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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리 Mar 05. 2021

이직의 기술 - 꿈과 희망은 없고 다만 후회하지 않도록

에세이 편집자 에디터리 - 편집자는 무슨 일 하세요 32

     

출판계의 이직은 2, 3년 간격으로 흔하다. 부끄럽게도 이런 환경이 된 건 업계에 건강한 조직문화, 합리적인 인사 시스템이 존재하는 회사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업계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자면 규모와 상관없이 오너이자 대표의 뜻에 따라 하루아침에 휘청하는 조직이 많다. 때가 되면 “00출판사 편집자 전부 퇴사했대”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누구나 입사할 때에는 오래 다니고 싶은 직장을 심사숙고 선택해 지원한다. 그런데 막상 출근해보면 그간 출간해온 책들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현실을 마주할 때가 있다. 불합리한 업무 지시, 꽉 막혀 있는 경직된 조직, 직원을 대하는 낡은 방식 등등 이곳을 빠르게 탈출해야겠다는 각이 바로 나오는 회사…… 어느 업계인들 없을까. 다만 ‘책’이라는 상품을 만든다는 이유로 출판사라고 ‘일하기 좋은 회사’, ‘꿈의 직장’만이 있을 리 없다.


나는 그간 네 번의 퇴사를 했다. 늘 원하는 직장이어서 지원했지만 경영 악화, 동료, 상사의 퇴사 등 견디지 못할 이유가 발생하기도 하고 이곳에서의 미래는 없다는 판단에 그만두기도 했다. 한 곳에서 오래 버티면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갉아 먹히는 것보다 더 나은 환경으로 나를 데려가는 것이 중요했다. 출간 결정을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내려주는 원고만을 작업해야 했을 때(이유나 제대로 설명해줬으면 좋으련만), 업무시간 외 작가와의 행사가 많아 야근으로 인정해달라고 건의했으나 “요즘 직원들은 작가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그렇게 업무적으로 접근하려고 하느냐” 타박이 돌아오며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그럼 대체 왜 자유롭게 퇴근을 하지 못하고 강제적으로 참석해야 했는지), 근속연수가 높은 상사가 하루아침에 한직으로 부당하게 발령이 날 때(특히 마음으로 의지했던 상사의 경우 이 조직의 끝을 목격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의 업무 성과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을 기대조차 하지 못할 때 등등 회사를 계속해서 다닐 의지가 조용히 소멸하고는 했다.


특히 조직에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관계의 문제 같은 경우, 상황이 바뀌기는 정말 어렵다. 여러 번 싸워도 봤지만 변화를 원치 않는 조직은 결코 아랫사람의 고충으로 윗사람들을 경질하지 않았다. 그럴 때면 아랫사람은 자신을 주로 탓하게 되는데 자책감의 굴레에 빠지기 전에, 마음이 망가지기 전에, 더 상처받기 전에 이직을 하는 것이 좋다. 살면서 모든 문제를 내가 다 해결해야 하는 건 아니다. 자신을 위해서 언제든지 도망치는 것은 하나의 전략이고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나는 후배들에게 자주 이직을 권한다. 실리적으로 이직할 때 연봉을 10~20퍼센트 가량씩 한번에 못 올리면, 한 조직의 연봉 인상율로는 만족스러운 수입이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또 개인의 성장으로도 한 출판사만, 한 상사만 겪어보고 이 업계가 다 이렇구나, 좌절하고 순응하기보다 이보다 더 나은 곳을 찾아 여러 조직을 겪어보는 편이 일을 하는 환경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된다.


개인의 목표를 어느 회사의 편집자로 두고 일하기보다, 내 이름 앞에 특정 분야, 특정 시리즈가 붙는 방식으로 나만의 브랜드를 키우는 게 장기적으로 건강한 계획이다. 회사 밖에서 내가 얼마나 팔리는 직업인인지 평가를 두려워하지 말자. 조직은 언제까지나 내 의지대로 다닐 수 있는 게 아니다. 간절하게 한 길만 바라보고 일한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자신이 파놓은 진퇴양난의 늪에서 박혀 있어야만 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조직에는 많이 남아 있다.


잦은 이직이 고민인 사람들도 종종 만난다. 이력서상 1년 미만의 근속연수가 많은 경우, 인내심이 없거나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그런 경우라면 자기소개서를 통해 자신이 어떤 회사를 찾고 있는지, 자신만의 일을 바라보는 기준 등을 더 명확하게 드러내주면 좋을 듯하다. 아직 잘 맞는 회사를 찾지 못했다는, 자리를 잡고 싶다는 희망을 어필하면서.


출판계가 콘텐츠 사업이다, 미디어다 하며 다른 업계와 다를 거란 희망을 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오래된 매체인 탓인지 새로운 것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출판계에 많다. 책을 믿되 출판사는 믿지 못할 분위기를 누가 만들었을까. 이 업계가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출판계는 단군 이래 불황’이라는 말과 함께 나도 첫 직장에서 너무 지겹게 들었던 그 말. 패배주의, 열등감 가득한 말. 이제 막 이 일을 하겠다고 들어온 신입에게 할 말인가 싶은 말.


“젊어서 여길 왜 와. 얼른 다른 길 가. 내가 그 나이면 여기 안 왔어.”


분명 편집이라는 일이 매력적이고 하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이런 회의주의적인 말들과 불행한 말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나부터 이런 말을 하지 않으려고 기억해두었다. 회사가 싫어도 일은 싫은 적이 없었고, 즐겁고 보람을 느끼는 일들도 소소하게 많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14년간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 리 없지 않을까.


나의 선배들도 여전히 이 일을 사랑해서 책을 계속 만들고 있다. 앞으로도 뒷사람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이 겪은 것보다 나은 출판계가 될 수 있도록 여러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음을 안다. 일상 속에서 부당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 세심히 살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회사 안팎 동료에게 작은 힘이나마 연대하기. 출근길에 늘 잊지 않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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