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항상 그릴 꽃이 없어서 '동네꽃' 그림과 글은 봄이 오기 전까지는 쉬어야 했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겨울꽃을 그려본다.
그림의 주인공 하얀 히아신스를 만난 건 그당시 살던 동네 카페에서였다. 겨울이라 화초들이 카페 안쪽에 다 들어와 있었는데, 짙은 벽 색깔 때문인지 흰색의 히아신스 꽃이 유독 눈에 확 들어와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예쁜 꽃은 그냥 둘 수 없지!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림의 소재가 된 히아신스. 2017.2.22. 예전 살던 동네 카페에서 촬영.
실제 이 사진을 2월에 찍긴 했지만 보통 히아신스는 1월부터 꽃이 핀다고 하니, 1월의 꽃으로 그리기로 했다. 2월의 꽃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안타깝게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히아신스가 있던 이 카페는 나에게 특별한 기억이다. 지금은 이 동네에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지만 당시에는 동네에 처음 생긴 카페였고 우리 아파트 상가 1층에 이렇게 예쁜 카페가 생기다니! 하면서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동네에 처음 생긴 카페. 2016.5.18. 촬영
늙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더니, 내가 그렇다. 벌써 3년째 살고 있는 지금 동네도 좋지만 예전 동네가 그리울 때가 많으니 말이다. 회사를 그만둔 것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지금은 소중한 인연이 된 사람들과 만나서 함께 그림을 그리던 추억도 모두 그곳에서였다.
2018.5.1. 옛 동네에서
대모산 아래, 낮은 언덕에 자리한 이 동네는 공기 좋고 햇살도 좋았지만 하늘을 가리지 않는 낮은 층고의 오래된 아파트여서 더 정감 있고 따뜻했던 것 같다.
옛 동네 모습 (2015.10 ~ 2019.7)
워낙 다이내믹한 한국에 살아서 오래전에 살던 집이 그대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특히 서울의 아파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20년 넘게 어린 시절을 보낸 추억의 동네도 재건축으로 그 모습이 사라진 것처럼,중년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이 동네도 언젠가는새로운 모습으로 바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가슴이 저릿하다. 왜 이리 감성이 돋는지 모르겠다. 필라테스를 하러 매주 갔던 옛 동네인데 작년(2021년) 봄부터 못 가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옛 동네의 추억을 소환시킨 '히아신스'의 그림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야겠다.
예전 글에서 노란색 꽃이 난도가 높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흰색은 그보다 난도가 더 높다. 그래서 아직 수채화로는 도전을 못 해봤고 색연필로는 이번이 세 번째인데 그중에는 이번이 최고 난도인 것 같다.
2021.12.28. 아웃라인 스케치와 약간의 밑색 채색 후
연필 전사 작업 후 흰 꽃은 회색으로, 잎은 초록색으로 아웃라인을 그려놓고 잎만 먼저 밑색을 칠해놓았다. 이렇게 해놓으면 연필 스케치가 지워지지 않아서 이후 세밀한 채색 작업을 하기에 용이하다.
꽃잎들은 두 단계의 회색 색연필을 이용하여 음영을 표현한다. 항상 하는 잔소리이지만 색연필은 최대한 뾰족하게 깎아야 세밀한 표현이 가능하다. 특히 흰색 꽃은 더 그렇다. 너무 시커먼 꽃이 되는 건 아닌지 계속 걱정하면서 꽃을 그렸다. 역시 흰 꽃은 어려워! 어려워! 를 외치면서..
2022.1.24. 히아신스 잎 그리는 중
완성 후에는 사진을 찍는데 이틀을 소비했다. 흰꽃을 제대로 찍기 위해 며칠 전에 구입한 조명을 사용했는데도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흰 꽃은 그리는 것보다 사진 찍는 게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자연스러운 게 좋아서 자연광으로 그냥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다음날 조명 빛으로 다시 찍어 올리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원래 이렇게 사진에 목메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흰 꽃은 정말 까다로운 놈이구나! 하다가도 내 그림실력을 탓해야지! 카메라를 사야 하나? 조명을 하나 더 사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조명을 사용하고 폰카메라의 수동 기능을 이용하여 그나마 조금 나은 사진을 얻어내기는 했지만 사실 아직도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심지어 포토샵의 힘을 빌어 원 그림에 가까운 색으로 보정을 했지만 So 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