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잘 될지도 몰라.
나는 매사에 조심성이 많고 겁이 많은 사람이다. 나의 브런치 글을 지속적으로 읽으신 독자님들은 유리멘탈처럼 부서질 것 같은 나의 성향을 잘 알고 계시는데 그런 내가 이러다 잘 될지도 모른다는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오는 발칙한 상상을 할 때가 있었다.
워킹맘이 되고난 후 몇 달동안 모은 돈으로 노트북을 장만한 그 날 밤 월급 부심에 도취되어 나는 미래일기를 썼다.
1년 뒤 나는 OO 강의를 하는 강사가 된다.
>> 실제로 퇴사를 해서 프리랜서 강사가 됨.
___뒤 나는 ____분야에 책을 출간하는 작가가 된다.
>> 출간은 아니지만 브런치 작가가 되어 브런치 북을 만듬
___뒤 나는 온라인강의를 한다.
>> 실제로 기업교육을 하며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고있고 VOD도 직접 제작해서 제공한다.
___뒤 나는 나와 같이 다시 일하고 싶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커리어 강의를 한다.
>> 실제로 커리어강의를 하게 됐고 다음달에는 스튜디오에서 라이브 강의도 진행한다.
당시 나는 입사한지 4-5달 정도 되었고 업무가 비록 나와 맞지 않았지만 월급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구체적으로 1년뒤에 무조건 퇴사를 해야지! 라는 대단한 결심도 계획도 없었다. 노트북을 사고나니 오랫동안 갖고싶었던 놀잇감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그냥 좋았다. 내 돈으로 산거라서. 그래서 일기에 적는 건 내 마음대로니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적어내려갔다. 니가 감히? 라고 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 미래일기를 썼다.
대략 1년 반뒤에 나는 어떻게 됐을까?
7개의 목록 중에서 4개의 일이 이루어졌다.
이정도 확률이라면 1-2만원을 내고 보는 타로점보다 확률이 더 높지 않은가? 나 스스로도 너무 놀랐고 어떻게 내가 이렇게 됐을까? 뭐지? 시크릿에 나오는 말처럼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설명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잃어버린 나를 찾고싶어서. 워킹맘이 된 케이스가 아니다. 그 어떤 동기부여도 생존이라는 이유보다 더 클 수 없었다. 언젠가는 해야지.. 라고 막연하고 두루뭉술했던 내가 한달 반만에 취업을 하고 1년 4개월 뒤부터 프리랜서가 되어서 강의를 했던 건 지켜야 할 자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사람들에게 말했다. 성장? 이런거 모르겠고. 나는 돈을 벌어야한다고. 남들은 집을 산 대출금을 갚는다는 말을 했지만 나는 집도 없었기 때문에 대출금 이자를 상환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한숨도 부러웠다.
보통 사람들은 왜 일하냐고 하는 말에 의외로 이렇게 절실함을 담아 돈을 벌어야 한다고 바닥까지 꺼내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나는 실제로 돈을 벌지 않으면 몇 달 뒤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에 있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여유롭고 너그럽기 보다는 사람이 악착같아지는 면이 생겨서 둥글둥글 능글 능글한 유머가 바싹 바싹 마르게 된다.
무심결에 지난 일기를 펼쳤다가 나는 당시 내가 써놓은 미래일기 목록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 뭐야?
이거 내가 다 얼마전에 이룬건데?
하며 사실 확인을 하고 소름이 돋던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이러다 잘 될지도 모른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긍정의 최대치를 끌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처럼 마음이 힘든 날 기대고 비빌곳이 필요한데 아무것도 없을 때면 에버노트의 미래 일기장 카테고리를 열어서 글을 쓴다. 알콜의 힘을 빌려 쓰라린 마음을 꺼내며 취중 진담을 늘어놓는 사람들 처럼 나는 글의 힘을 빌려 누구도 읽지 못하고 누구도 댓글로 " 님, 꿈좀 깨세요. "라는 말을 남길 수도 없는 나만의 공간에 마음껏 적어본다. 연도와 날짜도 아주 구체적으로.
몇 가지 이루지 못한 목록들은 주로 집에 관한 것들이다.
몇 월 몇 일 OO 동 OOO 아파트를 __억__천만원에 계약하고 거실에는 OO브랜드의 널찍한 테이블을 놓는다. 그 곳에는 7살이 된 써니와 내가 있고 써니는 깔깔 거리며 뛰어다니다가 "콩콩대면 아랫집에서 올라온다"고 사뿐 사뿐 다니라고 나의 잔소리를 듣는다. 테이블에는 마시멜로가 퐁당퐁당 녹아 있는 따끈한 코코아가 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이었으면 이렇게 까지 글을 쓰고 사진도 찾아서 붙여놓았을까?
그 속에서 나는 얼마든지 행복했다. 정말 이루고 싶었고. 그렇게만 되면 정말 더 바랄게 없을만큼 워킹맘이 될 때 나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비록 여전히 이루지 못한 것들이 있지만, 당시 나의 직업적인 성격으로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어쨌거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미래일기에 써놓은 섬세한 장면들이 나를 용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되고싶고 바라는 것들을 이정도로 구체적으로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마음속에 그것을 향한 마음이 깊이 뿌리내려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예전에 대구 교보문고에서 언어의 온도를 쓰신 이기주 작가님을 만났다. 책을 모조리 들고가서 사인을 받았는데 작가님은 정말 오랜 시간동안 독자 한 사람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셨다. 당시 나는 글을 이렇게 진지하게 쓰지 않았음에도 작가님께 약속을 했다. 작가님. 저 꼭 내년에 책 낼거에요. 제목은 _________ 에요. 라고 베스트셀러 작가 앞에서 밑도 끝도 없이 약속을 했다.
비록 브런치북 하나를 완성했지만 나는 처음으로 오랜시간 정성들여 글을 쓰고 하나의 결과물로 만드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글을 쓸 때 마다 작가님은 전혀 기억조차 없으실 약속에 대한 책임감이 나에겐 있었던 것 같다.
반만 지켜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글쓰기와 책쓰기의 내공이 깊으신 스테르담 작가님의 공지를 보고 팀라이트에 합류했다. 미래일기의 구체적인 상상이 이토록 무섭다.
최근 2주일동안 나는 굉장히 힘들었다. 아이의 아빠가 없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도움을 주시는 친정엄마가 아프시면서 아이를 챙기며 일을 하다보니 집에서 순수하게 일하는 시간이 3시간정도 나왔다. 내 마음대로 진도가 안나가니 울화통이 터졌다. 왜 나는 혼자서 아이도 키워야 하고 주말에는 아빠역할까지 얹어서 아이와 놀고 생계도 걱정해야 하고 아이의 홈스쿨링도 해야하는걸까?
자기발견을 하는 마지막 주간에 모든걸 다 그만두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매일같이 내 글에 지속적으로 힘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나는 그분들에 대한 책임감때문에 나는 다시 미래일기장을 열었다.
대략 2년 전의 내가 했던 것 처럼 미래 일기를 쓴다. 아주 구체적으로
이보세요, 강사님 꼴에 이런 커뮤니티에 어떻게 들어가시겠어요? 하고 놀림을 받더라도 내가 받은 고마운 응원에 나는 책임감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싶어서 나를 놓지 않는 결정을 한다.
많이 부끄럽지만 1-2-3년 동안 나에게 생길 많은 일들을 상상해서 신나게 적어본다.
이게 말이 돼? 음.. 음..
그럼 안될 건 뭐지?
혹시 모르잖아요.
이것 보다 제가 더 많이 잘 될지도 몰라요.
적중률이 60%가 넘는데
그걸 왜 안해요?
10개 쓰면 6개가 맞아떨어지는데
그래도 안하실래요?
타로를 보느니
차라리 미래일기를 쓰겠어요
진로의 갈림길에서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한 참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