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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 Jun 20. 2019

고기 구울 줄 모르세요?

그때는 알지 못했던

   

   회사 앞 생고기로 유명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회사란 좋은 일이 있어서, 나쁜 일이 있어서, 아무 일이 없어서 아무 이유나 붙여서 회식을 하고 흔히 말하는 ‘번개’ 모임도 갖는다. 이유는 대부분 중요하지 않다. 그저 모일 명분이 중요할 뿐이다. 회사에서 보내는 하루는 인생의 축소판인지 8시간 정도 근무 하지만 늘 가득하게 이야깃거리가 생산된다. 일터에서의 하루도 희로애락과 기승전결이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전개가 깔끔하게 완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고 이런 회식 자리에서 조금 더 많은 알코올을 혈관에 주입하길 마다하지 않는다.  


   오늘도 중요하지 않은 아무 이유를 대고 사람들이 모였다. 이곳은 회사 앞에 있는 생고기(및 된장 라면이 유명한) 식당인데 입맛이 정말 예민하셨다던 예전 대표이사님도 단골로 찾으실 정도니 맛은 보장되어 있다. 사실 난 입맛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해서 뭘 먹어도 맛있다고 하는 사람이라 사람들은 나에게 맛집을 물어보지 않는다. 맛이 없다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 그렇기에 조금 더 비싼 생삼겹과 일반 삼겹의 차이를 잘 모르겠지만 앞에 앉은 동료가 열심히 구워주니 열심히 먹는다. 짧은 몇 년간 반찬에도 변화가 있어서 추가로 시키면 두어 번 이후로는 돈을 받았던 명이 나물이 이제 흔한 콩나물 볶음(물론, 먹으면 키가 크는 소중한 반찬이지만) 나오듯이 한 번에 많은 양으로 계속 리필된다. 그렇게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이야기를, 저무는 하루를 몸속으로 밀어 넣다 보니 이런저런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참고로 난 고기 굽기에 소질이 없다. 누가 구워주거나 이미 구워서 나오는 음식을 좋아한다. 고기 굽기에서 원시시대 남성 역할까지 찾아 올라가는 사람이 있고 그걸 곧 남자다움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그럼 난 차라리 남성성이 없는 것으로 하고 싶을 정도로 고기 굽기는 번거롭고 번잡하다. 불판 올리고 거창하게 먹는 식사보다 깔끔하게 개인 그릇에 딱 나오는 음식을 좋아하다 보니 굳이 고기 굽기를 단련할 시간도 잘 만들지 않았다. 불에 굽는 그 과정의 결과물이 사람마다 얼마나 다를까 싶은데 꼭 그 차이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뭘 먹어도 딱히 실망하지 않는 나는 어떻게 구워도 맛있게 먹기에 내가 구울 때도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해주길 바란다. 어차피 요즘 판매되는 돼지고기는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기에 바짝 익히지 않아도 건강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하니 취향대로 적당히 익혀 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나도 신입 시절에 감히 선배가 구워주는 고기를 가만히 앉아 받아먹을 담력은 없었고 어떤 테이블을 가도 막내였기에 회식 장소에 가면 그들을 먹이기 위한 도구(집게와 가위)를 얌전히 집어 들어야 했다. 설령 너그러운 선배가 직접 굽겠다고 해도 ‘아휴~~ 제가 굽겠습니다.’라며 집게와 가위를 뺏어야 했고 두어 번의 아름다운 실랑이 끝에 선배가 집게와 가위를 하사하시는 것이 당시의 회식 풍경이었다. 문제는 내가 고기 굽기에 소질이 없었고 그런 자질을 함양할 생각도 없었다는 것에 있었다. 입맛 까다롭지 않은 나에게 고기 굽기의 기준은 ‘익힘 정도에 따른 맛’이 아닌 ‘익힘 정도에 따른 위험성’이었다. 너무 덜 익혀서 배탈이 나지 않을 정도로만 구우면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문명화된 시대에 돼지고기를 과자처럼 바짝 구워 먹는 것은 어리석다고도 생각했다. 즉, 고기에 핏기가 사라지면 바로 선배들의 앞 접시에 집게 배달을 했고 여기서 인간관계가 대부분 그렇듯이 서로의 기준이 엇갈렸다.  난 맛있게 먹으라고 배달했지만 선배들은 빠르게 다시 불판에 올려서 스스로 굽기를 선택했다. 생각해보면 사람 사이의 엇갈림은 이처럼 찰나에 스쳐 지나간다. 나는 배려는 선배들에게 배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핏물이 사라지면 다 구워진 거니 맛있게 드시라는 나의 배려는 선배들에게 ‘이 자식이 이걸 어떻게 먹으라고!!’로 받아들여졌다.


   고기를 구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굽는 사람은 먹기가 힘들다. 열심히 굽고 자르고 배분하는 과정에서 내 몫을 챙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사람마다 선호하는 굽기의 기준은 너무나도 다르니(완전히 익혀도 누군가는 과자 수준으로 바삭하게 누군가는 바삭하기 직전에 등등) 회식 장소가 고깃집으로 잡히면 난 아스라이 느껴지는 두통 속에 마음의 준비를 하곤 했었다. 하지만 ‘소주’와 ‘폭탄주’를 인생의 동반자처럼 생각하는 당시 부서에서 와인 한잔에 파스타를 먹는 회식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최대한 술을 많이 마시기 위해 고기 1인분이 가장 저렴한 식당을 찾아다녔다.


   그랬던 어느 날의 회식 자리에서 열심히(한 번도 열성적이지 않은 적은 없었다.) 고기를 굽는 나에게 ‘요즘 연수원에서는 고기 굽는 거 안 가르쳐주나요?’라고 물어봤던 과장님이 생각난다. 그때는 철이 없어서 ‘과장님은 배우셨나 봐요?’라고 되받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요즘 생각하면 그 대답이 참 후회된다. 돌아보면 그 과장님은 애당초 남한테 뭐라 싫은 소리 하고 비아냥거릴 사람도 아니었다. 늘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많은 상황에 어찌 대답해야 할 줄 모르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당혹감에서 오는 어색한 미소에 가까웠던 기억이 난다.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학교의 박사 출신 수재였지만 유독 많은 부서를 옮겨 다녔던 그 과장님은 사무실 한복판에서 기가 드센 후배 과장한테도 잔소리를 듣곤 했다. 그때도 그는 그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었던 그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속을 알 수 없었다. 늘 알 수 없는 웃음 뒤에 어떤 고민과 어려움이 있는지 지금도 짐작할 수 없다. 말 많던 대리들이 그의 뒤에서 ‘살얼음판 같은 이 회사가 아니라 학교에서 연구원으로 남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걱정을 빙자한 험담을 하는 것도 여러 번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연수원에서 고기 굽는 거 안 가르쳐주나요?’라는 말은 말수가 별로 없었던 그 과장님의 서투른 농담일 수도 있었다. 그런 형태로 그는 내게 말을 걸고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했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내가 속으로 ‘지금 팔 떨어지게 굽고 있는데 뭐가 어째??’ 발끈했던 것이다. 나의 버릇없는 되받아침 이후 그 과장님은 그 ‘어색한’ 웃음만 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웃음이 떠오르면 미안함이 떠오른다. 할 말도 못 하고 자기 어필도 하지 않았던 그는 늑대 같은 다른 과장들에 밀려 진급도 한번 누락됐는데 축하 회식에 빠지지 않았다. 본인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던 자리에서도 그는 화풀이나 술주정 한번 부리지 않고 그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어쩌면 그릇 크기 자체가 다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부서가 바뀐 이후에는 그 과장님을 보지 못했지만 생각하면 늘 미안함과 후회가 스쳐 지나간다.


   이렇게 꼭 지나서야 깨닫는 것들이 있고 지나서야 깨닫는 진심이 있다. 어떤 상황이든 순간의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경우가 많다. 어떤 진실과 어떤 진심은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것들이 그 순간만을 위한 것은 아닌 셈이다. 지나야 보이는 것들이 있고 서투른 마음과 행동은 후회를 가져온다. 그걸 알면서도 오해하거나 그르치는 감정이 얼마나 많고 순간의 모습만 보고 놓쳐버린 사람이 또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해보면 마음이 아득해진다. 그런 후회를 줄이려면 결국 지금에 집중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두 번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난 과연 그러고 있을까? 이런저런 실수를 많이 하고 살아가지만 지나온 세월만큼 매일 조금씩은 현명해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고기를 다 먹고 식당 밖으로 나오니 여름으로 접어드는 저녁에도 바람이 선선하다. 문득 그 과장님이(물론, 예전에 이미 진급하셨겠지만) 요즘도 그 ‘어색한’ 웃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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