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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 Jan 29. 2021

쓰면 안 되는 글

마음처럼 되지 않더라


쓰면 안 되는 글


제목이 낚시적인가? 하지만 진지한 생각의 결과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나는 이런 글을 쓰지 않겠습니다.' 되겠다. 물론, 브런치 인기 글들의 여집합에 속해 있는 나의 글을 누가 그리 관심을 가지고 봐주겠냐마는 적어도 스스로 다짐한 것들은 있다는 의미다.


그럼 무엇일까?


간단하다. 어떤 깨달음이나 성찰을 충고하는 글을 쓰지 않을 예정이다. 브런치도 그렇고 서점에 가도 어떤 삶의 성찰을 얻고 그걸 알려주는 글이 넘쳐난다.  역시 그런 글을 여럿 썼다. 힘든 날에 스스로에게 하는 말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충고하는) 말들이 되겠다. 사실, 그런 글은 얼마든지   있다. 살면서 경험한 일들이 있고 피상적으로나마 취득한 좋은 말들, 생각, 태도 등등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것들을 자신도 모르게 글에 녹여 쓰는 일은 아무나   있다.


문제는 깊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고  언행일치의 삶을 '유지' 나갈  있느냐다. 물론,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그런 경지에 올라야만 누군가를 다독일  있는 글을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생의 매운맛은 단계가 여러 가지라 이번 매운맛을 이겨냈다고 다음 매운맛을 역시 이겨낼  있다는 보장은 없고 그렇다고 이전에 얻은 깨달음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장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이 말로만, 글로만 성찰을 이야기하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영혼 없고 실천이 부재한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감화를 주고 얻어걸리듯이 도움이  있겠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 '사기꾼'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설익은,  뿐인 글은 쓰지 않기로 했다. 정정한다. 적어도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쓰지 않기로 했다.


최근이라고 해야 하나? 좋은 말들을 그렇게 많이 하신 유명한 모스님이 당장 자신에게 벌어진 폭로전에 요즘 말로 '빤스런' 해버렸다. 그런 성찰을 갖고 계신 분도 정작 본인의 옷이 타기 시작하면 어찌할  모르게 되는  사람인데 하물며  같은 평범한 사람이 무슨 깨달음과 성찰을 이야기하겠나


계기를 말해본다면 지난 20년은 코로나 19라는  세계인의 고통 교집합 말고도 개인적으로도 꽤나 혼란스러운 1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생활이 정말 녹록지 않았다. 몸이 힘들었다기보다는(단순해서 몸이 힘든 상황에는 금방 적응한다) 정신적으로 지치는,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는듯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닥쳐왔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넋이 나가는 느낌으로 정신이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앞의 현실은 멀미가 나는데 내가 그동안 체득하고 내재화했다고 믿었던 깨달음, 나를 다잡는 기술들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여러 책을 었고  안에서 세상을 배웠으며 요동치는 에서도 충분히 배워왔기에 이론과 실무를 모두 갖춘 인재(웬만한 일로는  하나 깜짝  하는?)라고 생각했으나  헛일이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의 진면목과 깊이가 나온다고 한다. 내가 발견한 나의 그것들은  기대에 한참 모자란 수준이었다. 여기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들이 나를 괴롭혔는지 쓰는 것은 시간 낭비 같고(그건 나중에 한번) 너무도 빠르게 변해가는 좁은 황들 속에서 ? ? 멀미를 하다가 어느 순간 우웨에엑 하며 구토를 하고 넋이 나갔다고 표현하면 적당하겠다. 반복되는 매를 견딜 사람은 없지만 과연  매가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이리 아픈지에 대한 의문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평균적으로 얼마나 '강한가' '약한가' 따지는 자신을 보며 이게 곧 내가 지쳤다는 신호라고 아직 생각했다. 삶에서 마주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마음의 크기와 깊이에 따라 ‘전부’이거나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다. 작년 1년간 나는 대부분의 것들을 아무것도 아니라 넘길 수 없을 만큼 진이 빠져버렸다.


사람이 모든 형태의 스트레스에 강할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강한  아니라 무감각한 것이며 어떤 스트레스에는 강하지만 어떤 스트레스에는 약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많이 편해졌었다. 나에 대해 관대 해지는 시점이기도 했다. 어떤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할 때마다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했는데 거기서 편해질  있었다. 내가  빠져나오지 못하는 형태의 고민들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이겨내고  구조화해서 빠져나올  있는 고민이 있는 법이며  간극을 좁히며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많은 경우에 감정적으로 한번 크게 털어내면 마음에  남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깨달음이 작년 20년에 휘청였다. 매일 반복되는 이런저런 상황들에 지쳐버렸고 그동안 내가 갖추었던 방어기제들은 무의미해졌다. 별것도 아닌 일에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하기도 했고 평소의 내가 잘 흔들리지 않는 형태의 스트레스에도 술 취한 사람처럼 휘청였다.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별로 없었다.    


긍정적인 면을 찾아본다면 내가 작년과 올해 어떤 성장을 더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고도 하니까. 문제는 아직 나의 땅은 진창이다. 살짝 허리를 숙여 땅을 만져봤는데 손에서 물기 어린 흙이 바스러진다. 아직은 어떻게 땅을 굳게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나는 내 '깨달음'을 더 성숙시키고 언행의 일치를 조금이라도 이뤄낼 수 있을 때까지 어설프게 자신에게,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고 훈수하는 어떤 형태의 글도 쓰지 않을 예정이다. 그 다짐을 남기기 위해 오늘 글을 썼다.


혹시라도 내가 또 정신 못 차리고 빠른 시일 내에 삶의 대단한 깨달음을 체득한 듯한 글을 쓴다면 바로 댓글로 말씀해주시라.  '어허?????' 정도면 적당하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에서 마침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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