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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길 colour Dec 22. 2023

주춤주춤, 앞서거니 뒤서거니

2023.12.22.(금)






한 해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물론 그 끝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제도에 불과할 뿐이라

자연스레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겠지만,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의 후회와 아쉬움, 다짐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끝과 시작을 가늠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궁리하게 하며

난 여전히 이속에서 주춤거린다.




23년 그리고 이어지는 24년은 킨츠키와 같은 메시지를 나에게 툭하고 떨궈놓았다.




킨츠키 과정을 신청하며,

깨진 그릇이 없던 나는 멀쩡한 그릇을 망치로 두 동강 내어 들고 갔다.


평소 아끼는 그릇이 아니었기에 나야 과감히 깰 수 있었지만,

이러한 괴롭힘에도 고운 결을 유지하며 적당히 대각선 방향으로 갈라선 그릇의 보답에

마음 한 구석이 짠해왔음을 굳이 감추고 싶지 않다.


접시의 단면을 조심스럽게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평소 내가 사용하는 그릇의 넓은 면이 아닌 두께의 깊이를 알게 되었고,

사물의 볼품이라는 것이

그릇의 아름다운 무늬만이 아닌 강도와 쓸모에 비례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옻과 다른 재료를 섞고 결합하는 과정에서

다른 존재들이 시간에 비례하여 자신을 내어주고 하나가 되는 과정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깨진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이어 붙이고 나서야

20도 이상의 온도와 70% 이상의 수분이 있는 공간에서 최적의 결합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과정에서 단절된 무언가를 이어 붙이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 이상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애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어렴풋이 감각했다.


그렇게 얻은 결합물에 미세한 단차가 생겨 아쉬워하면서

우리라는 이름 아래 각자 생존하는 개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단차가 생긴 조각들을 사포로 갈아내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양보와 맞춤의 과정이 없다면 그릇으로서 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 이르러

나와 나의 관계 맺음에 대하여 돌아봐야 할 때라고 여겼다.


미완의 그릇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독특하고 고유했던 23년을 되돌아보았다.


 




23년은 관계와 일이 강도가 비교적 높았다.


동강 난 관계의 파편에 뚝뚝 피를 흘리며 엄살을 부리기도 했고,

이를 만회하느라 꽤 많은 에너지를 소요하기도 했으며,

한 땀 한 땀 이어 붙이는 시간이 만만치 않아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느슨하지만 깊이 있는 영감과 자극으로 나를 북돋우던 새로운 경험 속에서

문화예술기획자로서의 시도와 실패, 조언, 자괴감, 기타 등등 무수히 많은 감정과 생각들

이와 자글자글 엮여 나를 움직이게 해 주었던 도저히 정체 모를 투명하고 진득진득한 그 무언가가

스스로를 기절 직전까지 몰아가는 아찔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본디 과하게 애써봤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단 하나도 없다는 소신하에

인연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과학스토리텔러로서의 배움에 도전했는데

어찌어찌 위기를 모면하며 새로운 학문의 매력에 흠칫한 것은 물론이고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새로운 호기심 고리의 악순환에 빠지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중에서 갈다책방과 최재천 교수님이라는 아찔한 존재의 매력을 알게 된 건 매우 유쾌한 일이다.


이러한 것들을 이고 업은 나는 본캐에 있어

색다른 방향을 모색하고 더욱 예의를 갖추어야겠다는 생각과 다짐을 하게 되었으며,

앞의 모든 경험들이 나의 본업을 위한 로드맵 또는 바탕이 될 것이라는

확신과 태도를 지니고 있다.


전반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 해 나가야 할 것들이 구분되지 않고

덥석 덥석 치러내듯 하다 보니 결과에 대하여 만족할 상황은 아니지만

내년에는 올해에 이어 더욱 밀도 있게 무언가를 꾸려가야 하겠다는 막연한 계획에

불면의 밤이 며칠간 지속되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즐겁다.


아직은 서투른 관찰자이지만,

내년에는 올해에 이어 나 특유의 예민함을 발휘하여

고유한 생존방식을 꾸려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너무 작은 일에 의미 부여하지 말고,

상처받지 않을 것이며,

애당초 자신이 없으면 바로 시동을 거는 일을 삼가려 한다.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를 소심한 궁리이지만

그나마 내가 믿고 의지하는 브런치에 나름의 결심을 적어본다.

작심 3시간의 잊혀질 결심에

내년에는 쓰는 나를 찾아갈 것이라는 다짐 역시 꾹꾹 새겨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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