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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멋대로 Feb 07. 2024

폭언

2. 회사와 나, 우린 제법 안 어울려요

사무실이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 타닥타닥. 딸깍딸깍. 건조한 타건음만이 공중을 떠돈다. 고개만 정면에 고정한 채 괜히 사방을 한 번씩 검은자위로 찔러 본다. 침묵 속에는 늘 불안이 도사린다. 사무실은 안개 자욱한 정글이고 맹수 그득한 사파리다. 방심하는 순간 어떤 돌발상황을 마주하게 될 지 모른다.




“야, 아니 내가 몇 번을 얘기하냐. 니들이 볼 때는 이게 괜찮아 보이냐?”




그렇지. 어김이 없다. 살얼음장 같던 고요가 일순간 파삭 깨진다.




“하 답답하네. 이렇게 한다고 사람들이 그걸 보겠냔 말이야. 니가 손님 같으면 여기 와가지고서 이거 보고 앉았겠냐고. 관심도 없지 온 사람들은. 나 같아도 안 봐. 아이, 일을 왜 그렇게 하냐들 진짜. 답답하다 정말 내가 아주.”




고성이 사무실을 쩌렁쩌렁 울린다. 대표실에서 나오는 소리다. 대표실과 내 자리 사이 거리는 1미터 이내. 말 그대로 코 앞이다. 대표 특유의 아니꼬운 억양과 새된 소리가 귀에 곧바로 꽂히는 거리다. 그 안에서 혼나는 게 누구든 간에, 마치 내가 욕 먹는 듯 기묘한 체험이 가능하다. VR이 따로 없다.


연신 쯧쯧대던 소리가 아주 잠깐 멈춘다. 갑자기 대표실 문이 확 열린다. 탈탈 털린 보고자들을 등지고 대표가 문간에 우뚝 섰다. 시선은 우리 층 전 직원을 향해 있다. 이윽고 입을 벌려 뚜다다다다, 입으로 총을 쏘기 시작한다. 조정간 ‘연발’에 둔 무분별한 난사다.




“야, 너네들 잘 들어. 너네같으면 이따우로 만들어놓은 거 쳐다보기나 하겠냐? 실무자들이 일을 이렇게 해서 어쩌자는거냐 진짜. 니들 일 이렇게 하면 아무것도 안돼. 그리고 내가 몇 번을 얘기하냐. 대기업 따라하는 쓸 데 없는 짓거리들좀 하지 말라니까는. 뭔 보고서를 쓰고 어쩐다고 매번 시간을 다 잡아먹고. 우리는 속도로 가야 된다고 그렇게나 얘기를 했는데 듣지를 않냐. 회사에 사람만 쓸 데 없이 늘어나갖고서는 속도는 하나도 안 나. 회사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냐. 에이 씨. 미안한 얘기지만은 너네는 점심 밥 먹는 시간도 아껴서 일 해야 돼. 이래갖고선 될 것도 안 돼. 아이씨 답답해 죽겠네 정말…”




대표가 쏴댄 탄환은 진탕에 바싹 엎드려 몸을 질질 끌며 각개전투를 벌이던 실무자들 사이에 피잉 날아들어 땅에 푹 푹 박힌다. 정확히 누구를 향해 뱉는지도 모를, 화풀이에 가까운 대표 개인의 사자후를 소속 직원이라는 죄로 한 층에 자리한 서른 명 남짓한 인원이 모두 가만히 듣고 앉아 있다.


영문 모르게 뒤통수를 향해 날아오는 총알 세례를 의식하면서도 그네들은 재수 없게 총알에 맞을까 벌벌 떨면서 움직임을 멈추고 대기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나 자신도 그 중 하나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여기 있는 모두의 신세가 참으로 가엾다는 연민이 문득 인다.


몇몇은 와중에 조준 사격을 당한다. “O 이사, 그래 안 그래? 내가 몇 번을 말하냐 진짜. 응? 계속 그렇게 할 거야?” 50대에 접어든 임원도 예외 아니다. 물론 가장 큰 상처를 입을 사람은, 앞서 욕 들어먹고 있던 실무자들일 것이다.


이들도 최소 팀장 직책을 맡은 차장 부장 급이지만 열 받은 대표는 사정 봐 주지 않고 저잣거리에 목 걸듯 효수하기를 주저않는다. 망신주기식 화법과 폭언, 무차별 폭격은 대표의 전매특허다.





한두 번이 아니다. 처음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입사 초기에는 대표를 마냥 유쾌하고 ‘사람 좋은’ 인물이라 생각했다. 실제 모습은 기대와 상당히 달랐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면전에 대고 막무가내로 호통치고 화를 쏟아냈다.


보고 배운다고, 사내에서 적당한 입지를 가진 인물들 역시 대표와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특히 10년 가까이 근속한 회사 내 핵심 인력들은 대표의 행동거지를 쏙 빼다 닮았다. 본인들은 하나같이 이를 모르는 눈치였다. 혹은 부정했다. 자신은 그와 다른 듯, 자애롭고 자비로운 듯 대표의 일화를 유머로 소비하며 선을 그었다.


힘 없는 3자가 볼 땐 대표나 저들이나 매한가지인 부류다. 아닌 척들은 열심히 하지만, 뜯어 보면 모든 사안을 힘의 논리로 정리하고 밀어붙이는 안하무인의 태도를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다. 아주 잘 보고 배운 우등생들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팀장 역시 이에 해당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근속 2주년을 몇 달 남기지 않은 때였다. 회의 중에 팀장과 내가 대립각을 세웠다. 한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이견이 생겨서다. 해당 프로젝트는 내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내가 반 년 이상 전담하여 맡던 월례 업무다. 매달 기획 및 사전준비, 현장 세팅과 진행까지 주도적으로 맡아 거의 원맨쇼로 풀어 나가던 행사였다.


쟁점은 프로젝트의 운용 방향성이었다. 기획 초기부터 나는 'A안'을, 팀장은 이와 정 반대 결을 가진 'B안'을 밀었다. 처음 시작하던 반 년은 팀장 뜻대로 B안을 따랐다. 말할 것도 없이 애초에 내 의견은 힘을 가지지 못했다.


시키는 대로 해 나갔지만 불만이 컸다. 내가 판단할 때는 전혀 의미가 없는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독에 밑이 빠져 있는 게 분명한데 이를 모른 척하고 거기다 열심히 물을 퍼다 붓는 기분이 썩 좋지가 않았다.


반 년 후, 중간 점검을 했다. 해당 프로젝트에 가장 책임이 큰 실무자로서 B안이 가진 문제점을 다시 조목조목 짚었다. 실은 모두가 느낄 정도로 또렷한 한계가 보였다. 팀장 역시 공감했다. 이때다 싶었던 나는 A안을 다시 강하게 어필했다. B안을 포기하고 이를 채택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을 늘어놓았다.


설득 결과는 성공. 내가 생각한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운용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A안으로 두 차례 정도 진행해 본 결과 반응이 꽤 좋았다. 이대로만 조금씩 정체성을 확립해 가면 확고한 모델을 가질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고무적이었다. 그런데 팀장은, 회의 자리에서 두 달만에 갑자기 입장을 번복해 버렸다.




“이거는 그냥 다시 B안으로 가자. 그게 맞을 것 같아.”




단 꿈을 꾸던 내게 다시 날벼락이 떨어졌다. 애써 방향을 바로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이곳에서 팀장 정도면 한 순간에 결정을 뒤집는 독단을 내릴 만한 힘을 가진 존재다. 별다른 논거도 필요 없다. ‘그냥’ 이면 충분하다. 내가 결정을 내렸어. 그럼 이유 불문하고 그냥 따라. 너, 뭐 돼?





순간적으로 강한 반발심이 일었다. 나는 내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여 설득하려 하는데, 아무리 결정권자라도 딱히 설명이나 설득 과정 없이 힘으로 의사를 결정하려 하는 일이 굉장히 아니꼬웠다. 수 개월을 참고 기다렸는데 이렇게 쉽게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팀장님 저, 아무래도 또 그렇게 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팀장의 의중에 찬물을 냅다 끼얹는 발언을 시작했다. 나로서는 불가항력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B안은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런 한계가 있잖습니까. A안을 유지했을 때 참여자 만족도도 좋았고 이후 프로젝트에 대한 연계성도 있어 이 방향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뭐가 좋았었는지 난 모르겠는데. 그냥 네 성향이 B안이랑 안 맞아서 하기 싫다고 그러는 거 아냐?”




팀장은 뜬금없는 성향 이야기로 내 말을 받아쳤다.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지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의문을 잠시 묻어두고 할 말을 이어 나갔다.




“아뇨 팀장님, 이건 제 개인적인 성향과는 관련이 없고요. 그런 걸 떠나서 B안으로 가면 확장성 없이 우리들만의 잔치가 되기 쉽잖아요. 저희가 이미 해 봤던 것처럼요.”




공방은 한동안 지속됐다. 한 마디 한 마디 첨예하게 대립했다. 말을 섞을수록 상호간의 시각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단순히 의견이 일치하고 않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팀장의 독단적 의사결정에 대한 불만 표출에 초점을 맞췄다면, 팀장은 오냐오냐 해 줬더니 대든다는 감정에 몰입했다.




“야, 니가 그런 식으로 하니까 어? 다른 애들도 너를 고구마 먹은 마냥 답답해 하는 거야.”




잔뜩 격양된 말투로 팀장은 내게 말을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점점 나의 ‘항명’에 대한 일갈에 가까워졌다.




“저도 팀장님이 답답해요.”




나도 한 차례는 지지 않고 맞섰다.




“너 매달 업무 진행할 때 나한테 보고는 제대로 했어? 니 일 똑바로 하고서 이런 말을 하는 거냐는 말이야.”




팀장은 어느 순간부터 아예 논점에서 이탈해 버렸다. 갑작스레 내 업무 태도에 대해 지적하면서 인신공격성 발언을 섞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어떤 식으로 반박을 하든 관계 없이 대들었다는 사유로 폭격이 쏟아졌다. 역사도 유구한 ‘파워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맨날 말도 없이 팀원들이랑 섞이려 들지도 않고. 내가 전에도 너한테 그거 사회성 떨어지는 행동이라 했어 안 했어?”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은 말이 엄청난 고함 소리와 함께 날아들었다. 회의실 밖 누구라도 들을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우선, 그런 말을 전에 팀장 입에서 일절 들어본 사실이 없다. 게다가 아무리 부하직원이기로서니 애초에 내 부모도 아닌 고작 다섯 살 위 회사 팀장에게 들을 만한 말이 아니었다. 명백한 폭언이다.


이 발언으로 두 가지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팀장이 나를 여태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와, 이 치 역시 수가 틀리면 저가 떠받드는 대표처럼 여럿이 보는 앞에서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정확히 이 지점에서부터 나는 입을 꽉 다물어 버렸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해당 발언에 충격을 받기도 했거니와 내가 만약 이 순간 입을 벌리면, 돌이킬 수 없는 말을 뱉어버리고야 말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이 일이 필요했다. 참자, 참자. 꾸준히 스스로를 다독였다. 마지막 남은 내 ‘사회성’을 안간힘을 써 끌어냈다.


팀장은 완벽히 내 기를 눌렀다고 생각했는지, 계속해서 꽥꽥 언성을 드높여 소리치며 나를 깎아댔다. "너 그렇게 잘났어? 그러면 너 혼자 일 해 인사팀에 얘기해 줄 테니까. 어?" 고개를 푹 숙인 채 사람들 앞에서 막무가내로 욕을 들어먹는 자신이 굉장히 초라하고 형편없이 느껴졌다. 슬펐다. 울분에 차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분이 안 풀렸는지 팀장은 나에게 쏘다 남은 화살을 애먼 팀원들에게도 쏟아부었다. 너네도 어쩌고 저쩌고, 이런 잘못 저런 잘못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길길이 날뛰었다. 이 밖에는 그 감정을 나타낼 적확한 표현이 없다. 하나를 모두 앞에서 막무가내로 비난한 뒤에 별안간 다른 모두에게까지 화살을 돌리는, 대표와 완벽하게 같은 패턴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팀장의 폭언이 내게 남긴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다. 팀장은 나에게 ‘벌’을 내리기까지 했다. 중간 관리자인 과장에게 내 업무 전반에 대한 사전 보고를 받으라 지시한 것이다. 한 마디로 내가 보는 업무 하나하나에 대한 감시 명령을 내린 것과 같다.


사건 이후 내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하루하루 울분에 찬 상태로 살았다. 연봉협상 이후로 많은 것을 놓고 업무에 임했지만 이번에는 정말이지 심리적 타격이 컸다. 성질머리 한 번 드러내지 못하고 무참히 짓밟힐 수밖에 없던 상황을 끊임없이 복기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했다.


팀장이 내려꽂은 말은 언제 어디서나, 날마다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삼킨 듯 날마다 속이 뜨거웠다. 자괴감과 무력감, 불안감, 우울감이 한꺼번에 나를 찾아와 짓눌렀다.


샤워를 할 때처럼 완벽히 홀로 있게 될 때면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중얼중얼, 그 때 그 순간에 하지 못했던 말을 분노에 찬 목소리로 혼자 읊조렸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강렬한 노기에 휩싸이고 슬퍼하기를 반복했다.





한 달 가까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팀장에게 해당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할까. 아니면 인사팀에라도 공식적인 유감 표명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 그 전에, 지나가는 말로라도 그가 내게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이곳의 생리에 비춰 보면 나의 상식이란 몰상식에 가까웠다. 나는 이방인이라기보다 외계인에 가까울 정도로 이들과 사고 방식이 달랐다. 밑바닥 계급 주제에 알아서 길 줄 모르고 의견을 강하게 표명하는 것은 큰 죄이며, 멋모르고 까분 죄에는 응당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 이들의 상식이었다.


더 이상 참고 받아들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아닌 걸 긴 척 하거나 긴 걸 아닌 척 하며 벌벌 기는 데 역시나 전혀 소질이 없었다. 참고 버티는 수준을 이미 아득히 넘었다. 남느니 분노뿐이었다.


더 이상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때가 됐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2년. 나 치고 꽤 오래도 버텼다는 생각에 맥 빠진 웃음이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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