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 『태도에 관하여』
책을 한 차례 읽고 나서 밑줄을 친 부분을 다시 한번 찾아봤다(전자책은 이런 면에서 아주 편리하다). 밑줄 친 페이지 네 쪽 중 세 쪽이 일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하루 대부분의 생산적인 시간을 내가 직업으로 하는 일에 투입하는데 내 마음과 열정이 그곳에 없어 빈껍데기처럼 일한다면, 그만큼 충족되지 못한 마음과 열정을 다른 곳에서 어떻게든 해소시켜줘야 한다. 그러려면 사생활이 정말 재미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사생활을 재미있게 하는 게 더 힘들어 보인다.
영감이 떠오르든 말든 일단 정해진 시간에 책상에 앉는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일을 어디서 하더라도 일의 본질은 같다.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고 , 사람들과 조율할 줄 알아야 하고, 규칙을 따라야 하며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사회 생활을 시작한 지 작년 12월로 만 4년이 지났다. 퇴사 각을 요리 보고 조리 보는, 외롭지만 귀엽지는 않은 5년차 직장인이다. (※이 글을 브런치에 정리하고 있는 지금은 어느덧 7년차가 됐다) 배 둘레에는 햄이 한 장 생겼고 학생 시절부터 개척의 야욕을 드러내던 다크서클은 나날이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일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고 자아가 실현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가끔씩, 아니 종종, 아니 꽤나 자주 '이딴 소리 듣느니 그냥 때려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퇴사 또는 이직 계획을 구체적으로 짜고 있느냐"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지 못한다. 일단 회사를 나와서 갈 데도 마땅치 않다. 설령 생계 걱정이 없다 한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그 시간에 취미를 즐긴다면 나는 과연 충분히 행복해질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 기대와는 달랐지만 소소한 파란만장을 겪으며 4년을 버텼다. 직업적으로 나름의 주관과 기준도 세웠다. 퍼포먼스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그거라도 해내기 위해 고민했던 시간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런 태도 때문인지 연말에 만났던 한 후배는 나를 'denial lover'라는 묘한 호칭으로 지칭했다. lover가 적확한 표현인지는 의문스럽지만.
개인적으로 에세이를 즐겨 읽지 않는다. 에세이 저자마다 삶의 관점과 상황이 서로 다르고, 설령 배울 점이 있더라도 내가 그 저자의 관점을 그대로 이식해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태도에 관하여'를 읽으면서 임경선 작가의 '일'에 대한 서술에는 공감이 많이 갔다.
나는 100년 가까이의 수명을 놀고 먹으면서만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럴 돈도 없지만 무엇보다 그런 스스로에게서 의미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정한 루틴 속에서 반복적인 노력을 거듭해 어떤 성취를 달성할 때(혹은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그 결과로 보수를 받아 자신의 편익을 증진시킬 때 나는 안도하게 되는 것 같다. 말이 너무 어렵다고? ㅅ발 ㅅ발 욕하면서 꾸역꾸역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아서 치킨 한 마리 시켜 먹을 때, 그래도 나는 밥버러지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라는 떳떳함을 느낀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성실한 사람들이 부럽다. 특별히 눈에 두드러지는 퍼포먼스를 내지 못하더라도, 항상 자기 자리를 지키며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들. 퇴근하고 나서는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내일 해야 할 일을 미리미리 준비하는 사람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자기 자신의 향상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들.
나는 성실한 사람일까?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못하겠으면 때려치는 것도 방법이지만 아직은 버틸 만하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또 모르지, 나름 만족할 수 있을지도.
※20240406 추가: 비교적 최근에 이 책을 다시 읽을 일이 있었는데, 임경선 작가는 일뿐만 아니라 연애에 있어서도 퍽 성숙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연애가 잘 풀리지 않는다고 느낄 때 한번쯤 꺼내 읽어보면 번잡한 마음을 다스리기 좋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