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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의 블루스 프로젝트와 만성 복통

by 김성대
커트는 평소 친분이 있던 스크리밍 트리스의 마크 라네건과 뭔가를 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나타나서는 한다는 말이, 몇 곡 같이 쓰긴 했는데 녹음을 안 해서 다 잊어버렸다는 거다. 그래서 대신 레드 벨리 곡들을 해볼까 한다며 베이스는 크리스, 드럼은 마크 피커렐이 맡을 거랬다. 그건 즉흥적인 세션이었다.

잭 엔디노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는 마르 라네건의 솔로 앨범에 일렉트릭 버전으로 먼저 실렸다.

90년대를 코앞에 두고 커트는 마크 라네건스크리밍 트리스과 사이드 프로젝트를 모의했다. 스크리밍 트리스는 엘렌스버그Ellensburg 구치소에서 만난 멤버들이 결성한 사이키델릭 노이즈 록 밴드로, 커트는 “북서부 최고의 니코틴 목소리”를 가진 프런트맨 마크의 간결한 세계관, 음악 취향에 큰 영향을 받은 터였다.

라이트닝 홉킨스Lightnin’ Hopkins,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 같은 블루스 전설들을 좋아한 마크는 커트처럼 레드 벨리의 광팬이기도 했다. 잭 엔디노가 얘기한 대로 당초 프로젝트에서 ‘레드 벨리 카피’로 주제를 바꾼 둘은 너바나의 베이시스트와 스크리밍 트리스의 드러머를 지원군으로 불러들였다. 마크 피커렐은 어쩌면 영국의 슈퍼 밴드 크림Cream의 노스웨스트 버전으로 성공할 수도 있을 이 기획에 흥분했다. 하지만 피커렐의 바람대로 해나가기에 이 팀에겐 시간이 별로 없었다. 마침 스크리밍 트리스가 메이저 레이블 에픽Epic Records의 러브콜을 받을 무렵이었던 데다, 너바나는 정식 투어를 앞두고 있었다. 급조된 밴드는 89년 8월 말, 여섯 개 정도 아이디어를 갖고 엔디노의 레시프로컬 스튜디오로 가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Grey Goose>, <Ain’t a Shame>, <They Hung Him on a Cross>를 녹음하고 믹싱 했다. “자, 그럼 릴reel에 뭐라고 쓸까?” 작업을 끝내고 누군가찰스와 아제라드의 책에선 피커렐로 명시돼 있다 말했고, “주리The Jury, 배심원라고 쓰자!” 또 다른 누군가가 답했다. 그러곤 모두가 웃었다. 알려진 바로 커트와 크리스는 너바나의 대표곡 제목이 될 리튬Lithium을 제안하려 했다고 한다.


주리에서 메인 보컬은 마크였다. 그래서였는지 이때 녹음한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헤비 버전도 마크의 솔로 앨범 《The Winding Sheet》에 실린다. 주리에서 기타에 집중한백보컬도 맡긴 했다 커트는 <Ain’t It a Shame> 만큼은 본인이 직접 불렀는데, 저 두 곡은 따로 싱글로 낼 예정이었지만 끝내 무산되었다. 빠르고 헤비하게 각색해 부른 <Ain’t It a Shame>은 커트 사후 컴필레이션 앨범 《With the Lights Out》에 수록됐고, 조나단은 이 곡을 “커트 최고의 보컬 퍼포먼스 중 하나”라고 했다. 딜런 칼슨은 같은 컴필레이션에 실릴 묵직한 블루스 애가哀歌, dirge-blues <Grey Goose>를 최고 곡으로 기억했다. “마치 영국의 위대한 블루스 록 밴드가 발돋움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정말 놀라웠다.” 하지만 커트의 야심 찬 비공식 블루스 밴드 주리는 얼마 가지 못했다. 커트는 언젠가 다시 블루스 밴드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러기엔 그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조나단 폰맨이 극찬한 <Ain't It a Shame>은 커트의 블루스 프로젝트가 제대로 펼쳐졌다면 매우 흥미로웠으리란 걸 들려준다.


위胃는 두려움과 공포의 전율을 느끼게 하는 곳 (...) 즐거움의 애무를 받는 곳

루크레티우스, 고대 로마의 시인·철학자


나는 (위장병으로) 늘 고통스러웠고, 그것이 우리 음악에 분노를 더했다. 어떤 면에선 감사한 일이다.

커트 코베인이 작가 존 새비지Jon Savage에게 한 말


89년 8월 중순, 커트는 위장병으로 처음 병원을 찾았다. 단발 프로젝트 주리를 뒤로 하고 나선 투어 중미니애폴리스 복통으로 쓰러진 것이다. 하나 정밀 검사를 해도 뚜렷한 원인은 발견되지 않았다. “세상에, 토할 것도 없는데 계속 토하고 있었어요. 배가 너무 아팠죠. 병원에 갔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친구의 심각한 상태를 본 크리스는 겁에 질렸다.


커트는 2년 전 처음으로 끔찍하고 날카로운 배 통증을 겪었다. 당사자의 말은 그 아픔의 정도를 가늠케 한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복통이었어요. 주로 식사할 때 그랬는데, 타는 듯 메스껍고 구역질이 났죠. 마치 뱃속에 심장이 있는 것처럼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고, 온통 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질 정도로 아팠어요.” 찰스가 쓴 책에 따르면 커트의 위통은 간헐적이었고 밤새 토하는 날도 많았다. 트레이시에겐 남자 친구의 증상이 의사들 경고를 무시한 채 야채는 무조건 거른 대신, 기름지고 튀긴 음식만 먹은 탓으로 보였다.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움이나 고통, 분노에 사로잡힌 적이 있나요?”

1993년 가을, 평론가 데이비드 프리크의 질문에 커트는 이렇게 답했다.

“위장에 문제가 있었던 5년 동안은 그랬어요. 매일 자살하고 싶었죠. (실제 자살에) 여러 번 가까이 가기도 했습니다.”

커트는 1년 전인 92년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음식을 먹다 엄청난 통증을 느끼는데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 했어요 ... 공연이 끝나면 억지로라도 밥을 먹어야 하는데, 호텔 방에서 한 입 먹고 나면 토하고 물을 마신 뒤 또 토하곤 했죠. 92년 유럽 투어 중에 자살 충동이 일어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진 다시는 투어를 않겠다고 말한 기억이 나요. 머리를 날려버리고 싶을 정도로 지친 상태였고 심리적으로 완전히 망가진, 신경질적인 괴물이 된 거예요.” 그렇게 만성 위통은 커트를 “매 맞은 젖은 고양이”처럼 만들곤 했다. 죽음의 그늘이 조금씩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With the Lights Out》 속지에 있는 공식 기록에 따르면 너바나는 89년 9월찰스의 책엔 8월 첫째 주로 나와 있다에 시애틀 뮤직 소스Music Source에서 녹음을 했다. 프로듀서는 스티브 피스크Steve Fisk. 스티브는 싱글 두 장<Snake Attack>, <Corporate Food>을 발매한 짧은 프로젝트 어노니머스Anonymous 멤버이자 에버그린 주립대학의 학생, 올림피아의 KAOS-FM 초기 DJ였으며, 잡지 『OP』의 정기 기고자였기도 하다.


《Blew》는 너바나의 유럽 투어 프로모션용으로 만든 EP였다.


《Blew》에 실은 <Stain>과 <Been a Son>은 나중 《Incesticide》에 다시 수록된다.


스스로 음악가이기도 했던 스티브는 1980년대 중반부터 펠 멜Pell Mell, 피전헤드Pigeonhed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역시 그의 커리어는 스크리밍 트리스, 비트 해프닝, 사운드가든, 너바나 등 유무명의 수백 팀과 작업하며 쌓은 음반 프로듀서로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물을 남겼다.


그런 스티브와 함께 유럽 투어 프로모션용으로 기획한 '뮤직 소스' 세션에서 너바나는 <Stain>, <Been a Son>을 녹음해 기존 곡들인 <Love Buzz>, <Blew>에 곁들여 EP로 만들었다. 애초 작업 타이틀은 미국 원주민 집단을 가리키는 ‘위네바고Winnebago’였지만, 결국 데뷔 앨범 첫 번째 트랙 이름을 딴 《Blew》로 결정했다. 커트와 멤버들은 저 곡들 외에도 <Token Eastern Song>과 <Polly>일렉트릭 버전이었을 것이다, <Even in His Youth>도 녹음했다. <Token Eastern Song>은 작가들이 집필 때 겪는 슬럼프에 관한 노래였는데, 찰스의 책에 따르면 커트가 엄마 웬디에게 부치지 않은 생일 편지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에선 밴드가 종종 동양적인 분위기를 선호한다는 많은 비평가들의 지적에 대한 커트의 반응이라는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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