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얻은 4가지 비유, 그 세 번째
유재석, 손석희 같은 분들이 아니라 븅신들을 멘토로 설정해야 해요.
당시 sns에서 유병재 작가의 독특한 멘토관이 큰 화제였다. 일명 '븅신 멘토 설정법'.
군계일학보다는 타산지석의 인물들이 더 유용한 참고 대상이라는 게 요지였다.
기존의 멘토관을 확 뒤집은 그의 견해는 참신하다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왜 공감을 샀을까?
사실 유병재 작가의 멘토관은 엄밀히 말해 '멘토'관이 아니다. 멘토의 정의는 '조직에서 후진들에게 조언과 상담을 해주며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유 작가가 말하는 멘토는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미 비틀기는 대중에게 제대로 먹혀들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멘토링의 현실을 정확히 꼬집었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는 누구나 멘토링이 자기성장에 효과적인 방법임을 잘 알고 있다. 다들 누군가의 조언을 통해 도움 받은 경험을 갖고 있다. 미디어에서도 강조한다. 서점의 자기계발서 코너에 가면 멘토링은 항상 단골 소재다. 각종 강연 프로그램에서 강연자 소개를 할 때면, '이 시대의 멘토'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대중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사로잡기 위한 작가의 어휘 선택이다. 심지어 멘토링 콘텐츠를 비즈니스 모델로 내놓은 사회적 기업도 존재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낯선 존재였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물론 멘토링 효과에 대한 연구결과도 널려있다. 필자가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인 사례는 Sun Microsystems의 사례다. 컨설팅 회사인 Gartner가 Sun Microsystems의 1000명이 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5년 간의 행보를 다룬 연구였다. 분석 결과, 멘토 역할의 직원들은 멘토링에 참여하지 않았던 직원보다 승진율이 무려 6배 높았다. 멘티의 경우도 승진율이 5배 높았다. 놀라운 수치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좋다는 멘토를 다들 갖고 있어야 하지 않나? 막상 멘토를 갖고 있는 멘티(protégé)는 얼마나 될까? 아쉽게도 정확한 수치를 다룬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 멘토-멘티 관계는 결코 많지 않다. 아니, 많을 수가 없다. 당장 주변을 둘러봐도 그렇다. 그리고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추론 가능하다.
멘토링은 기본적으로 1:1 네트워킹이다. 한 명의 멘토가 다수의 멘티를 둘 수는 있어도 그 수는 소통 방식과 시간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업이 아닌 이상 많은 수의 멘티를 둘 수 없는 구조다. 뿐만 아니라 접근성도 낮다. 제도적인 방법이 아닌 이상 본인의 인간관계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의 숫자 또한 제한적이라는 게 과학계 입장이다. 'Dunbar 숫자' 이론으로 잘 알려진 바, 사람의 뇌가 수용할 수 있는 인간관계는 약 150명 수준. 각별한 관계는 5명, 가까운 관계는 10명, 지인 관계는 35명, 연락 가능한 관계는 100명이라는 게 구체적인 내용이다(작년 MIT Technology Review에서 관련 실증 연구를 소개했는데 분석 결과가 이론값에 제법 가까웠다).
유병재 작가가 강연을 했던 저 자리에서, 4년 전 한 강연자의 발언이 또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멘토라는 같은 주제에, 똑같이 화제가 되었지만, 맥락은 달랐다. 2011년 청춘페스티벌에서 안철수 의원의 발언이었다. 본인의 멘토가 300명이라는 것. 이 발언에 '음 나도 그런데'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과연 몇이나 될까? 당시 필자도 그렇고 대중의 일반적인 반응도 공감보다는 참신함에 가까웠던 것 같다.
따라서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멘토링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 커다란 갭이 있다고 본다. 유 작가 본인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이 점을 잘 파고들었다. 대중에게 이상적인 멘토링 비법이 아닌 바로 현실에 얼마든지 적용 가능한 인간관계 요령을 알려준 것이다. '븅신 멘토 설정법'은 멘토관이 아니라, 정확히 말해서 다수를 위한 현실적인 처세술인 셈이다.
이번 이야기는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다. 주제는 같다. '문제적 인물들은 내 인생의 빨간 신호등이다'라는 주제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경험했고 그로부터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경험 묘사에 치중해서 글을 풀어보겠다.
전번 글이 소위 때 겪은 얘기라면, 이번은 중위 시절 겪은 얘기다.
필자는 중위 때 대대 본부중대장 직을 수행했다. 전 보직이었던 부중대장 직과는 차원이 달랐다. 녹색 견장의 유무, 부하들의 숫자, 책임감의 크기, 그로 인한 스트레스 등. 이런 것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업무적인 면에서 많이 달랐다. 이전 같으면 중대장님 한 분 말씀만 고분고분 잘 들으면 될 따름. 그러나 중대장이 되자 이해관계자가 거의 열 배는 늘었다. 대대장님을 필두로 각 참모부 과장님, 중대장님들, 경우에 따라서 실무 담당관들까지. 지휘관 회의는 물론 주요 참모 회의까지 참석했다. 업무의 성격이 단순한 상명하달식 이행에서 수평적 협업으로 바뀐 것이다. 후자는 확인과 재확인, 요구와 설득이라는 훨씬 능동적인 방식을 요구했다.
부대가 잘 기능하려면 특히 참모부와의 소통이 중요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분야는 작전. 일 년 치 부대 일정을 관리 감독하는 게 작전의 주 역할이다. 부대 일정은 수시로 조정된다. 대체로 상급부대 지시에 의한 경우가 다반사다. 이러한 우발적인 계획 변경은 중대장들에게 민감한 사항이다. 어차피 계획의 시행 주체는 십중팔구 중대일 테니까. 따라서 중대가 작전과 긴밀한 컨택을 유지하는 것은 필수였다.
이토록 중요한 작전 참모부에서 주축은 작전과장(소령)과 작전장교(대위) 둘이다. 이 중 작전장교(대위)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대가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실무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총 두 명의 작전장교를 경험했다. 먼저 분은 부족함이 없었다. 작전장교에게 요구되는 역량인 업무 조율 및 추진 능력, 그리고 업무에 대한 우선순위 판단력을 갖추었다. 주요 회의 전이나 후면 늘 중대장들과 주요 참모들을 두고 의견을 종합했다. 그 과정에서 피드백을 받을 때면 필자도 업무의 진행상황을 전체적인 그림에서 조망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본글의 문제적 인물, 후임 작전장교는 달랐다. 일단 전입 전부터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기존의 평판은 유효한 것으로 드러났다. 작전 참모부가 주관하는 회의의 빈도수가 급격하게 떨어진 점, 높아져만가는 대대장님의 언성, 점점 어두워져 가는 계원들의 표정 등. 몇 가지 징후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이 식별이 되어도 필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작 한 사람의 변화로 조직 전체가 타격을 입을 만큼 조직이 무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새로운 작전장교가 온 이후, 대대가 조금씩 삐걱거린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는 했다. 처음엔 께름칙한 의구심에서 시작했다. 허나 어느 기점을 통해, 확신으로 바뀐다.
'조직은 결코 무르지 않아'란 기존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마치 영하로 내려간 물이 순간적으로 단단한 얼음이 되듯 말이다. 이 어는점,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버린 계기는 바로 중대장들의 동선에 대한 관찰이었다.
동선에 대해 설명하려면 전체적인 공간 구성부터 언급해야 한다. 당시 작전장교(대위)는 지휘통제실에 위치했다. 지휘통제실이라 하면 대대의 중앙 상황실쯤 되는 곳이다. 반면 작전과장(소령)은 작전부서 사무실에 자리했다. 열린 문을 사이에 둔 바로 옆 공간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중대는 작전 참모와 긴밀한 협조를 필요로 한다. 그 말인 즉 중대장들은 작전부서 관계자들과 온/오프라인 접촉이 잦다는 말이다.
다시 동선 얘기로 돌아가서, 기존 중대장들의 동선은 지휘통제실 중심이었다. 당연했다. 작전부서의 실무자가 지휘통제실에 있었으니까. 작전 사무실에 들어가는 경우는 중요한 논의나 결재를 목적으로 한 예외적 경우였다.
그러나 작전장교가 교체되고 난 이후, 중대장들의 동선은 완전히 바뀌었다. 지휘통제실과 작전부서 사무실을 찾는 빈도수를 상대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대칭이라 할 만큼 이제는 작전부서 사무실을 자주 찾았다. 또 그만큼 지휘통제실을 드나들지 않았다.
이러한 동선의 변화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실무자(작전장교)의 정보 접근성을 낮추었다.
중대장들이 지휘통제실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소통의 기회가 상실됨을 의미했다. 조직의 의사소통 경로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공식적인 채널과 비공식적인 채널. 각 채널의 비중은 조직의 문화나 업무처리 프로세스에 따라 상이하겠으나, 많게는 40%가량의 정보가 조직 내 비공식 채널을 통해 유통된다는 연구도 있다. 담배 타임, 회식, 골프가 비즈니스에서 중요하다는 게 괜한 빈말이 아니다. 특히나 군대와 같이 경직된 조직에서는 비공식적인 의사소통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비공식적 의사소통 채널(속칭 Grapevine)이 사라졌다는 것은 작전장교 입장에서 정보 획득량을 낮추는 것은 물론, 향후 피드백 기회가 매몰되는 불리함을 초래했다.
업무 처리 경로에서 불필요한 중복을 야기했다.
중대장들이 대체로 작전장교보다 작전과장을 먼저 찾는 형국이다 보니 때로는 업무가 정상적인 루트에서 처리되지 않았다. 즉 '중대장-작전장교-작전과장' 경로에서 처리되어야 할 업무가 '중대장-작전과장-작전장교-작전과장' 추가 경로에서 다루어졌다. 더구나 제대로 처리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소통의 부재로 인해 작전장교의 실무권이 대폭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작전과장 입장에서는 작전장교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업무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업무처리 문제로 작전과장과 작전장교의 관계가 갈수록 악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위 상황적인 요인들은 점차 부정적인 방향으로 고착됐다.
소통 문제가 업무 처리에 악영향을 주고, 업무 처리 결과에 대한 주변의 실망감이 소통을 저해했다. 이 반복적인 루프는 수렁을 만들었다. 일종의 낙인(Stigma)이었다. 낙인의 가장 치명적인 폐해는 도태의 순환고리가 갈수록 강화된다는 데에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으로부터 공급받는 자원량은 줄어들고. 부정에서 긍정으로 전환하는 진입장벽마저 점점 높아진다. 그 모습은 마치 커다란 원형 싱크대에 떨어진 구슬과도 같다. 궤적은 점점 작아지고, 속도는 빨라지며, 구멍으로 수렴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중대장들의 동선이 바뀌었을까?
타 중대장들의 심중을 정확히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인에 대한 유추는 다만 필자의 경험에 빗대어 짚어볼 수 있다.
원인은 작전장교의 업무 하달 방식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야! 본부!" 작전장교는 필자를 늘 이리 불렀다.
필자의 직책이 본부중대장이었으므로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야! 본부!"라고 부른 다음, 때마침 지휘통제실에 잘 왔다는 듯 필자에게 업무를 주었다.
처음에는 정말 시의적절한 업무 할당이겠거니 했다.
허나 반복해서 지휘통제실에 들어설 때마다, "야! 본부!"라는 말과 함께 업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닌가?
나중 가서는 결국 이 "야! 본부"라는 말은
필자의 뇌리에 '예상치 못한 업무 추가'라는 혐오 자극으로 학습되었다.
혐오 자극을 회피하고자 하는 성향에 따라 자연스레 지휘통제실을 찾는 빈도수는 줄었다.
정적 처벌의 전형적인 양상이었던 셈이다.
이와 관련해서 자세한 얘기를 한 적은 없지만, 타 중대장들도 유사한 경험을 겪었으리라 생각한다.
만약 작전장교가 인트라넷 메일이나 메모 등의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업무 지시를 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인식은 확연하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필자가 느낀 불편감의 핵심은 업무 추가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무는 부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추가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이는 당연히 납득 가능한 부분이었다.
다만 납득되지 않는 것은, 업무가 왜 자꾸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서 추가 할당이 되는가였다.
그것도 매우 빈번히.
앞서 언급된 바, 비공식적 채널(Grapevine)은 절대로 부정적인 요인 아니다.
정보 유통의 측면에서, 적정 수준의 비공식적 채널은 긍정적이다.
감정의 교류나 의사 교환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은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 정보 유통이 아닌,
업무 추진의 측면에서 비공식적 채널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업무를 공식적인 루트가 아닌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서 처리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① 일차적으로 책임소재가 불명확해진다. 그러나 업무를 하달받는 밑에 사람 입장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② 이차적인 문제, 바로 통제성의 상실이다. 여기서 통제성이라고 함은 비단 대상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본인이 통제의 대상이 되는 것까지 포함한다. '사람은 통제를 추구한다'는 명제는, 통제의 주체로서 가능한 강력한 통제를 추구하는만큼, 사람은 통제의 대상으로서는 가능한 명확한 통제를 선호함을 내포한다. 앞서 언급된 통제성의 상실은 후자와 관련 있다.
이차적인 문제가 더 심각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비공식적인 루트를 사용하여 업무를 잘 처리했다고 치자. 어찌 됐건 일이 무사히 처리되었으므로, 일차적인 문제는 사라진다. 책임소재는 주로 일이 틀어졌을 때나 부각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차적인 문제는 일이 잘 처리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일의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말이다. 일처리 과정에서 느꼈던 불편감은 지워지지 않고 계속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이 반복될수록 통제의 공백 상태에 지속적으로 노출 된다. 유리된 상태로부터 나오는 부정적인 감정은 계속해서 축적될 것이다.
가령 회사 평가 사이트를 살펴보자. 이직자의 부정적 의견 중 가장 눈에 띄는 지적 중 하나가 무엇일까? 십중팔구 '주먹구구식 운영'이다. 필자는 이를 통제성의 상실로 이해한다. 회사가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수준의 단순한 지적이 아니다. 본인이 일을 처리하더라도 그것이 조직 내에서 유의미하지 않다는 판단과 감정에 관한 것이다. 이것이 업무자로 하여금 조직을 떠나게 만든 진짜 요인이리라.
장수의 호령이 조금이라도 어설프면 대오는 금방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이를 두고 장수의 과오를 따질 때, 단순히 틀어진 대열만 갖고 논해서는 아니 된다. 오와 열은 다시 맞추면 되는 것이다. 장수의 더욱 무거운 잘못은 그의 실수로 인해 군사의 사기가 꺾인데 있다. 서투른 명령이 낳은 병사들의 불신은 십보백보로도 쉽게 고쳐질 수 없는 것이다.
반면 공식적인 채널은 다르다. 똑같이 업무가 추가 할당이 된다고 하더라도 공식적인 채널은 통제성의 맥락을 지닌다. 다루어지는 정보는 문서의 형태로 흔적이 남는다. 이는 업무 추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추적이 가능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프로세스가 조직의 감시 하에 있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채널에서 업무는 더 이상 상관과 부하 간 1 대 1 관계 상에서 진행되지 않는다. 업무 가운데 조직이 개입된다.
이는 향후 책임소재를 정확하게 가릴 수 있게 함은 물론, 조직의 '보이지 않는 눈'을 의식한 상관은 지시에 신중을 가한다. 지시가 명확하니 수행자 입장에서는 추진이 수월하다. 뿐만 아니라 하급자는 안정감을 제공받는다. 비록 상급자와 수직적 관계에 있으나, 체계 속에서 동등한 조직의 일원으로 함께 기능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대체적으로 업무 진행에서 공식적 채널보다는 비공식적 채널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업무 진행 속도가 빠른 비공식적 채널의 장점이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타산이 맞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종종 외국의 기업문화와 비교되기도 한다. 마침 최근 사례가 있어 인용해본다.
… 이처럼 한국과 독일 간 극명한 문화 차이는 직원들 간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령 독일인들은 같은 테이블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일을 하는데도 대화 대신 e메일을 보내 커뮤니케이션할 때가 많았다고. 이경훈 차장은 "직접 얼굴을 보면서 말로 하면 단 몇 초면 끝날 일까지 e메일로 이야기하려는 태도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런 방식이 비록 시간은 좀 더 걸릴지라도 일의 진행과정에서 책임소재를 명확히 가릴 수 있고 좀 더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결과물을 얻기 위한 독일인 나름의 방식이라는 걸 깨닫고 적응해 가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 출처 : DBR 2017년 11월 237호, pg 84
얘기가 다소 길어졌다. 아무튼 작전장교 교체 이후 동선이 바뀌고 전체 분위기가 바뀌었다. 작전장교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필자로 하여금 개인의 부정적인 파급력에 대해 고찰해보는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이는 군 생활 중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렬한 배움이었다. 작전장교 사이에서 업무 관련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올바른 업무 진행 방식에 대해 매번 숙고했다.
어쩌면 작전장교만큼 필자에게 가르침을 준 사람도 없다. 필자는 운이 좋아 탁월한 중대장님, 선임소대장, 대대장님을 위에 두는 행운을 누렸다. 그러나 그들의 역량은 본인 특성과 고유에 기반한 것이어서 막상 그로부터 배우기란 어려웠다. 그들은 저마다 조직에 순화되어 너무나도 원활히 기능했기 때문이다. 그들과 같이 업무를 하다 보면 물 흐르듯 척척 진행되었다.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마치 대로에 연달아 있는 초록색 신호등을 본 운전자가 여유롭게 주행하듯 말이다.
허나 탁 트인 대로는 흔치 않은 경우다. 일반적인 일과를 길에 비유하자면 대로라기보다는 혼잡한 길거리가 보다 정확한 비유일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건 초록불보다는 빨간 신호등이다. 긴장감을 주며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하면서도, 경로와 방향을 되짚어보게 해 주고 경각심을 주는 빨간 불빛. 작전장교는 필자에게 빨간 신호등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빨간빛은 초록빛보다 파장이 길기 때문에 멀리서도 더 잘 보인다. 사회심리학자 Roy F. Baumeister는 그의 저술 <Bad Is Stronger Than Good, 2001>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정적인 요소는 긍정적인 요소보다 5배 더 영향력 있다.
파장이 길다는 특징을 이용해 빨간색을 정지 신호 삼아 안전을 도모한 신호체계처럼, 우리는 영향력이 더 큰 요소들을, 때로는 신호로 인식하고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기만 해도 암이 걸릴 것 같은 직장동료가 한 두 명씩 있을 것이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의 머리 위를 자세히 들여다보길 권한다. 서서히 밝아지는 빨간 불빛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아는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인생길에 사고율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고마운 신호등일지도.
참고 링크
1. https://www.technologyreview.com/s/601369/your-brain-limits-you-to-just-five-bffs/#/set/id/601360/
2. https://www.scribd.com/document/329835440/Workforce-Analytics-at-Sun-Microsyste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