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편집자 에디터리 - 편집자는 무슨 일 하세요 34
비 오는 날이었다. 일요일이었고, 남편이 약속이 있어 차를 두고 나간다고 했다. 이때다 싶었다. 10년 이상 장기면허를 보유하고 있다가 일산에 이사를 온 이상, 나도 운전을 좀 하고 싶다는 열망에 도로연수 10시간을 막 끝낸 참이었다. 출판학교 동기 언니가 아이를 낳고 복직을 하면서 은평구에서 파주 출판단지까지 연수를 받았다고 했다. 불편한 것 없이 젠틀하게 가르쳐주신다는 말에 선생님을 소개받았다. 50대 후반의 남자 선생님이라 긴장했던 것도 잠시, 초보가 당황하지 않게 브레이크, 엑셀부터 알려주시고 지난주에는 70대 할머니도 배우고 잘 타고 다닌다고 용기도 불어넣어주셨다. 그런 자상한 선생님 덕에 누구보다 긴장한 채 승모근을 귀밑에 붙였던 어깨를 내리고 차분히 연수 10시간을 채웠다. 서울 시내를 곳곳으로 다닌 게 마지막이었으니, 빗길 따위야!
남편을 가까운 정류장에 내려주고 우회전으로 돌아서자 내 몸속에 뭔가 아드레날린 같은 것이 솟구쳤다. 이대로 집으로 들어가기엔 너무 짧은데? 어디 갈 곳이 없을까? 내 머릿속 내비게이션은 재빠르게 지나다 본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를 목적지를 내놓았다. 길이야 평소에 워낙 밝은 편인 데다 일산은 네모반듯한 동네여서 대략의 감을 잡고 좌회전, 직진, 좌회전, 좌회전을 하니 간판이 보였다. 나 홀로 드라이브 스루라니! 상상 속에 나는 멋진 포스를 한껏 풍기고 있었다. 늘 먹던 걸로 먹겠어.
스타벅스가 있는 건물로 우회전을 하고, 다시 드라이브 스루 주문을 하기 위해 좌회전을 해서 건물 입구로 들어간 순간 뭔가 이상했다. 일단 이렇게 건물의 필로티 주차장에 매장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고, 좌회전을 했을 뿐인데 운전석 창 옆에는 커다란 기둥이 바싹 붙어 있었다. 나의 이성은 다된 배터리마냥 퓨즈가 꺼졌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흐억.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누구도 알려준 적이 없는데, 일단 후진을 해야 하나 룸미러를 보니 뒤로 차가 세 대나 줄지어 있었다. 앞을 보니 대형 스크린 속에서 스타벅스 직원이 손짓을 하며 외치고 있었다. 고객님, 어서 오세요. 고객님, 어서 오세요. 이거야말로 진퇴양난, 등 뒤로 진땀이 주르륵 흘렀다. 내려서 뒤차에 제 차 좀 빼주실 수 있을까요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그럴 수 없다고 하면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번개 같은 속도로 온갖 시뮬레이션을 굴려보던 나는 핸들을 반대방향으로 틀고 후진, 다시 반대방향으로 돌리고 전진했다. 머릿속은 패닉이어서 내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혼란한 상황에 귓가를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콰지직.”
무언가 쇠판이 우그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아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다 간신히 앞으로 전진했다. 이대로 그냥 빠져나갈 수는 없다, 는 이상한 판단을 내린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스크린 앞에 차를 세우고 외쳤다.
“리스트레토 비안코 톨 사이즈 하나요.”(사람이 칼을 뽑았으면 커피는 먹는 거다!)
그리고 음료를 받으러 이동했는데 다행인지(?) 스타벅스 직원은 평소와 다름없이 음료를 하나 내주었다. 결제까지 콩닥거리는 심장을 애써 부여잡고 마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는 집으로 달렸다. 차 상태가 어떨지 너무 궁금했지만 지금 세워서 본다면 집까지 갈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저 미쳤어, 를 연발하며 집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가까스로 주차를 마치고 보니 운전석 뒤쪽 문이 움푹 들어가 있는 걸 발견했다. 기둥에다가 차를 대고 앞뒤로 왔다 갔다 했던 내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뒤차는 이런 나를 얼마나 황당해하며 쳐다봤을까. 다신 그 스타벅스를 갈 수 없었다. 뒷문 교체로 차는 다시 멀쩡해졌고 다행히 다친 사람 없이 끝난 해프닝이었지만, 나는 남편에게 차마 운전대를 다시 잡겠다 말을 하지 못하고 그 뒤로 2년이 흘렀다.
남편과 고심 끝에 새 차를 구매하기로 했다. 남편과 20대를 함께 달린 차를 그만 놓아주어야 할 때가 된 것이었다. 나는 또 이때다 싶었다. 운전을 다시 해야겠다고 남편에게 연수를 받기로 했다(물론 가족 간에 연수는 당연히 안 받는 걸 권한다. 서로 너무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연수는…… 힘들다). 새 차를 사게 되면 나와 남편의 애정 지분이 동등하니까 이전보다 더 나의 운전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새 차를 사기 전에 지금 차로 운전 연수를 최대한 많이 받기로 했다. 그렇게 두 달의 주말 드라이브가 시작되었다. 주로 일산 시내, 수영을 다니던 고양체육관까지 왕복을 하거나 더 나아가면 파주 출판단지를 돌았다. 처음에는 차선을 바꾸는 것도, 뒤에서 빨리 가라고 클랙슨을 울리는 것도 모두 힘들었다. 놀라기도 하거니와 뒤차가 나를 끼워줄지 타이밍을 맞추는 게 어렵게만 느껴졌다. 스물두 살 때, 운전면허를 처음 딸 때 기억이 떠올랐다.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엑셀과 브레이크를 연달아 밟는 나를 본 강사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크게 혼을 냈다. “그렇게 소심하게 굴다가 사고 나는 거예요.”
그날 이후로 나는 내가 소심한 성격이라 놓치는 부분들에 대해 생각했다. 남의 눈치를 너무 보느라 내 타이밍을 놓치는 건 운전에서도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못 한 날에는 밤새 뒤척였다. 나의 기분을 드러낼 타이밍을 놓쳐 다시 이야기하기도 애매해져 삼켜버린 수많은 날들. 자려고 누우면 되감기를 하느라 잠이 다 달아났던 밤들. 조금씩 나를 편하게 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누가 뭐라고 할까봐 묻지 못했던 걸 다시 물어보거나 다들 다 안다고 전제하고 말하는 중에 “그런데 죄송한데, 그게 뭔가요? 저는 잘 몰라서.”라고 되묻는 상황에 나대는 심장을 잡고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맥락을 놓치면 놓쳤다고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다시 설명해줬다. 이야기를 되돌아가더라도 그 자리에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시간이 지나서 그때 못 물어본 걸 물어보는 것보다는 훨씬 가벼운 산을 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운전 연습을 몇 번 하던 어느 날, A4 종이에 ‘초보’라고 적었던 종이를 떼고 다이소에서 ‘초보운전’ 자석을 사다 붙였다. 이게 웬걸, 소화제를 먹은 것 마냥 속이 다 편해졌다. 뒤에서 클랙슨을 울려도 “먼저 가슈,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 혼잣말을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운전대를 잡는 나에게 어느새 익숙해지고 내가 초보라고, 당신도 초보인 시절이 있었을 거 아니냐고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다. 배려 없이 구는 사람에게는 그러려니 싶고 양보해주는 사람들은 나도 꼭 다음 초보에게 은혜를 갚을 거라고 다짐하게 만들었다. 충분히 신호를 주고 차선을 이동하면 되었고, 급할 것 없이 나를 피해갈 사람들은 알아서 피해갔다. 신호 대기 중에 괜히 뒤차를 룸미러로 살피는 버릇도 없어졌다. 내 속도 지키며 내 차선 지키며 신호를 지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엔 감이 없어 콱콱 밟던 엑셀과 브레이크도 서서히 발바닥의 느낌을 느끼며 차와 한 몸이 되어갔다. 그랬다. 충분히 익숙해질 시간만 있으면 느는 것이었다. 여유는 누가 쥐어주는 것이 아니었고, 내가 나의 속도를 이해할 때 생길 수 있는 것이었다.
이건 비단 운전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머리를 써서 일의 순서를 익히며 책을 만드는 일도, 한 동작씩 차근차근 배워가다가 어느 순간 자동으로 동작이 연결되며 몸에 익는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운전 못한다고 괜히 눈치 볼 필요 없이 키를 들고 시동을 켜고 운전을 하러 나가면 될 일이었다. 그간 운전대를 미처 잡을 생각 못하고, 차를 사는 건 더 여유 있을 때나 하며 차일피일 미뤄둔 시간이 아까울 만큼 운전은 참으로 달콤했다. 전국팔도 어디든 가보고 싶고 육아에 지쳐 있을 친구, 후배들도 만나러 가고 싶었다. 내가 차를 갖고 있고 운전을 할 수 있다면 만들 수 있는 추억이 더 많았을 테니,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더 많이 달려야겠다.
오늘도 청량한 공기와 따스한 햇빛이 참 좋은 봄날이다. 동네 한 바퀴 돌러 나가야겠다. 다음 달에는 강변북로, 자유로를 달려볼 테다. 더 멀리, 언제든 원할 때 달려갈 수 있는 나를 그려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