <Hollow>도 놓치지 말길.

특히 <This Love>와 구성이 닮은 <Hollow>는

판테라 음악이 품은 '서정적 폭력성'을 가감 없이 토해내는 명곡이므로 꼭 들어보자.

한때 한국에서 유통된 괴작 《Vulgar Display of Cowboys》판테라 5, 6집을 어설프게 짜깁기 한 편집반에 이 곡이 빠진 걸 알고 좌절한 일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작가 필립 로스는 음악이 "고요함을 현실화시키는 존재"라고 썼지만, 판테라는 음악을 통해 분노를 현실로 데려온다.

다만 <Mouth for War>의 노랫말처럼

그 화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끈다는 전제에서다.

표지 사진의 일그러진 션 크로스 얼굴은 그래서 분노의 은유일 수도 있다.

우린 각자 주먹으로 저 화를 날려 보내는 것이다.

판테라 음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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