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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Feb 01. 2022

가로등 아래의 소년들 9

나는 다시 돌아가도 너를 선택할 거야

그런 아이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와서 배가 고프니 밥을 주세요라고 할 때,

배가 고파 요리를 해야겠으니 재료를 사주세요라고 하는 애가 있었고


선생님 심심해요라고 할 때,

선생님 저 시험 기간인데 공부 도와주세요라고 하는 애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저는 형편이 어려우니 그냥 고등학교 자퇴할래요라고 할 때

고등학교 학비를 지원받는 장학금을 알아보려고 해요 장학금 신청서 쓰는 것 좀 알려주세요라고 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위치를 냉철하게 판단하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지만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려 노력하며

자기 발전에 대한 긍정적인 욕심이 많고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렇게는 되지 않겠다

내가 지금은 힘들지만 잘 되고야 말겠다

라는 응원해주고 싶은 야망을 가진 소년이었다.


그리고 열여섯 소년이 나는 기필코 잘 자라고 말겠다고 나에게 말없이 꾸준히 무언의 외침을 하기에,

나도 그럼 나는 너를 믿겠다라고 하고 계속 믿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엄마의 잔소리가 짜증 난다는 옆 친구의 평범한 투정에, 내가 엄마가 있었으면 나는 너보다 훨씬 엄마한테 잘할 수 있었다는 짜증을 부리고는 했다.


학원 가기 싫다는 옆 친구의 투정에,

나는 학원 한 번만이라도 가고 싶다, 내가 학원을 갈 수 있었으면 내가 너 시험 성적으로 이기고도 남았어라고 이를 갈고는 했다.


그 아이는 무서우리만치 똑똑했다.

정말 충격적일 만큼 그랬다

냉철하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판단하고 정말 그대로 실천했다.

너의 인간관계는 지금 위험하다라고 말했더니

다음날 정말 모든 페이스북의 쓰레기들을 차단하고 친구들을 정리해서 오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똑똑했고 나의 조언에 굉장히 민감했다. 그 아이는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방향, 메시지, 말, 분위기, 태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했고 자신의 생각에도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기면 나의 말들을 거침없이 수용하고 매섭도록 실천했다.


몇 년 후 그 아이가 나도 잊어버린 말들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해주며 그대로 살아온 것을 깨닫고, 나는 내가 신중하지 못했을 수 있었던 부분에서 미안함과, 내가 한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중요성과 무게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아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교사인 나 조차도 성장하게 했다. 정말 똑똑한 아이다.


모두가 나에게 이 아이는 완고하고 이기적인 나쁜 아이이니 포기하라고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그럴 수 있고 또 그래야 했을 거다.

그런데 나는, 이 아이가 나의 말대로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버렸는지 알고 있어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아이가 선택하도록 한 것에, 그 아이가 선택하고 있는 것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그 아이를 선택한 것에 책임을 져야 했다.

대신, 마치 내 마차를 타기 위해 15년간의 정든 모든 짐을 버리고 내 마차에 올라탄 사람처럼, 나는 그 아이가 올라탄 이 마차에서 그 아이를 중간에 내버리지 않고, 착하고 도덕적이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 되는 목적지까지 끌고 가야 할 책임감을 느꼈다.

그 아이가 이기적이고 완고할지라도, 나는 그 한 인간이 많은 것을 감수하며 나를 따라주었으니, 반드시 이 아이가 이타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 아이는 나를 포기하지 않아서, 나도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다행히도 그 아이는 영리해서, 내가 알려주고 싶었던 따뜻한 마음을 잘 스스로 배워갔다.

어떤 것들은 내가 가르친다고 아이들이 배워가지 못한다.

나는 도울뿐이고 배움은 그 아이의 몫이다.

특히 마음은 더욱 그렇다.


이제 그 아이는 새로운 아이들을 내치지 않는다. 마음에 안 드는 친구들을 함부로 하지도 않는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가 그 아이를 나의 마차로 황금의 성에 데려다 주지는 못했어도, 일단 진흙탕에서 햇살 좋은 다른 사람들이 모인 광장까지는 데려왔다고 자부한다.


그 아이는 교사들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을 쓴다. 그러면 그 아이도 응당 소중히 여김을 받고 마음을 받는 게 맞다.


내가 가장 오랫동안 5년간 꾸준히 볼 수 있었던 아이였다. 주변 때문에, 혹은 아이들이 나를 포기해서, 등등으로 오래 봐야 함에도 그럴 수 없었던 아이들이 많았다. 이렇게 주의 깊게 한 아이를 오래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이 아이가 덜컹거리고 미숙한 초행길 운전의 내 마차에서 고생을 하면서도 스무 살까지 함께 와주어 한 사람의 사회인이 되어주어서 참으로 고맙다.


이 아이는 욕심을 갖고 힘든 상황에서도 잘 되고자 노력했고 해냈다. 나는 이 아이가 이 힘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처럼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행복하게 살아나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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