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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Sep 28. 2016

'인간' 지미 헨드릭스의 모든 것

<지미 헨드릭스 : 록스타의 삶>

기타리스트에겐 ‘속도’와 ‘테크닉’이 전부인줄로만 알았던 철없는 리스너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블루스와 재즈를 덜 접해 생긴 편향된 취향. 그 치명적인 맹점은 한 위대한 블루스 록 기타리스트를 남들보다 조금 늦게 받아들이도록 했는데 그가 바로 지미 헨드릭스였다. 록 음악을 이 잡듯 찾아듣던 10대 시절. 내가 접하는 록 기타리스트들이 하나 같이 지미 헨드릭스를 언급하고 그의 영향력을 말하며 존경을 표할 때 지미를 향한 내 첫 관심은 시작되었다. 섹시한 ‘foxy lady’와 감미로운 ‘little wing’에 차례로 무너지며 나는 조금씩 블루스 록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앨버트 킹, 레드 제플린, 올맨 브라더스 밴드는 모두 헨드릭스 이후 내 ‘듣기 목록’에 추가된 것들이다. 따지고 보면 나에게 처음으로 블루스를 들려준 사람은 바로 지미 헨드릭스였던 셈이다.

잡지나 라이너노트 외엔 음악 정보를 접할 곳이 거의 없던 때 지미 헨드릭스의 신격화는 사실 내가 봐도 지나쳐 보였다. 그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기타를 연주할 수 있었을 것만 같았고 신이 내린 재능을 넘어 지미 자신이 이미 신이었다. 위대한 건 알겠는데 세간의 그 맹목적인 칭찬들은 젊어도 너무 젊은 27살에 지미가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일어난 호들갑은 아니었는지 나는 의심스러웠다. 그만큼 지미는 건들 수 없는, 건드려서는 안 될 성역이었다. 기타 하면 지미 헨드릭스였고 지미 헨드릭스가 곧 기타였다. 학창시절 나에게 지미 헨드릭스는 그런 존재로 각인되었다.

이 책은 10대 때부터 ‘purple haze’와 ‘the wind cries mary’에 빠져 지냈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Electric Ladyland’를 신물 나게 듣게 한 찰스 R. 크로스가 4년간 325회에 걸친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지미 헨드릭스 전기이다.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지미를 신격화 하지 않고 ‘인간 지미 헨드릭스' 일대기를 세부적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을 빌면 그것은 숨겨진 암호를 해독하고 후광을 등에 업은 ‘기타의 신’ 지미 헨드릭스의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기타를 잘 쳤던 게 아니라 10대 때 잡은 ‘빗자루 에어 기타’를 거쳐 겨우 장만한 싸구려 일렉트릭 기타를 애지중지, 심지어 극장에까지 들고 가 연습하는 열정으로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공격적인 노력으로 유예될 뻔한 재능을 살려낸 것이다. 크로스는 그런 지미가 블루스를 연주한 것이 아닌 블루스를 살아냈다고 썼는데, 나는 그 말을 조금 비틀어 지미가 기타를 연주한 것이 아닌 스스로 기타가 되었다고 쓰고 싶다. 헨드릭스가 ‘천재’를 넘어 ‘신’이라 불리는 맥락은 대략 이런 식으로 파악돼 나가야 맞다는 게 이 책의 입장이다.

이미 <천국보다 무거운:커트 코베인의 전기>로 ASCAP(미국 작곡가, 작가, 출판인 협회) ‘티모시 화이트 상’을 받아 뮤지션 전기 작가로서 명성을 떨친 크로스의 필력은 27장(지미가 사망한 나이와 같다) 챕터에 역자 후기 포함 도합 611쪽 책 분량에 더욱 무게감을 실어주었다. 지미의 음악 유전자 속에 가장 깊숙이 박혀 있는 두 사람 비비 킹과 밥 딜런, 선배로선 흠모했지만 비즈니스 파트너로선 갈등이 불가피했던 리틀 리차드, 지미의 성공을 함께 견인한 노엘 레딩과 미치 미첼, 군대에서부터 ‘밴드 오브 집시’까지 이어진 빌리 콕스와 우정, 지미에겐 애증의 존재였을 아버지 알 헨드릭스와 변변한 비석 하나 없는 무덤에서 아들의 성공을 지켜본 어머니 루실, 죽은 형의 재산을 둘러싸고 진흙탕 법정 싸움을 벌여야 했던 레온의 비극, 그리고 지미의 첫 여자 친구 카르멘 고우디부터 독일제 수면제 베스파락스 아홉 알을 먹고 사경을 헤매던 지미 옆을 지킨 모니카 다네만까지. 크로스의 글은 당시 지미를 둘러싼 사정과 상황을 끈질기게 파헤쳐 낱낱이 우리 앞에 공개한다. 거기엔 마약에 취한 호색한 지미 헨드릭스도 물론 있다. 이 책 속에 자비나 미화란 없다고 보면 된다.

한 사람의 경험과 기억을 따라 가는 자서전보다 그 사람을 지켜봤거나 겪어본 이들의 말과 추억에 기대어 가는 전기가 더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게다가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 분위기(인종 차별과 베트남 전쟁)와 유행했던 문화(히피와 로큰롤)까지 어우른다는 점에서 전기는 그 자체 이미 재미와 전문성을 함께 띠는 기록 문학이다. 그리고 번역. 이 책을 번역한 이경준은 전문 음악평론가이자 지미 헨드릭스의 열혈 팬인 것으로 안다. 또한 오래된 책벌레이며 때문에 ‘문학적인’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책에 빠르게 집중할 수 있었던 건 그런 그의 ‘숨쉬는’ 번역 덕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음악이라는 전문 분야에 영문학이라는 전공을 얹어 깨알 같은 어휘 선택을 거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가끔 비전문가가 전문 서적을 취미처럼 번역한 책들을 볼 때가 있는데 지양되어야 할 관행이라고 본다. 그것은 역자와 독자 모두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옮긴 사람의 흥분이 느껴지지 않는 번역서는 죽은 책이지 않을까. 짧고 굵게 살다간 희대의 록스타 삶을 흥분하며 읽게 해준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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