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유 'LILAC'

by 김성대


46회 청룡영화상은 SNS에서 적잖이 뭇매를 맞았다.

뭇매의 핵심은 해당 시상식이 감독과 배우만의 잔치라는 데 있는 것 같았다.

영화는 분명 종합 예술이고 집단 예술임에도,

결과물이 거머쥔 영광은 거의 감독과 배우들만 누리는 모양새였다는 얘기다.


마흔여섯 번째 청룡영화상 개막 이틀 전인 지난 11월 17일,

톰 크루즈가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다. 저 관록의 유명 배우가 첫 오스카 트로피라니.

축하에 앞서 그가 '무관'이었다는 게 더 놀라운 순간이었다. 톰은 상을 받으며 이런 말을 했다.


영화는 한 사람의 연기나 목소리로 만들어지는 게 아닌, 각 분야 전문가/예술가들이 함께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그런 뒤 지난 세월 자기와 일했던 모든 사람들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해 상의 영광을 그들에게 돌렸다.

톰의 이 감동적인 수상 퍼포먼스는 감독, 배우들을 제외한 수많은 스태프들이 은근히 소외된 청룡영화상과 비교되며 요 며칠 국내 영화계 논쟁의 중심에 섰다.


음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곡 하나, 앨범 한 장을 음악가 혼자 만들어내는 경우는 드물다.

톰의 말대로 거기에도 각 분야 전문가들이 붙는다.

제도권 안에서 우리 귀에 도착하는 음악은 보통 그렇게 완성, 포장, 유통된다.


음악에 관여한 저들 존재를 우린 아티스트 측이 밝힌 크레디트로 알 수 있다.

오늘 들은 아이유 5집 《Lilac》엔 그들 이름이 꼼꼼히 적혀 있었다.

누가 작사/작곡/편곡을 했고 연주를 했으며, 믹싱과 마스터링을 했는지,

스타일링과 헤어/메이크업은 또 누구 손을 거쳤는지, 뮤직비디오엔 어떤 스태프들이 참여했는지,

심지어 속지 인쇄Print 업체까지 아이유 5집 속지엔 조목조목 나와 있다.


나는 작품 하나에 힘을 쏟은 사람들을 알리는 이 행위를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편인데,

비록 의무는 아니어도 함께 고생한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 예의라고 보기 때문이다.

영화 만든 사람들을 돌아보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시작할 때부터 불을 켜고 자리를 뜨는

한국 극장의 무례한 관행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흔히 닮은 역할로 여기는 음악 프로듀서와 영화감독의 가장 큰 차이는 창작의 주체 면에서 불거진다.

즉 영화감독은 자기가 연출한 그 영화를 자신의 작품이라 말할 수 있지만,

프로듀서는 그 음반을 자기 것이라고만 하기엔 애매한 위치에 있다.

물론 아티스트와 함께 곡을 쓰거나 연주까지 돕는 프로듀서도 있지만 많지 않고,

보통 음악 프로듀서라고 하면 뮤지션이 의도하는 예술 세계를 어떻게 구현해 낼지 함께 방법을 고민하고 환경을 만들어주며,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가령 릭 루빈 같은 세계적인 프로듀서는 음악가와 스태프가 다 만들어 놓은 음악을 두고 좋다, 별로다를 가늠하는 '황금 귀' 하나만 가지고도 자신의 몸값을 백만 달러 단위로 제시할 수 있다.

일반 대중은 릭 루빈의 소극적 역할을 영화감독과 같다고 여기진 않는다.


《Lilac》 크레디트를 보면 프로듀서와 메인 작사가가 아이유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이유가 가사DEAN, 이찬혁이 함께 작사한 <돌림노래>와 <어푸 (Ahpuh)>를 뺀 모든 노랫말을 직접 썼다와 프로듀서를 맡았다는 건, 가수가 앨범에 담긴 음악을 진정 자기 것이라 말하기 위해선 저 두 포지션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걸 그가 안다는 얘기다.


음반을 들으며, 또 그 안의 속지를 보며 나는 아이유가 참 영리한 음악가라는 걸 새삼 느꼈다.

그는 자기를 내세워야 할 지점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는 상황을 함께 인식할 줄 아는 아티스트다.

일이라는 건 일을 하는 주체의 '예의 바른 주도'가 있을 때 만족스러운 결과에 이르게 마련.


《Lilac》은 19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음반' 상과 2021년 멜론뮤직어워드MMA '올해의 앨범' 상을 받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keyword
월, 목, 일 연재
이전 06화판테라 'Vulgar Display of 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