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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리 Jan 27. 2021

자네, 편집자 한번 해보지 않겠나

에세이 편집자 에디터리 - 편집자는 무슨 일하세요 26

      

2020년에는 처음 해보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면접관이 되어 팀원을 뽑기 위한 면접을 본 일이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세상에나.


‘면접’이라는 말만 들어도 긴장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은 선배들이 그랬듯 햄버거 가게의 아르바이트생들이 되었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해 백화점 별관 1층 버거킹 매장에서 소란스런 가운데 매니저와 인생 최초의 면접을 보았다(그때까지 버거킹이 비싸서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었던 건 안 비밀. 일 못한다고 자연스럽게 짤렸던 것도 안 비밀).


그 외에도 비디오대여점, 동네 작은 호프집, 대형마트 내 분식집 등등 아르바이트 면접들을 무수히 거친 뒤, 대학 졸업을 앞둔 나에게 서울출판예비학교(SBI) 면접은 난생처음 사회에서 불러준 기회였다. 기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올라와 합정역까지, 낯선 지하철 노선도에 기대어 열심히 찾아간 그곳에서 나는 난생처음 보는 출판사 대표님들과 앞으로 교육을 맡을 선생님들과 나와 같이 출판학교에 지원한 후보들의 얼굴을 마주했다. 목소리는 절로 떨려나왔고 나를 어떻게 봐줄지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찌릿찌릿했다. 뻣뻣하게 척추를 세우고 앉아 얼굴에 애써 미소를 띠며 질문하는 면접관들의 관심을 애써 끌려고 노력했던 그때의 내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후로도 이직을 할 때마다 출판사의 면접을 보았고 세 번째 회사부터는 나도 이 회사의 면접을 본다는 마음가짐을 장착했던 것 같다. 면접 장소로 향하면서 흘깃 눈길만 던져볼 정도의 시간이지만 앞으로 일하게 될지도 모를 회사 사무실 분위기를 살폈다. 경력자의 면접은 신입 때와는 달랐다. 편집자가 되기 위한 나의 역량이나 가능성을 추측해보는 신입 면접과 달리, 실무자 면접 때는 업계의 선후배가 나누는 대화라고 할 만큼 편하게 대해주는 분들을 만났다.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서로 물어보는 시간은 티타임 같기도 했다. 물론 지원자인 내가 말을 더 고르고 어필을 했지만 말이다.


면접 후 함께 일하는 동료로 맞지 않겠다는 불합격을 받기도 했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내가 가서 일하는 풍경이 잘 그려지지 않는 회사였다. 당장 퇴사를 하고 싶어서 급한 마음에 찾아갔던 경우들이다(지금 돌아보면 붙지 않아서 서로에게 다행이었다. 어쩜 나의 속을 뻔히 들여다본 선배들이었다).


그때는 몰랐던 것을 지금은 안다. 자기소개서를 읽으며 면접대상자를 뽑으며 깨달았다. 얼굴을 직접 보지 않아도 글이란 참 솔직하고 투명하게 비춘다는 것을. 이 회사에서 정말 일하고 싶어서 지원을 한 것인지, 지원을 위한 지원을 한 것인지 보인다는 것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유리한 게 결코 아니었다. 논리를 갖춘 문장도 중요하겠지만, 지원을 위한 지원이 아니라 지원자 스스로 오랫동안 생각한 것들을 정리한 지원서는 달랐다. 진심이라는 건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마음 맞는 지금의 팀원을 만났다.



어떤 사람이 편집자가 되는 걸까. 주변의 편집자들에게 물어보아도 문과를 전공하고 빨리 취업하고 싶어서 출판사에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흔하다. 직업을 택하고 일하면서 자신과 맞다고 생각해서 계속 일하고 있는 사람들. 나 역시 문과는 입학과 동시에 공무원 학원을 등록한다는 주류의 흐름에서 벗어나 내 돈을 벌고 싶어서 출판학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취업해서 월급을 받고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출퇴근에 하루의 50% 에너지를 다 쓰면서 커피를 입에 달고 사는 흔한 직장인 1이 되었다. 다만 하다 보니 이 일이 너무 좋아서, 좋아서 했는데 나의 탁월성을 잘 보일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나의 미래는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몇 달 전 소녀시대 유리의 유튜브 채널 「유리한TV」에 연반인 재재가 출연한 적 있었다. 평소 소녀시대의 팬임을 여러 번 밝힌 재재는 데뷔 때부터 지켜봐온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특히 최애 멤버인 ‘유리 온냐’를 눈앞에서 보는 성덕의 순간이라는 게 영상 밖으로까지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 영상을 보다가 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쳤다.

재재, 이 친구, 편집자로서 아주 탁월한 능력이 있네.


유리가 요리한 음식을 같이 나눠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유리가 재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무대에 대한 욕망과 연기에 대한 욕심 사이에서 자신에게 맞는 길은 무엇일지 찾고 싶다고. 그러자 재재는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무대에 서는 모습을 기다리고 있는 팬들이지만 유리의 선택과 판단을 존중하며,

고민하고 있는 그 마음까지도 헤아리고 있다고.

유리는 자신보다 더 가까이 옆에서 지켜봐주고 있는 재재에게 감동했다.

바로 이것이었다.


유리한TV 재재 편에서


책을 만드는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그러니까 편집자에게 원고가 완성되어 도착하기 전에 작가는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한없는 의심과 회의와 고민을 한다. 이 원고가 출간될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간 내가 써온 이야기에서 좀 더 발전된 결과물일까. 내 책을 읽어줄 독자가 있을까. 이 원고를 완성할 수 있을까. 등등.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동료는 담당 편집자다. 그리고 담당 편집자는 자신이 애정을 가진 저자에게 재재와 같이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오래 지켜봐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조언을 건넬 때 신뢰는 싹튼다. 함부로 업계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주로 다른 출판사를 깎아내리는 식으로)도, 작가에게 필요한 말보다 부담을 더 얹는 말을 건네는 사람도 있다. 원고의 피드백을 받고 싶어 하는 작가에게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갈 길을 더 진전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재재를 보자. 사실 답은 작가에게 있다(사실 모든 고민상담의 답은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가 편집자에게 구하는 건 자신을 향한 애정과 믿음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안개 낀 저 미지의 세계로 가기 위해 흔들리는 다리를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작은 랜턴과 같은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직언을 한답시고 작가의 사기를 꺾는 경우가 많다. 창작 의지를 사그라들게 만드는 일은, 부디 조심하자. 옆에서 에너지를 나눠주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쓸모는 충분하니까.


「문명특급」 안에서 보이는 진행자 재재의 모습은 훌륭한 편집자의 자격이 충분하다. 게스트를 만나는 시간을 위해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머릿속에 넣어온다. 그 사람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살피고 현재의 위치에 마음껏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앞으로 미래를 위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거라는 신뢰를 준다. 누가 마음을 열지 않을까. 단시간에 만나 책 쓰기를 제안하고 원고를 완성하는 동안 함께할 수 있는 든든한 가이드의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편집자를 하면 된다.


또 편집자는 좁고 깊은 취향의 소유자보다 얇고 넓게 퍼진 취향의 소유자가 좋다. 기획이란 자신의 관심사에서 시작하지만 그 관심사가 대중들의 관심과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접점을 찾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읽힐 수 있는 상품(가격의 가치가 있는 물건)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작가와 달리, 편집자가 한 우물 안으로 깊게 들어가다 보면 성과도 의미도 없는, 자기 위안적인 책이 되기 쉽다. 누군가 사지 않고 읽지 않을 책을 시간과 비용을 들여, 세상에 내놓을 이유가 없다(우리가 기획희의에 힘을 들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편집자가 사람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유행이나 트렌드를 좇는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일의 영역에 어떻게 반영할지 상상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면 좋겠다, 베스트셀러에는 어떤 욕망이 숨어 있는지 관찰하기를 즐기며, 무엇보다 자신이 읽지 않은 책을 함부로 평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나는 없던 의미도 판매량이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이 서점에 깔리고 독자의 손에 닿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노고를 아는 사람이어서 한 권의 책을 만들 때 과정마다 책의 생명을 오래 늘리는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요즘은 한정된 시간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인생의 의미가 소중한 무언가를 느끼는 시간에 있다면, 그 시간을 헛되지 않게 하는 일에도 책을 만드는 일은 관여한다. 내가 만든 책을 읽고 ‘괜히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 또한 일 년에 만들 수 있는 책의 종수가 최대 6권이라면, 한 권을 만들 때마다 그 안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시간이 아깝지 않아야 한다. 특히나 조직에서 보낼 시간이 지금껏 쌓아온 시간보다 적을 것이라는 사실에, 이제 막 15년 차가 된 1월에 많이 하고 있는 생각이다. 그 기회를 헛되게 쓸 수 없다.


2007년의 여름, 출판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나는 파주 출판단지의 어느 회사 앞에 섰다. 지난 6개월간 교육을 함께 받은 동기 몇몇과 함께 입사 시험 및 면접을 보러 도착한 것이었다. 국가 차원에서 산업단지로 조성해놓은 출판단지는 으리으리한 빌딩이 없어도 하나하나 개성을 뽐내며 예술작품 같은 건물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이곳으로 출퇴근을 하게 될 나를 상상하는 건 몸 안쪽 어딘가가 간지러워지는 느낌이었다.


영문 원고를 번역하는 시험과 교정 시험을 간단히 보고 대표님과 편집장님 앞에 앉아 면접을 보았다. 너무 떨려서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막힐 것처럼 목이 메었다. 출판학교에서 그간 무엇을 배웠는지 이야기했던 것 같다.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토론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그곳에서 내가 배운 것은 기술이 아니라 ‘출판인’이라는 정체성을 이식받는 시기였다. 출판학교 선생님들은 내가 그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왔던 ‘책’이 아니라, 독자가 만날 ‘책’이라는 물건을 만드는 이 일의 의미를 가르쳐주고자 했고 그 과정을 안내해주었다. 그 시간들 덕분에 면접 자리에서 이제 책을 잘 만들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날의 면접으로 동기들 중에 두 번째로 입사 확정을 지었다. 처음으로 연봉 계약서에 사인을 했던 날, 내 손으로 돈을 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의 부족함을 어떻게든 빠르게 채워서 선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편집부 일원이 되고 싶었다. 발을 동동 굴리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많이도 했다. 그때의 선배들은 나에게 모자람 없이 가르침을 주었다.


끝으로 이 글을 읽고 있을 예비지원자들에게 지원서를 쓸 때 몇 가지 팁을 주고 싶다. 지원서를 읽으면서 기본적인 부분을 놓친 지원자들이 많았던 게 안타까웠다. 역지사지의 입장이 되어 검토해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사실, 지원서를 읽는 입장이 되기 전에는 잘 모를 수도 있는 일이기에 소소한 팁을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 지원 동기에 대부분 그간 자신이 읽어온 책들을 이야기하기 마련인데 주로 ‘고전’을 이야기하는 지원자들이 많았다. 독서력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있으나 출판사의 성격에 맞지 않는 경우(문학출판사가 아닌 경우) 책을 안 읽는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다. 또 문학을 좋아해서 문학출판사에 지원을 한다고 하고도, 해당 출판사의 책이 아닌 다른 출판사의 책들만 나열한 경우에도 마이너스다.

두 번째, 회사 이름을 틀리지 않기. 대표적으로 지원을 위한 지원서를 쓰다 보니 타 회사의 이름을 지우지 않은 것이 눈에 띄기 쉽다. 몇 번이고 확인을 한 뒤에 보내자.

세 번째, 왜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지 지원 동기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패스되기 쉽다. 내가 편집자라는 직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 외에도, 왜 이 회사여야 하는지 면접관은 듣고 싶다. 없는 애정이라도 쥐어짜서 칭찬을 해주면 좋다.


마지막으로 신입 지원자들의 경우 막연히 이 직업이 나에게 좋겠다는 생각으로만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건 단순히 생각일 뿐이지 행동이 보이지 않는다면 믿기 힘들다. 자신이 생각한 바를 스스로 해내는 증명이 필요하다. 이 직업에 관심이 있어서 무엇을 시도해보았는지(출판사 행사를 가보았는지, 독서모임을 꾸리고 있는지, 서평단에 참여해보았는지, 회사가 운영하는 커뮤니티에 가입해보았는지, 편집 일을 조금이라도 배워보고 자신과 맞는 일인지 판단을 해보았는지 등등) 어필을 해야 한다. 책을 좋아하는 일과 책을 만드는 일을 잘하는 건 다르다.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시도해본 일들이 많다면 수많은 지원서들 가운데 틀림없이 돋보일 것이다.

훗날, 업계 어딘가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 예비 편집자님들  궁금한 점을 댓글을 달아주세요. 그중  분을 뽑아 휴머니스트에서 출간한 <편집자란 무엇인가>(김학원 지음) 1 보내드릴게요(~29일까지 마감).  이야기보다 정석으로 편집자가 하는 일의 A to Z 배울  있습니다. 좋은 책을 나눠보라고 보내주신 휴머니스트 SNS 담당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당첨자는 (경이님) 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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