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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ug 24. 2017

사람과 현실에 대한 동시대적 성찰

Idiotape [Dystopian]


욕 하고 벗고 뜯고 때리고 일그러진다. 이디오테잎은 자신들의 세 번째 앨범 타이틀 트랙 뮤직비디오를 긴 시간 야합하고 반목해온 현대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 둘에게 맡겼다. 그것은 네 덕 내 탓이 아닌 내 덕 네 탓에 빠진 참상이었고 슬프지만 그곳이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었다. 기적의 압축 성장을 지나 아직도 좌우 정치 패러다임에 빠져 허우적대는 자신들의 조국. 이들에겐 거기가 바로 디스토피아였던 것이다.



근래 검정치마와 혁오가 있는 하이그라운드로 그라운드를 옮긴 이디오테잎은 3인조 밴드이다. 무슨 밴드인지가 중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건 그들이 일렉트로닉 옷을 입고 록 음악을 들려준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들 음악이 엘씨디 사운드시스템(LCD Soundsystem) 같은 것은 아니고 데드시(Deadsy)류는 더더욱 아니다. 이들은 어쿠스틱 드럼을 중심에 놓고 하우스 음악을 변방에 배치해 록 팬과 일렉트로닉 팬들을 모두 포섭할 줄 아는, 세상에 거의 없는 영리한 트리오이다. 전자 음악으로 줄기를 트고 꽃을 피우지만 그들 뇌리 속 뿌리에는 언제나 아날로그 록이 인처럼 박여 있다. 굳이 연결 짓자면 다프트 펑크(Daft Punk)와 오마 하킴(Omar Hakim)이 배틀을 벌이는 ‘Giorgio by Moroder’ 후반부를 똑 떼어온 것이 이들 음악이라고 보면 되겠다. 거기에 세련미와 트렌드 뉘앙스 따윈 다 벗어던진 음악. 왕가위의 ‘중경상림’에 대한 혹자의 평처럼 어쩌면 이디오테잎의 음악은 (하우스라는)내용에 대한 (록)스타일의 충격적 승리일지 모른다.


데뷔 EP ‘0805’와 정규 1집 ‘11111101’은 그런 앨범이었다. 기계음과 생드럼이 맞서거나 조율하며 그들만의 하우스 록은 활력을 얻었다. 대중과 평단의 반응이 호의적이었던 덕에 초기작들은 이들 행보에 탄력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두 번째 작품 ‘Tours’에서 록이 겸손해지자 팬들은 살짝 당황했다. 사람들은 이디오테잎이 ‘Cats in My Head’보다 ’080509’ 같은 곡을 만들고 연주해주길 더 원했다. 하드록 리프 같은 멜로디 리프, 드라이브감 넘치는 베이스 어택에 듣는 이들은 자신들의 시간과 돈을 기꺼이 이디오테잎에 할애했던 것이다. 거기엔 1집이 좋으면 1집만 들으면 되지, 왜 1집과 똑같은 2집을 만들겠냐라는 제제(신시사이저)의 투정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디구루(프로듀서/신시사이저)와 제제가 조작하는 일렉트로닉보다 디알(드럼)이 주도하는 어쿠스틱 그루브에 전자 멜로디가 스며드는 광경을 사람들은 더 바란다. 이디오테잎이 걸어야 할 길은 그때도 지금도 거기에 있었다.


다행히 3집에서 이디오테잎은 1집과 2집의 접점을 잘 찾아낸 듯 보인다. ‘All the Same Inside’에서 ‘Yellow Green’으로 흘러갈 때 나는 그들의 치열한 고민을 읽었다. ‘Untold’와 ‘Plan Z’에서도 그랬고 때문에 나는 ‘Tiger & Lion’을 들으며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만드는 자들의 창작 의지가 듣는 자들의 만족에 좌우되는 건 분명 불편한 일이지만, 어차피 대중음악은 들려주고 팔아야 하는 상업의 영역이기에 수요 측의 취향을 깡그리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 바닥에선 자기 만족을 모두의 만족으로 이끌어내는 일을 잘 하거나 그 방법을 아는 뮤지션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 대중은 그만큼 까다롭고 변덕스럽고 냉정하다.


어두운 아파트 사진과 막장 뮤직비디오가 언뜻 디스토피아를 긍정하는 듯 보여도 음악만은 그렇지 않다. 음반 끝 ‘Journey’와 ‘Whistler’는 다투는 우리 사회를 화해라는 잠자리로 조용히 이끌어준다.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할 줄 알며, 또 들어줄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 이디오테잎 멤버들의 균형잡힌 마음이 바로 이 앨범의 마음이다. 나는 그 균형이 대한민국의 지금, 우리의 미래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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