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생인 앤 로넬은 대학(래드클리프 칼리지) 신문사 기자 시절 조지 거슈윈을 인터뷰 하고, 그 거슈윈으로부터 리허설 피아니스트 기회를 얻은 뒤 브로드웨이 연극계에 입문하며 작사/작곡가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Willow Weep for Me’는 그런 앤이 데뷔곡 ‘Baby’s Birthday Party‘를 쓰고 2년 뒤 발표한 곡으로, 테드 피오 리토와 폴 화이트맨이 각각 1932년 10월과 11월에 발표한 이래 많은 재즈, 팝계 음악가들이 사랑해온 스탠더드다. 특히 재즈 쪽에선 루이 암스트롱, 사라 본, 아트 테이텀의 버전이 유명하다.
앤 로넬이 대학 교내에 있던 ‘사랑스러운 버드나무’에 감탄해 썼다는 이 곡은 그러나 “사랑은 죄라고 바람에 속삭이는” 실연의 사연을 담아 전혀 다른 맥락의 비탄으로 몸을 숙이며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Willow Weep for Me’는 발표 당시 지금으로선 납득하기 힘든 세 가지 이유로 출판이 지연됐다고 하는데, 하나는 방송 및 음반/악보 판매 등 상업성을 전제로 만든 곡으로선 이례적으로 구성이 복잡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여성이 작곡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이 곡이 앤의 우상인 조지 거슈인에게 헌정됐기 때문이다(당시만 해도 ‘헌정 곡’은 업계에서 저어하던 문화였다고 한다.) 그렇게 시대와 업계의 난제들이 고스란히 반영된 이유들로 더디게 진행된 공식 발표는 이 곡의 출판을 처음 시도한 사울 본스타인이 어빙 벌린에게 넘기면서 비로소 실현될 수 있었다.
김주환과 유키 후타미는 저러한 사연을 가진 곡을 ‘따로 또 같이’라는 재즈의 건강한 형식을 담보로 천천히 길들여 나간다. 가령 살얼음판 같은 싱어의 감정선과 그 위를 까치발로 걷는 피아니스트의 대담한 프레이즈가 이 곡의 최초 출판을 늦춘 그 복잡한 구성을 편안한 감상의 대상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이다. 제목부터 가사, 무드까지 온통 슬픔으로 젖어있던 곡이 그런 두 사람의 해석을 딛고 위안이라는 온돌로 거듭난다. 마지막 페이드아웃은 그 따뜻함을 놓치기 싫은 청자를 위한 기술적 배려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